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2권 / Chapter 02
CHAPTER 02: 옆집 여자는 일반인 기사님이 있다
신휘와 함께 연습실에 들어선 도윤은 밴드 멤버들과 마주한다. 팬과 이웃, 급식소남과 기사님 사이에서 그의 일상은 이상한 쪽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옆집 여자는 일반인 기사님이 있다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드럼이었다.
정확히는, 드럼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이었다.
하얀 니트. 청바지. 가늘고 긴 손가락. 순정만화 표지에서 바로 걸어 나온 것 같은 얼굴.
그리고 그 손가락 끝에 쥐어진 드럼 스틱.
무대 위에서 그 스틱은 공기를 칼처럼 쪼개고 있었다.
서하린.
이름은 알고 있었다.
SHINHWI 라이브 영상에서 늘 신휘 뒤쪽에 앉아 있던 드러머.
웃을 때는 봄날 같고, 드럼을 칠 때는 전쟁 같아지는 사람.
팬덤에서는 ‘하린이는 분명 천사인데 드럼만 잡으면 천계 쿠데타군’이라는 이상한 해석이 붙었다.
이상한 묘사인데, 영상을 보면 납득된다.
하린은 우리 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언니!”
신휘는 초코우유 빨대를 문 채 손을 들었다.
“하린.”
“늦었어요.”
“왔잖아.”
“그 말로 해결된다고 생각하죠?”
“응.”
“진짜 언니다.”
하린은 그렇게 말하고 웃었다.
그 웃음은 밝았다.
밝고, 익숙하고, 조금 포기한 사람의 웃음이었다.
아마 신휘를 오래 상대한 사람들은 모두 저런 웃음을 배우는 모양이다.
나는 최근 한 달 사이에 초급 과정을 수료했다.
하린은 그제야 내 쪽을 봤다.
웃음이 멈췄다.
아니, 사라진 건 아니었다.
표정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는 늦게 온 신휘를 맞이하는 후배의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화면 너머에 있던 누군가를 실제로 만난 사람의 얼굴이었다.
그 표정은 내가 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표정.
“아.”
그녀가 작게 말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서도윤입니다.”
“알아요.”
하린은 바로 대답했다.
그리고 자기가 더 놀란 얼굴이 됐다.
“아, 아니. 안다는 게 이상한데. 아무튼 알아요. 서도윤 씨.”
“네.”
“진짜네요.”
“제가요?”
“네.”
그녀는 스틱을 한 손에 모아 쥐었다.
눈이 반짝였다.
이게 호기심인지, 감사인지, 감동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누가 누구를 신기해해야 하는지 뒤바뀐 기분이었다.
“언니가 데려온다길래 진짜 데려오나 했는데.”
“데려온 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끌려온 쪽에 가깝습니다.”
하린은 그 말을 듣고 신휘를 봤다.
“언니.”
“응.”
“납치했어요?”
“아니.”
신휘가 초코우유를 마시며 말했다.
“데려왔어.”
“그 차이 설명할 수 있어요?”
신휘는 잠깐 생각했다.
“도윤이 걸었어.”
그 대답에 반응해 멈춘 것은 나였다.
“그건 너무 물리적 기준입니다.”
하린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맑은 웃음이었다.
다행히, 그 웃음은 불편하지 않았다.
나를 구경거리로 보는 웃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언니가 또 이상한 사람을 데려왔구나.’
정확히는 이쪽이었다.
억울하다.
이상한 사람은 내가 아니다.
이상한 사람의 옆집에 살 뿐이다.
아니, 이상한 사람이 옆집에 살게 되었다.
살고 있던 것도 내가 먼저니까.
그때 연습실 안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신휘.”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긴 머리를 뒤로 묶은 남자가 기타를 들고 있었다.
강태오.
화면으로 봤던 것보다 키가 컸다.
마른 듯한데 단단했고, 피곤해 보이는데 날카로웠다. 검은 셔츠의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린 손목에는 얇은 가죽 팔찌가 감겨 있었다.
손가락은 길고 거칠었다.
기타를 오래 친 사람의 손.
나이는 확실히 나보다 많아 보였다.
적어도 40대 중반.
그런데 그가 보고 있는 사람은 외형상 스물 몇 살로 보이는 신휘였다.
그리고 그는 신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또 늦었냐.”
신휘는 초코우유 팩을 들어 보였다.
“초코우유 놓고 나왔어.”
신휘의 말에 더 놀란 눈을 하고 신휘를 바라본 것은 강태오가 아닌 같이 나온 나였다. 내 눈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신휘 씨, 문까지 열고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지각한 이유가 차키 같은 것이 아니라 초코우유 때문이었습니까?
이 사람의 사고 회로는 대체 어떻게 되어 있는 걸까. 아니, 그것이 신휘이긴 하다만.
“그게 변명이 된다고 생각하냐.”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강태오가 했다.
“중요해.”
“연습은 더 중요해.”
“초코우유 없으면 노래 안 나와.”
“카카오가 연료라도 돼?”
신휘는 아주 조금 고민했다.
“비슷한 거.”
태오는 잠깐 눈을 감았다.
이미 많이 겪어본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그걸 보고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대화 자체는 별것 아니었다.
지각한 보컬에게 기타리스트가 잔소리한다. 보컬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한다. 기타리스트는 지친다.
여기까지는 음악 하는 사람들의 흔한 풍경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했다.
태오는 신휘를 조심스럽게 대하지 않았다.
한유경 매니저가 신휘를 대할 때는 늘 일정표와 계약서와 직업적 인내심이 함께 있었다.
나는 신휘를 대할 때 라면과 초코우유와 사회적 생명을 바치고 있었다.
그런데 태오는 달랐다.
그냥 말했다.
오래 그렇게 말해 온 사람처럼.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신휘도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겉보기로는 둘 사이에 나이 차이가 꽤 나 보였다.
그런데 그 사이에는 나이라는 거리감이 없었다.
선은 있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사회적 선이 아니었다.
오래된 사람들끼리만 아는 선.
그런 게 있었다.
나는 잠시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정리해 보았다.
강태오. 원년부터 함께 한 SHINHWI의 기타리스트이자 어떤 앨범은 신휘보다 강태오의 음악적 영향력이 더 큰 것이 아닌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
신휘에게 있어서는 데뷔, 아니 그 이전부터 함께 해온 음악적 동반자일 것이다.
그러니 그럴 수 있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 대등한 입장에서 음악을 다루는 사람이니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격의 같은 것은 없어졌을 수도 있다.
애초에 신 씨가 나이 많은 사람이라고 무언가를 따질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태오.”
신휘의 목소리에 대충 정리를 마친 내 생각이 멈추었다.
“응.”
“도윤.”
“알아.”
태오는 기타를 내려놓고 내 쪽으로 걸어왔다.
나는 자세를 바로 했다.
이상하게 긴장됐다.
강태오.
라이브에서 신휘의 보컬이 검은 불꽃이라면, 태오의 기타는 그 불꽃이 타고 지나가는 금속성 바닥이었다.
그 사람이 내 앞에 섰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보다 더 키가 컸고, 생각보다 더 분위기의 무게감이 탄탄해 보였다.
SHINHWI의 중심은 신휘가 맞지만, 밴드로서 중심축은 강태오라고 한 팬카페 누군가의 말에 이 순간 나는 아주 강하게 동의를 하고 있었다.
“강태오입니다.”
“서도윤입니다.”
악수를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태오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얼른 손을 잡았다.
손은 단단했다.
화면으로 볼 때보다 더 현실적인 손이었다.
“고맙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정말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무거웠다.
나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그런 일을 그냥 할 수 있는 사람은 적습니다.”
태오는 내가 도망칠 구석을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고맙습니다.”
나는 대답을 못 했다.
그날 현장이 떠올랐다.
폐극장. 조명. 카메라. 그 남자의 눈. 그리고 켜지기 직전이었던 화면.
한 달이 지났다고 해서 사라지는 기억은 아니었다.
다만 여기서 꺼내고 싶지 않을 뿐이다.
태오도 그걸 아는 것 같았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신휘 쪽을 턱짓했다.
“그날 서도윤 씨가 해준 일도 컸습니다.”
“신휘가 여기 있어요.”
신휘는 초코우유를 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여기 있어.”
태오가 바로 말했다.
“그러니까 늦지나 마.”
“치사해.”
“고맙다는 분위기 깨는 데는 너만 한 사람이 없다.”
“분위기 길면 귀찮아.”
“알아.”
알아.
그 한마디도 이상했다.
태오는 정말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했다.
신휘가 무거운 분위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고맙다는 말이 오래 이어지면 어떤 얼굴을 하는지. 자기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어떻게 옆으로 밀어내는지.
너무 잘 아는 사람처럼.
내가 그 생각을 하는 사이, 마지막 한 사람이 다가왔다.
깔끔한 셔츠. 단정한 얼굴. 손에는 작은 검은 수첩.
민태준.
베이스 담당.
SHINHWI에는 가장 늦게 합류한 막내다.
원년 멤버 강태오, 정식 멤버는 아니었지만 첫 앨범부터 객원 드럼으로 참여하다가 합류한 서하린과 달리 민태준은 SHINHWI가 비교적 최근에 합류한 멤버다.
합류하자마자 저 베이스 누구야? 인스타 주소 좀 알려주세요! 같은 여성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 낸 사람.
차가운 표정에 하얀 피부, 락밴드의 멤버라고는 생각되지 않게 깔끔한 복장과 검은 옷과 흑발, 포인트로 준 은빛 액세서리가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사람.
어둠을 간직한 차가운 귀공자. 그러니까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캐릭터다.
그리고 이 사람, SHINHWI의 공연 모습을 담은 영상에 베이스를 치고 있지 않을 때에는 늘 검은 수첩을 꺼내 들고 무언가를 기록하고 있었다.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그리고 내 앞의 민태준은 정말 지금도 그 수첩을 들고 있었다.
“민태준입니다. 베이스 담당입니다.”
그는 내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서도윤입니다.”
“감사드립니다.”
발음이 너무 정확했다.
회사 발표 시간에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당시 상황 정리 자료를 일부 확인했습니다. 서도윤 씨의 현장 진입 판단과 송출 차단이 없었다면 피해가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나는 잠시 멍해졌다.
“제 인생이 보고서가 됐군요.”
“중요 사례였습니다.”
“별로 기쁘지 않습니다.”
“이해합니다.”
민태준은 진심으로 이해한다는 표정을 했다.
그런데 그 표정마저 회의록 같았다.
하린이 옆에서 웃었다.
“태준 씨, 감사 인사도 너무 딱딱해요.”
“감사는 정확해야 합니다.”
“정확한데요, 도윤 씨 굳었잖아요.”
“확인했습니다.”
민태준은 나를 보았다.
“부담을 드렸다면 죄송합니다. 요지는 고맙다는 뜻입니다.”
“아, 아닙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왜 도윤 씨가 감사해요?”
하린이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왜 내가 감사하지.
상황상 감사받는 건 나였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나는 영웅도 아니고, 기사도 아니고, 대단한 결심을 한 사람도 아니었다.
그냥 움직였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려는데, 재미있다는 듯 웃던 하린이 먼저 말했다.
“이야기 들었을 때 진짜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네?”
“언니가 그때 그런 상황이었는데, 도윤 씨가 바로 간 거잖아요.”
“바로는 아니었습니다. 찾아보고, 의심하고, 확인하고…….”
“그래도 갔잖아요.”
하린의 눈이 다시 반짝였다.
아.
이건 위험하다.
“완전 여주를 구하러 온 기사님이에요.”
나는 그대로 굳었다.
“기사님이요?”
“네.”
“저는 일반인입니다. 가서 한 것이라고는 맞기만 했어요.”
다시 얼굴이 아파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기사님이죠.”
“직업상 사무직입니다.”
“순정만화에서 직업은 중요하지 않아요.”
이 사람, 어쩐지 드럼 옆에 순정만화가 잔뜩 쌓여 있더라.
“현실에서는 중요합니다.”
“현실이라서 더 대단한 거죠.”
하린은 아주 진지했다.
그래서 더 곤란했다.
가볍게 놀리는 게 아니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신휘를 봤다.
신휘는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도움이 안 된다.
“신휘 씨.”
“응.”
“도와주세요.”
“왜.”
“제가 기사님이 되고 있습니다.”
신휘는 빨대에서 입을 떼고 하린을 봤다.
“하린.”
“네.”
“도윤 기사 아니야.”
“그럼요?”
신휘는 잠깐 생각했다.
“급식소.”
나는 눈을 감았다.
“사람을 시설로 분류하지 마세요.”
하린은 잠깐 멈췄다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급식소 기사님?”
“더 이상해졌습니다.”
태오가 낮게 웃었다.
“고생하겠네요.”
“이미 조금 하고 있습니다.”
신휘가 말했다.
“많이.”
“본인이 말하지 마세요.”
“사실인데.”
민태준은 이미 수첩을 열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말했다.
“그걸 왜 메모합니까?”
“관계 정의 참고용입니다.”
“참고하지 마세요.”
“검토하겠습니다.”
“검토도 하지 마세요.”
민태준의 펜이 잠깐 멈췄다.
“서도윤 씨, 비공식 급식소 역할 수행. 단, 본인 부정 강함.”
“그걸 쓰지 말라고요.”
“중요한 부정 반응입니다.”
이 사람들 위험하다.
나는 확신했다.
무대 위에서 위험한 건 SHINHWI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그 주변 사람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위험했다.
하린은 순정만화로 사람을 기사화하고. 민태준은 사람을 회의록으로 만든다. 태오는 신휘를 오래된 친구처럼 다룬다.
그리고 신휘는 그 모든 것의 중심에서 초코우유를 마신다.
무섭다.
NOVA LINE MUSIC 지하 연습실은 생각보다 더 위험한 곳이었다.
“그럼 맞춰보자.”
태오가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연습실의 공기가 바뀌었다.
하린은 드럼 의자에 앉으며 스틱을 가볍게 돌렸다.
조금 전까지 순정만화 독자였던 사람은 사라졌다.
민태준은 수첩을 닫고 베이스를 들었다.
회의록의 악마도 사라졌다.
태오는 기타를 잡았다.
역시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신휘는 마이크 앞으로 걸어갔다.
손에는 아직 초코우유가 있었다.
이 사람, 진짜.
“신휘야.”
태오가 말했다.
“그거 내려놔.”
신휘는 초코우유를 보았다.
“왜.”
“노래할 거잖아.”
“한 모금만.”
“이미 큰 팩 반을 마셨다.”
“중요해.”
“카카오가 연료라고 방송에서 인터뷰 해줄까?”
신휘는 입술을 삐죽이더니 초코우유를 마이크 스탠드 옆에 내려놓았다.
“치사해.”
“오늘 첫 치사해다.”
“셀 거야?”
“그럴까 생각 중이다.”
“할 일 없네.”
“네 지각 관리보다 생산적이야.”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다시 생각했다.
이상하다.
한유경 매니저가 신휘를 움직일 때는 일정표가 필요했다. 나는 라면과 잔소리와 초코우유 협상이 필요했다. 회사 사람들은 화면 너머 SHINHWI를 말할 때 아직도 조심했다.
그런데 태오는 그냥 말한다.
내려놔. 늦지 마. 다시 해.
그리고 신휘는 투덜거리면서 따른다.
완전히 따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따른다.
역시 원년 멤버라는 걸까.
첫 음이 울렸다.
기타.
짧고 낮은 코드였다.
그 위로 베이스가 깔리고, 드럼이 들어왔다.
연습실의 공기가 단숨에 달라졌다.
나는 소파 한쪽에 앉아 있었다.
나는 아까 하린이 건네준 생수병을 손에 쥔 채 마이크 앞의 신휘를 보았다.
조금 전까지 내 앞에서 초코우유를 마시고, 급식소를 찾고, 지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기던 사람.
그 사람이 마이크 앞에 서자, 다른 존재가 되었다.
어깨가 펴졌다. 턱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눈이 차갑게 정리되었다.
SHINHWI.
그 이름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가 처음 좋아했던 사람.
아니.
처음 좋아했던 무대.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무대 뒤에서 초코우유 큰 팩을 내려놓는 장면까지 봐버렸다.
알고 싶지 않은 걸 안 건지, 더 알고 싶어진 건지 모르겠다.
드럼이 작게 들어왔다.
심장 박동 같은 킥. 차갑게 맴도는 신스. 기타의 얇은 울림.
MY STAGE.
한 달 전, 내 방에서 신휘가 불렀던 노래.
그때는 좁은 방이었다.
내 방. 내 휴대폰. 서툰 삼각대. 급하게 켠 조명. 책장에 꽂힌 앨범들. 그리고 손이 떨리던 나.
누구도 준비하지 않은 곳에서, 신휘는 자기 이름을 다시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여기에는 드럼이 있었다. 기타가 있었다. 베이스가 있었다. 마이크가 있었다. 모니터 스피커가 있었고, 케이블이 있었고, 누군가의 호흡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신휘가 노래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방이었어.
가까웠다.
방구석 라이브 때보다 더 멀리 있는데, 이상하게 더 가까웠다.
숨소리뿐인 밤.
그 첫 소절에서 나는 숨을 멈췄다.
방구석 MY STAGE 라이브와는 달랐다.
그때는 혼자였다.
신휘는 혼자 서 있었다.
내 방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무대 위에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무대를 열었다.
하지만 지금은.
신휘가 던지면, 태오의 기타가 받아쳤다. 신휘가 밀면, 하린의 드럼이 길을 만들었다. 신휘가 낮게 가라앉으면, 태준의 베이스가 그 아래를 더 깊게 만들었다.
그 소리들은 단순한 반주가 아니었다.
신휘를 받쳐주는 배경도 아니었다.
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였다.
언제 숨을 죽여야 하는지. 어디서 밀어 올려야 하는지. 어느 단어 앞에서 기타가 한 박자 물러나야 하는지. 어느 문장 뒤에서 드럼이 심장을 더 크게 뛰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SHINHWI의 무대는 혼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신휘가 중심인 건 맞다.
모든 시선은 결국 그녀에게 간다. 그녀가 마이크를 잡는 순간, 공간의 무게가 달라진다. 그녀가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면, 나머지 소리들이 전부 그녀를 위해 길을 낸다.
하지만 그 길은 혼자 깔린 것이 아니었다.
그녀 뒤에는 세 명의 소리가 있었다.
그녀를 이해하고, 밀어 올리고, 때로는 붙잡는 소리.
그걸 보자 이상하게 가슴이 조금 조용해졌다.
그리고 조금 쓸쓸해졌다.
내가 모르는 신휘가 여기에 있었다.
무대 뒤의 신휘. 밴드 안의 신휘.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신휘.
내가 한 달 동안 본 신휘는 옆집에서 급식소를 찾는 사람이었다.
분리수거를 인류 문명의 음모로 여기고, 비밀번호가 풀리면 휴대폰이 고장났다 주장하고, 자기 등신대 다키마쿠라를 실내용 쿠션으로 쓰는 사람.
그런데 여기의 신휘는 또 달랐다.
검은 드레스도 내 선택. 붉은 조명도 내 선택. 평범한 흰 티셔츠의 밤도 전부 내가 고른 나.
그런 내용을 노래하는 신휘는 정말로 그 모든 자신을 한 손에 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더 이상했다.
어떻게 같은 사람이 이럴 수 있지.
누가 내 조명을 골랐고.
신휘의 목소리가 조금 날카로워졌다.
태오의 기타가 그 뒤를 베었다.
누가 내 대사를 썼어.
하린의 드럼이 박자를 밀어 올렸다.
누가 내 어둠을 가져가.
베이스가 낮게 깔렸다.
자기 꿈이라 불렀어.
나는 손에 쥔 생수병을 조금 세게 잡았다.
그 문장은 한 달 전에도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게 들렸다.
그때는 신휘 혼자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녀 뒤에 있는 세 사람이 같이 대답하고 있었다.
아니라고.
그건 네 것이 아니라고.
그 어둠도, 그 무대도, 그 이름도.
전부 신휘의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 알아.
신휘가 숨을 들이켰다.
무대는 주어지는 게 아냐.
그 순간 태오의 기타가 한 박자 물러났다.
마치 길을 비켜주는 것처럼.
내가 서기로 한 순간.
신휘가 고개를 들었다.
거기가 시작이야.
코러스가 터졌다.
This is my stage.
나는 숨을 내쉬는 걸 잊었다.
my voice, my name.
무대도 아니었다.
아직은 리허설이었다.
조명도 없고, 관객도 없고, 카메라도 없었다.
그런데 이미 무대였다.
네가 만든 빛은 꺼.
신휘는 마이크를 잡은 손에 힘을 줬다.
내가 나를 비출게.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안심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돌아오고 있구나.
아니.
돌아오는 게 아니라, 다시 고르고 있구나.
어떤 빛을 받을지. 어떤 어둠을 입을지. 어떤 이름으로 불릴지.
세상이 정리해 주는 복귀가 아니라, 자기가 서기로 한 자리.
그곳으로.
곡이 끝났다.
잠깐의 정적.
나는 박수를 쳐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태오가 먼저 말했다.
“두 번째 벌스 빨랐어.”
신휘는 마이크를 잡은 채 바로 대꾸했다.
“감정이야.”
“감정으로 박자 이기지 마.”
“치사해.”
“두 번째 치사해다.”
“세지 마.”
“틀리지 마.”
“나도 기타 틀린 거 셀거야.”
“노래하다가 하나, 둘, 셋 하지 마라.”
나는 얼어붙었다.
방금 내가 본 건 엄청난 합주였다.
숨이 멎을 정도로 좋았다.
그런데 그 직후에 이런 대화가 나온다.
그리고 더 이상한 건,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린은 물을 마시며 웃고 있었다. 태준은 수첩에 뭔가를 적고 있었다. 신휘는 태오를 노려보다가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렸다.
“방금 좋았잖아.”
“좋았는데 빨랐어.”
“좋으면 됐지.”
“좋은데 정확하면 더 좋지.”
“욕심 많네.”
“너만 하겠냐.”
신휘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무대 위 SHINHWI의 웃음과 달랐다.
조금 더 편했다. 조금 더 오래된 것 같았다.
확실히 현장에서 직접 보니 영상에서 보는 것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강태오.
저 사람은 누구지?
팬으로서 이름은 알았다. 기타리스트. 원년부터 함께 해 온, 데뷔 전부터 신휘와 함께 음악을 하던 사람. 사실상 밴드의 중심축.
그런데 그 이상을 모른다.
왜 저 사람은 신휘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지?
왜 신휘는 그 말에 화내지 않고, 오히려 편해 보이지?
겉보기로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두 사람인데.
멤버 중 제일 친할 것 같지 않은데.
제일 선이 없다.
“다시.”
태오가 말했다.
신휘가 한숨을 쉬었다.
“귀찮아.”
“다시.”
“초코우유.”
“끝나고.”
“목 말라.”
“방금 반 팩 마셨다.”
“말랐어.”
“카카오 연료.”
“치사해.”
“세 번째다.”
하린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오늘 몇 번까지 갈까요?”
민태준이 진지하게 말했다.
“최근 연습 기록 기준 평균 8.4회입니다.”
나는 그를 봤다.
“그걸 왜 평균 내요?”
“반복 표현 발생 빈도 관리 차원입니다.”
“관리해서 줄어듭니까?”
“아니요.”
“그럼 왜 관리합니까?”
“기록은 줄이기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섭다.
신휘는 불만스럽게 말했다.
“태준.”
“네, 선배님.”
“그거 쓰지 마.”
“이미 썼습니다.”
“배신.”
민태준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
“기록입니다.”
신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배신이 기록의 옷을 입었네.”
나는 멈췄다.
나왔다.
신휘식 배신론.
오랜만에 들으니 반갑다.
아니, 반가우면 안 된다.
태준은 수첩에 무언가를 더 적었다.
“방금 표현도 기록 가치가 있습니다.”
“성실한 배신.”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나는 어쩐지 더 무서워졌다.
이 밴드는 정말로 신휘에게 적응되어 있었다.
그냥 익숙한 게 아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신휘를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하린은 웃음으로. 태준은 기록으로. 태오는 너무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그리고 나는.
나는 아직도 손에 생수병을 쥔 채 앉아 있었다.
내가 이곳에서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도윤.”
신휘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네?”
“어때?”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왔다.
나는 당황했다.
“어…… 좋았습니다.”
신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게 다야?”
“더 말해도 됩니까?”
“응.”
“길어질 수 있습니다.”
“얼마나.”
“팬심 기준으로는 조금.”
하린의 눈이 빛났다.
“해요! 해요!”
태준은 펜을 들었다.
“의견 기록하겠습니다.”
“기록은 좀 부담스럽습니다.”
태오가 팔짱을 꼈다.
“말해보세요.”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망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SHINHWI 이야기를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하지만 신휘가 물었다.
그러면 말해야 한다.
팬으로서.
아니, 이건 팬심만은 아니다.
방금 본 것을 말하고 싶었다.
“전문적인 건 모르니까 느낌만 이야기하자면, 혼자 부른 MY STAGE랑 다릅니다.”
내가 말했다.
“그때는…… 자기 무대를 되찾겠다고 말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방도, 카메라도, 소리도 전부 급하게 만들어진 것 같은데, 그래서 오히려 신휘 씨 혼자 서 있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신휘는 말없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태오, 하린, 태준을 차례로 보았다.
“기타가 신휘 씨 목소리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먼저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태오의 눈이 조금 움직였다.
“어디서 들어올지 아는 게 아니라, 어디서 다치지 않게 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요.”
내가 말하고도 조금 이상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느꼈다.
“드럼은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신휘 씨가 올라갈 수 있게 계단을 만들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코러스 직전에 심장이 같이 뛰도록 만드는 쪽이요.”
하린은 스틱을 쥔 손을 살짝 멈췄다.
“베이스는…… 바닥이었습니다. 무대가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는 쪽.”
태준의 펜도 멈췄다.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죄송합니다. 너무 과하게 말했죠.”
신휘가 말했다.
“아니.”
그녀는 마이크 스탠드에 기대 나를 보았다.
“계속해.”
“네?”
“재밌어.”
아.
이 말.
처음 신휘 앞에서 SHINHWI 이야기를 쏟아냈던 때와 같은 말이었다.
계속해도 돼. 재밌네.
나는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잠깐 귀가 뜨거워졌다.
“아니, 그…… 아무튼 좋았습니다.”
“줄였네.”
“사회적 생존을 위해 줄였습니다.”
하린이 두 손을 모았다.
“와…… 언니, 이분 진짜 팬이네요.”
“응.”
신휘는 조금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어쩐지 뿌듯해 보였다.
“내 팬.”
나는 그대로 굳었다.
내 팬.
그 말은 사실이다.
나는 팬이다.
그런데 본인 입으로 그렇게 말하니까 이상하다.
하린이 바로 반응했다.
“와아.”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제가 뭘요?”
“순정만화 독자 눈입니다.”
“맞아요.”
“인정하지 마세요.”
태준은 조용히 적었다.
“서도윤 씨. 신휘 선배님 무대 구조 해석 능력 높음.”
“그건 기록해도 됩니다.”
“방금 전까지는 기록이 부담스럽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건 괜찮습니다.”
“선택적 기록 허용 확인.”
“그렇게 쓰지 마세요.”
태오가 낮게 웃었다.
“신휘가 왜 데려왔는지 알겠네요.”
나는 그를 봤다.
“네?”
“그냥 급식소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서.”
신휘가 바로 말했다.
“급식소도 중요해.”
“그건 알아.”
태오가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또다.
그 자연스러움.
신휘가 이상한 말을 해도, 태오는 놀라지 않고 바로 받아준다.
한 달 동안 내가 겨우 익숙해진 것들을, 저 사람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내가 모르는 오랜 시간이 둘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연습은 한참 이어졌다.
MY STAGE는 같은 곡인데, 반복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첫 번째는 방구석 라이브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두 번째는 밴드가 더 앞으로 나왔다. 세 번째는 신휘의 목소리가 더 단단해졌다. 네 번째는 태오가 기타를 조금 덜 울렸다가, 신휘에게 바로 한 소리를 들었다.
“거기 왜 빼.”
“네가 빨라져서.”
“안 빨랐어.”
“빨랐어.”
“감정이라니까.”
“감정은 메트로놈이 아니야.”
“치사해.”
“네 번째다.”
“세지 마.”
다섯 번째부터 나는 조금 이상한 걸 깨달았다.
태오는 신휘를 맞추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신휘가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연주했다.
목소리가 흔들릴 때도. 일부러 거칠게 밀어붙일 때도. 갑자기 한 단어를 낮게 떨어뜨릴 때도.
태오는 그 뒤를 따라가는 게 아니라, 거기에 먼저 도착해 있었다.
기타 소리 안에 내가 모르는 신휘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걸 느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조금 불편했다.
질투 같은 건 아니었다.
아마도.
그렇게 유치한 감정은 아닐 것이다.
아니, 아닐 거라고 믿고 싶다.
그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내가 한 달 동안 겨우 알게 된 신휘의 모습들이 있었다.
초코우유를 식사라고 우기는 사람. 라면을 기다릴 때 눈이 솔직해지는 사람. 분리수거 앞에서 인류 문명을 미워하는 사람. 본인 다키마쿠라를 베개 삼아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 가끔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무거운 말을 던지는 사람.
그런데 이곳에는 내가 모르는 신휘가 있었다.
태오가 아는 신휘. 하린이 아는 신휘. 태준이 기록해 온 신휘.
내가 모르는 시간들이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나는 겨우 한 달 전부터 신휘를 알았다.
정확히는, 옆집 신 씨로는 한 달. SHINHWI의 팬으로는 훨씬 오래.
하지만 팬으로 오래 좋아했다는 것과, 사람을 오래 안다는 것은 다르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도.
조금 쓸쓸했다.
“도윤.”
신휘가 다시 불렀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네.”
“표정 이상해.”
“원래 그렇습니다.”
“아니.”
“그럼 뭡니까?”
신휘는 나를 보다가 말했다.
“생각 많아.”
“생각은 원래 많습니다.”
“밥 생각?”
“신휘 씨 기준으로 저를 해석하지 마세요.”
“아니야?”
“아닙니다.”
신휘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마이크를 내려놓고 초코우유를 집었다.
태오가 바로 말했다.
“한 모금만.”
“알아.”
“네 한 모금은 일반인 세 모금이야.”
“도윤은 일반인.”
“갑자기 저를 왜 끌어들입니까?”
신휘는 초코우유 빨대를 문 채 말했다.
“기사 아니래.”
하린이 바로 반응했다.
“아직은요.”
“아직도 아닙니다.”
“그런 말은 보통 중반쯤에 뒤집혀요.”
“여기 초반입니다.”
“그럼 복선이네요.”
“복선으로 만들지 마세요.”
민태준이 펜을 들었다.
나는 그를 보았다.
“메모하지 마세요.”
“방금 대화는 장기적 관계 변화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시사하지 않습니다.”
“부정 반응이 강합니다.”
“강할 수밖에 없습니다.”
태오가 낮게 웃었다.
그 웃음은 놀리는 웃음이라기보다는, 오랜만에 재미있는 걸 본 사람의 웃음이었다.
나는 이 공간에서 점점 방어력이 깎이고 있었다.
연습이 끝날 무렵, 신휘는 마이크를 내려놓자마자 말했다.
“밥.”
나는 고개를 들었다.
“왜 저를 보십니까?”
“급식소.”
“여기는 제 집이 아닙니다.”
“끝나고.”
“신휘 씨.”
“응.”
“연습 끝나면 보통 멤버들과 식사를 하거나 회의를 하지 않습니까?”
신휘는 태오를 봤다.
“해?”
태오가 대답했다.
“오늘은 회의 있다.”
“귀찮아.”
“복귀 라이브 회의야.”
“더 귀찮아.”
“네 복귀 라이브야.”
“내 거라서 더 귀찮아.”
하린이 웃었다.
“언니, 진짜 멋대로다.”
민태준은 수첩을 넘겼다.
“회의 안건은 복귀 라이브 동선, 세트리스트 확정, 온라인 송출 체크, 안전 동선, 팬 입장 관리, 긴급 대응 프로토콜입니다. 최소 40분 소요 예상입니다.”
“말 길어.”
“요약하면 회의입니다.”
“싫어.”
“참석 필수입니다.”
“배신.”
“일정입니다.”
신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배신이 일정표의 옷을 입었네.”
민태준은 망설임 없이 적었다.
“오늘 두 번째 변주입니다.”
“쓰지 마.”
“이미 썼습니다.”
하린이 웃다가 배를 잡았다.
태오는 기타 케이스를 닫으며 말했다.
“회의실로 가자.”
신휘는 나를 봤다.
“도윤.”
“네.”
“기다려.”
“제가요?”
“응.”
“왜요?”
“끝나고 급식소.”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거절해야 한다.
토요일이고, 나는 이미 주말 오전을 잃었다.
게다가 여기서 40분을 더 기다린 뒤, 내 집에 가서 밥을 먹는 흐름은 명백히 이상하다.
한 달 전의 나였다면 거절했을 것이다.
아마도.
아니, 한 달 전의 나는 이런 상황 자체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하린이 나를 보고 있었다.
태준도 보고 있었다.
태오는 웃는 듯 아닌 듯한 얼굴이었다.
그리고 신휘는 당연하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도윤은 기다린다.
그런 얼굴.
나는 졌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신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특해.”
“그 말도 슬슬 법적으로 금지하고 싶습니다.”
하린이 작게 속삭였다.
“기사님이 맞는데.”
“아닙니다.”
“급식소 기사님.”
“더 아닙니다.”
태준이 펜을 들었다.
나는 바로 말했다.
“메모하지 마세요.”
태준은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이겼다.
작은 승리였다.
태오는 문 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회의 끝나면 쟤 부탁 드릴게요.”
그는 신휘를 턱짓했다.
신휘는 초코우유 팩을 들고 회의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 앞에서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도윤.”
“네.”
“도망가지 마.”
나는 멈췄다.
“제가 신 씨입니까?”
“비슷한 거.”
이젠 뭐든 비슷한 겁니까.
신휘는 그렇게 말하고 회의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나는 연습실에 혼자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가 아니었다.
마이크 스탠드와 드럼과 기타 앰프와, 바닥에 감긴 케이블과, 신휘가 남긴 초코우유의 달콤한 냄새가 있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숨을 내쉬었다.
정말 이상한 하루였다.
나는 SHINHWI의 세계 안쪽에 들어왔다.
그 안쪽은 생각보다 더 시끄럽고, 더 인간적이고, 더 이상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신휘가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사람을 숨 멎게 만들고, 무대 아래에서는 초코우유와 급식소로 움직이는 사람.
그녀를 너무 잘 아는 세 사람.
순정만화처럼 신휘를 바라보는 하린. 경전처럼 신휘를 기록하는 태준. 그리고, 오래전부터 신휘 옆에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태오.
특히 강태오.
나는 아직 그 사람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알았다.
신휘에게는 내가 모르는 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의 일부가, 방금 들은 기타 소리 안에 있었다.
나는 손에 남은 생수병을 내려다봤다.
아까 신휘가 말했다.
도윤은 도윤이지.
짧고, 불친절하고, 이상하게 정확한 말.
그런데 이 공간 안에서 나는 아직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팬인지. 이웃인지. 급식소남인지. 기사님인지.
아니면 그냥, 정말로 서도윤인지.
회의실 쪽에서 신휘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급식소.”
태오의 목소리가 바로 이어졌다.
“회의 끝나고.”
하린이 웃었다.
태준이 뭔가 설명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웃었다.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내 일상은 다시 평범해지지 않았다.
그냥.
이상한 쪽으로 안정되고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