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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1권 / Chapter 18

CHAPTER 18: 에필로그 — 옆집 여자는 돌아와도 분리수거를 못 한다 (1권 완결)

1권 에필로그. 도윤의 방에서 시작된 9분 43초의 MY STAGE 라이브가 세상을 뒤집고, 돌아온 신휘와 도윤의 평범하고도 소란스러운 일상이 이어진다.

에필로그: 옆집 여자는 돌아와도 분리수거를 못 한다

MY STAGE 라이브는 9분 43초였다.

공식 공지도 없었다.

예고도 없었다.

제대로 된 조명도, 무대도, 밴드도, 스타일리스트도 없었다.

장소는 내 방이었다.

화면에 잡힌 것은 책장, SHINHWI 앨범 몇 장, 라면 봉지, 초코우유, 기타를 안은 신휘, 그리고 화면 밖에서 허둥대는 내 목소리였다.

그런데 전체 곡조차 공개되지 않은 그 9분 43초가 세상을 다시 뒤집었다.

이번에는 폐극장 때와는 다른 방식이었다.

누군가는 그걸 복귀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사고라고 불렀다.

누군가는 너무 빨랐다고 했다.

누군가는 그래서 더 SHINHWI답다고 했다.

누군가는 울었다고 했고, 누군가는 “이제야 진짜 신휘를 봤다”고 했다.

누가 어느 모습을 진짜라고 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신 씨가 들었으면 또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번에는 적어도, 남이 벗겨낸 모습은 아니었다.

작은 방에서 기타 하나를 안고, 스스로 자기 이름을 말하고, 자기 곡 제목을 처음 꺼낸 사람.

신 씨가 직접 보여주기로 고른 모습을 두고 한 ‘진짜’였다.

MY STAGE.

그 이름은 라이브가 끝난 뒤 바로 퍼졌다.

처음에는 제목이 맞느냐는 말이 많았다.

곡 제목 MY STAGE라고 직접 말함. 아니 그게 첫공개면 너무 미쳤는데. 폐극장 이후 첫 공식도 아닌 방송에서 ‘내 무대’라니.

NOVA LINE MUSIC은 그날 밤 늦게 공식 입장을 냈다.

금일 송출된 라이브는 아티스트 본인의 강한 의사에 따라 진행된 비정규 라이브입니다. 당사는 해당 송출을 사전에 공식 일정으로 승인한 바 없으나, 아티스트의 의사와 현장 상황을 확인한 뒤 안전 확보 및 추가 확산 대응에 착수했습니다. 향후 공식 복귀 일정은 미정이며, 아티스트의 안정과 회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겠습니다. 또한 폐극장 사건 당시 수사기관 및 당사 관계자와 함께 피해자 구조에 협조한 일반인 조력자에 대한 신상 추적, 허위 사실 유포, 사적 접촉 시도를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인 조력자.

그 문장은 뉴스에도 인용됐다.

그리고 팬덤은 그 문장을 놓치지 않았다.

이미 폐극장 불법 라이브의 마지막 몇 초는 분석되고 있었다.

쓰러지는 카메라.

흔들리는 붉은 조명.

결박된 신휘의 찰나.

그녀 위로 가까이 있던 남자.

화면 가장자리로 뛰어드는 흐릿한 몸.

그리고 잡음 사이로 아주 짧게 들린 이름.

도윤—

정확하지는 않았다.

카메라는 흔들렸고, 음성은 깨졌고, 얼굴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팬덤은 그런 조각을 무섭게 잘 모았다.

폐극장 때 선 뽑은 사람 신휘가 도윤이라고 불렀던 거 아니냐. 고마운 사람 신상 털지 마라. 진짜로. 연애로 엮는 애들은 뭐냐. 화재 현장에서 구해준 소방관한테 감사한다고 사귀냐? ㄹㅇ 지금은 그런 식으로 소비할 때 아님.

그나마 다행이었다.

적어도 처음 며칠 동안은, 이상한 추측보다 보호해야 한다는 여론이 더 컸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랬다는 뜻은 아니다.

인터넷은 언제나 인터넷이었다.

혹시 MY STAGE 방 주인도 그 사람 아님? 둘이 뭐 있음?

그런 글들도 올라왔다.

하지만 팬덤의 다수는 그 글들을 곧바로 눌렀다.

폐극장 때 구한 사람이라잖아. 도와준 사람한테 이러지 마라. 지금 네가 폐극장 채팅했던 놈들과 뭐가 다름?

그리고 MY STAGE 라이브의 마지막 1초도 따로 잘려 돌아다녔다.

신휘가 카메라를 보며 말한 장면.

“라면 먹을 거야.”

그 직후 화면 밖에서 들린 내 목소리.

“왜 마지막에 그 말을—”

그리고 급하게 종료되는 화면.

그 1초 때문에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갔다.

방금 남자 목소리 폐극장 그 사람 맞지? 라면 먹을 거야 ㅋㅋㅋㅋㅋ 그럼 그 사람 라면 담당임? 폐극장 라인 끊은 사람 + 라면 끓이는 사람 = 라면 히어로 아니냐.

그렇게 이상한 별명이 생겼다.

처음에는 ‘선끊남’이었다.

다음에는 ‘폐극장 일반인’이었다.

누군가는 ‘급식소남’이라고 불렀다.

이유는 단순했다.

예전 NOVA 근처 편의점 목격글이 다시 끌려 나왔기 때문이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SHINHWI 추정 여성.

점심시간.

도시락과 초코우유.

그리고 옆에서 뭔가를 골라주던 일반인 남자.

그때는 “편의점 데이트남”이니 뭐니 하며 떠들던 글이었다.

MY STAGE 이후에는 다르게 해석됐다.

신휘가 방송 끝나자마자 라면 찾은 거 보면 진짜 급식 담당인 듯. 급식소남ㅋㅋㅋ 아니 폐극장 때 선 뽑았는데 라면도 끓여줌? 히어로네. 라면 히어로.

그 별명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라면 히어로.

나는 그 글을 보고 휴대폰을 엎었다.

팬덤은 얼굴도 모르는 일반인에게 너무 빠르게 별명을 붙인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었다.


MY STAGE 라이브가 끝난 뒤, 신휘는 다시 돌아갔다.

정확히는, 한유경과 보안팀에게 회수되었다.

그날 밤 내 방에서 라면을 먹고 난 뒤였다.

신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주 작게 말했다.

“맛 조용해.”

한 달 만에 들은 그 표현에 나는 잠깐 웃었다.

“칭찬입니까?”

“응.”

“그럼 다행입니다.”

“도윤.”

“네.”

“첫 관중.”

나는 고개를 들었다.

신휘는 그릇 안의 국물을 보고 있었다.

“봤어?”

“네.”

“어땠어?”

나는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좋았다.

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대단했다.

라고 하기엔 너무 팬 같았다.

걱정됐다.

라고 하기엔 그 무대를 다시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말했다.

“신 씨가 고른 무대였습니다.”

신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조금 뒤 한유경이 왔다.

문 앞에서 그녀는 나를 한 번, 방 안을 한 번, 노트북을 한 번, 침대 밑으로 다시 삐져나온 다키마쿠라 상자 끝부분을 한 번 보았다.

나는 바로 말했다.

“그건 방송에 안 나왔습니다.”

한유경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다행입니다.”

“매우 다행입니다.”

신휘가 말했다.

“아쉬워.”

“신휘 씨.”

“응.”

“아쉬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공식 굿즈 방송 소품인데.”

“아닙니다.”

나와 한유경이 동시에 말했다.

신휘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 뒤 그녀는 다시 코트를 입었다.

기타 케이스를 들었다.

현관 앞에서 신휘는 한 번 멈췄다.

들어올 때도 그랬다.

나갈 때도 그랬다.

문턱 앞에서 아주 짧게.

나는 그때도 그냥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신휘는 문 밖으로 나가기 전 나를 돌아봤다.

“도윤.”

“네.”

“라면.”

“다음에는 본인이 끓이는 연습도 하셔야 합니다.”

“배신, 상처네.”

“상식입니다.”

“배신이 상식의 옷을 입었네.”

나는 웃었다.

웃고 나니 이상하게 마음 한쪽이 더 허전해졌다.

신휘는 그 웃음을 잠깐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나중에.”

“네?”

“다키마쿠라.”

나는 숨이 멎었다.

“그건 잊어주세요.”

“안 열었잖아.”

“앞으로도 안 열 겁니다.”

“내 얼굴인데.”

“그래서 더 안 됩니다.”

신휘는 아주 작게 웃었다.

“나중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한유경이 먼저 탔다.

신휘가 뒤따라 들어갔다.

문이 닫히기 직전, 그녀가 손을 들어 보였다.

손을 흔든 건지, 초코우유를 들어 보인 건지 애매했다.

그게 내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밤의 마지막 모습.

이상하게, 나는 그 장면을 오래 기억했다.


며칠이 지났다.

이번에는 날짜를 세지 않으려 했다.

지난 한 달 동안 너무 많이 셌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지 않으려고 해도, 시간은 자기 방식으로 표시를 남겼다.

MY STAGE 라이브 후 1일.

NOVA 추가 공지.

2일.

팬덤의 라면 히어로 밈 확산.

3일.

경찰 브리핑 추가 보도.

4일.

SHINHWI 과거 앨범들이 다시 차트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기사.

5일.

내가 초코우유를 또 샀다는 사실.

나는 냉장고를 열고 초코우유를 보았다.

이번에는 유통기한이 지나기 전에 마셨다.

맛은 생각보다 달았다.

그걸 마시며 나는 조금 허탈해졌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정말 모르겠다.

내 일상은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회의에 들어가고, 박 대리와 점심을 먹고, 퇴근해서 집에 오고, 쓰레기를 버렸다.

박 대리는 가끔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은 뉴스 안 봐요?”

“안 보려고 합니다.”

“좋네요.”

“그런데 팬카페는 봤습니다.”

“그게 그거잖아요.”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전과는 조금 달랐다.

폐극장 직후처럼 계속 속이 뒤집히지는 않았다.

MY STAGE 이후에는 적어도 하나가 확실해졌다.

신휘는 빼앗기기만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말했다.

내 무대.

내 이미지.

내 선택.

그 사실이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그러나 동시에 더 멀게 느끼게 했다.

이제 정말 끝난 것 같았다.

SHINHWI는 다시 SHINHWI의 세계로 돌아갈 것이다.

NOVA LINE MUSIC의 회의실.

보안팀.

법무팀.

공식 복귀 일정.

무대.

팬덤.

수많은 카메라.

그곳이 그녀의 자리다.

내 방은 잠깐의 예외였을 뿐이다.

좁고, 라면 냄새가 나고, 다키마쿠라 상자를 침대 밑에 숨겨야 하는 방.

그곳이 계속 무대가 될 수는 없다.

그리고 나는 일반인이다.

조력자.

뉴스 자막의 한 줄.

팬덤이 붙인 우스운 별명.

라면 히어로.

그 정도가 맞다.

그 별명도 언젠가는 잊혀지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러나 집은 여전히 이상하게 조용했다.

벽 너머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초인종도 울리지 않았다.

문 앞에서 “도윤” 하는 목소리도 없었다.

라면을 끓이면 여전히 양을 조금 많이 잡았다.

계란을 하나 더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분리수거장에 내려갈 때마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보았다.

없었다.

당연히 없었다.

그녀는 지금 보호받고 있을 것이다.

회복 중일 것이다.

회사와 이야기하고 있을 것이다.

새 번호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고, 만들었다면 당연히 나는 모를 것이다.

그게 맞다.

그래도 허전했다.

지난번에도 생각한 취미라도 찾아볼까 하는 것을 이번에는 진지하게 해보았다.

운동.

요리.

베이킹.

러닝.

사진.

식물 키우기.

기타.

기타에서 손이 멈췄다.

신휘가 내 방에서 기타를 안고 있던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검색창을 닫았다.

안 되겠다.

기타는 안 되겠다.

라면도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신휘라면 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런 식의 대화가 머릿속에서 저절로 이어졌다.

대화 상대는 없는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끝난 걸까.

아니.

끝난 게 맞다.

끝나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참 이상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신휘가 안전하고 회복하면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맞다.

하지만 맞는 생각과 허전하지 않은 마음은 별개였다.

나는 TV를 켰다.

연예 뉴스에서 SHINHWI의 과거 무대가 짧게 나왔다.

검붉은 조명.

짧은 검은 머리.

카메라를 똑바로 보는 눈.

예전 같았으면 나는 그 눈을 멀리 있는 별처럼 봤을 것이다.

지금은 달랐다.

무대 위 SHINHWI가 웃으면, 나는 분리수거장 앞에서 “다 쓰레기잖아”라고 말하던 신 씨를 떠올렸다.

카메라를 압도하는 눈빛을 보면, 초코우유를 라면값으로 내밀던 손을 떠올렸다.

언젠가 그녀가 정말 공식 무대에 다시 서서 웃는다면.

나는 예전처럼 보지 못할 것이다.

더 좋아서만도 아니고, 더 아파서만도 아니다.

그 웃음 뒤에 누가 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신휘가 무대 위에서 웃으면.

나는 아마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저건 남이 만든 이미지가 아니다.

저 사람이 고른 얼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옆집 신 씨가 그곳에 서 있다.

나는 TV를 껐다.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날 밤,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집을 나섰다.

종이류.

플라스틱.

캔.

일반쓰레기.

분리수거는 인류 문명이다.

처음 신 씨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는 반쯤 농담이었다.

지금도 반쯤은 농담이다.

하지만 요즘은 나머지 반쯤이 조금 더 진심이 되었다.

종이는 종이에.

플라스틱은 플라스틱에.

캔은 캔에.

사람도, 분리수거도 결국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인류 문명이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밤공기가 조금 차가웠다.

분리수거장 불빛은 늘 그렇듯 희미했다.

그 앞에 누군가 서 있었다.

회색 후드티.

검은 볼캡.

마스크.

한 손에는 봉투.

다른 손에는 초코우유.

초코우유.

나는 그대로 멈췄다.

처음에는 내가 너무 많이 떠올려서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보았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이 아주 조금 반짝였다.

“도윤.”

숨이 멎었다.

진짜였다.

신 씨였다.

분리수거장 앞에.

예전처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 씨.”

“응.”

“여기…….”

“돌아왔어.”

말은 짧았다.

마치 편의점에 다녀온 사람처럼.

마치 잠깐 외출했다 온 사람처럼.

마치 폐극장도, 병원도, 안전가옥도, MY STAGE도, 그 모든 소란도 잠깐 길을 돌아온 일에 불과했다는 듯이.

나는 겨우 물었다.

“안전가옥은요?”

“있어.”

“그런데요?”

“여기도 있어.”

“그게 무슨 논리입니까?”

신 씨는 봉투를 들고 말했다.

“옆집.”

그 말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옆집.

그녀는 다시 옆집으로 돌아왔다.

완전히 자유로워졌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아마 조건이 있을 것이다.

보안도 있을 것이다.

한유경과 NOVA가 수십 개의 조항을 붙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유경이 허락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랬다면 신 씨는 당당하게 도망이라고 이야기했을 테니까.

그래도 지금, 그녀는 여기 있었다.

처음 만난 자리.

분리수거장 앞.

신 씨가 봉투를 들어 보였다.

“도윤.”

“네.”

“이거.”

“네.”

“어디?”

나는 봉투 안을 보았다.

그리고 감정이 잠시 멈췄다.

종이컵.

초코우유 팩.

라면 봉지.

플라스틱 용기.

캔 하나.

비닐.

전부 한 봉투 안에 있었다.

아주 당당하게.

나는 눈을 감았다.

“신 씨.”

“응.”

“돌아오자마자 인류 문명을 시험하시는 겁니까?”

“나눴어.”

“어디가요?”

신 씨는 봉투 안을 가리켰다.

“음식물은 없어.”

“그건 분리수거가 아니라 부패 방지입니다.”

“기특해?”

“아직 아닙니다.”

“상처네.”

“발전은 있습니다. 하지만 인류 문명까지는 아직 멉니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귀찮아.”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귀찮아.

정말 신 씨였다.

무대 위의 SHINHWI도, 뉴스 속 피해자도, MY STAGE의 가수도 아닌.

분리수거장 앞에서 귀찮다고 말하는 옆집 여자.

나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자, 보세요. 초코우유 팩은 종이팩입니다. 씻어서 말린 뒤 따로 배출해야 합니다.”

“지금?”

“가능하면요.”

“귀찮네.”

“인류 문명입니다.”

“라면 봉지는?”

“비닐류.”

“라면 용기는?”

“씻으면 플라스틱, 안 씻었으면 일반쓰레기입니다.”

신 씨는 플라스틱 용기를 봤다.

“안 씻었어.”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도윤.”

“네.”

“씻어줘?”

“본인이 씻으셔야 합니다.”

“복귀한 지 얼마 안 됐는데.”

“복귀와 설거지는 별개입니다.”

“치사해, 배신.”

“상식입니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배신이 상식의 옷을 입었네.”

나는 웃고 말았다.

정말로.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신 씨가 나를 보았다.

“왜 웃어?”

“반가워서요.”

말하고 나서 내가 더 놀랐다.

너무 솔직하게 나왔다.

신 씨도 잠깐 멈췄다.

분리수거장 불빛 아래에서 그녀의 눈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응.”

그녀가 말했다.

“나도.”

두 글자.

아주 짧고, 조용한 대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잠깐 동안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밤공기가 차가웠고, 비닐이 바스락거렸다.

멀리서 차가 지나갔다.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겠지만, 이곳은 조용했다.

그리고 이상하게, 그 조용함이 더 이상 비어 있지 않았다.

신 씨가 초코우유를 한 번 빨았다.

그리고 말했다.

“도윤.”

“네.”

“라면 있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사람은.

“있습니다.”

“계란?”

“있습니다.”

“기특해.”

“아직 끓이지도 않았습니다.”

“예비 기특.”

“그런 단어 만들지 마세요.”

신 씨는 봉투를 들었다.

“분리수거는?”

“먼저 하고 가셔야 합니다.”

“라면 먹고.”

“안 됩니다.”

“먹고 하면 더 잘해.”

“그건 과학적 근거가 없습니다.”

“배고프면 못 해.”

“그건 조금 근거가 있군요.”

나는 결국 봉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초코우유 팩을 따로 빼고, 라면 봉지를 비닐류로 나누고, 캔을 캔류에 넣었다.

신 씨는 옆에서 아주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기억하세요.”

내가 말했다.

“종이컵은 오염됐으면 일반쓰레기입니다.”

“복잡해.”

“네. 문명은 복잡합니다.”

“도윤이 해.”

“안 됩니다. 신 씨가 배우셔야 합니다.”

“왜.”

“다음에도 돌아올 거면요.”

내 말이 끝나자 신 씨가 나를 보았다.

나도 뒤늦게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다음에도.

돌아올 거면.

신 씨는 잠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응.”

“네?”

“배울게.”

나는 멈췄다.

신 씨는 초코우유를 들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다음에도 와야 하니까.”

가슴 한쪽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SHINHWI가 일반인과 계속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없다고.

그 며칠은 우연이었고, 사건이었고, 비현실적인 예외였다고.

이제 그녀는 다시 무대와 회사와 보안팀과 팬덤의 세계로 돌아갈 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신 씨는 분리수거장 앞에서 말했다.

다음에도 와야 하니까.

나는 봉투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신 씨가 고개를 기울였다.

“도윤?”

“네.”

“라면.”

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웃었다.

“알겠습니다.”

“계란 두 개.”

“하나는 충분합니다.”

“복귀 기념.”

“계란으로 기념하지 마세요.”

“치사해.”

“영양입니다.”

“배신이 영양의 옷을 입었네.”

나는 분리수거를 마치고 봉투를 접었다.

신 씨는 초코우유를 들고 내 옆에 섰다.

우리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었다.

처음과 같은 건물.

같은 밤.

같은 분리수거장.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세상은 아직 SHINHWI를 정리하지 못했다.

경찰도, 회사도, 팬덤도, 인터넷도.

어쩌면 앞으로도 오래 걸릴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 밤, 신 씨는 자기 손으로 초코우유 팩을 들고 있었다.

어디에 버려야 하는지 모른 채.

나는 옆에서 말했다.

“종이팩은 씻어서 말린 뒤 따로요.”

신 씨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귀찮네.”

“인류 문명입니다.”

“그럼.”

그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라면 먹고 해.”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 문명은 또 미뤄지는군요.”

“응.”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신 씨는 나를 보았다.

“도윤.”

“네.”

“돌아왔어.”

이번에는 아까보다 조금 더 또렷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손에는 접은 봉투.

옆에는 초코우유.

머릿속에는 라면.

그리고 이상하게.

내 방의 허전함은 이제 조금 덜할 것 같았다.


라면은 결국 끓였다.

계란은 하나만 넣었다.

신 씨는 불만스럽게 냄비를 보았다.

“복귀 기념인데.”

“복귀 기념을 콜레스테롤로 하지 마세요.”

“배신.”

“영양입니다.”

“배신이 영양의 옷을 입었네.”

그 말을 하면서도 신 씨는 잘 먹었다.

정말 잘 먹었다.

나는 식탁 맞은편에 앉아 그 모습을 보았다.

방은 다시 조금 시끄러워졌다.

젓가락 소리.

라면 국물 소리.

초코우유 빨대 소리.

신 씨가 “맛 조용해”라고 말하는 소리.

나는 그 모든 소리가 이상하게 반가웠다.

다 먹고 난 뒤, 신 씨는 자연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시선이 멈췄다.

침대 밑.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안 됩니다.”

신 씨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방금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말했습니다.”

신 씨는 침대 밑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여전히 미개봉 상자가 있었다.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Full Set.

한 달이 넘도록 열리지 않은 상자.

내 사회적 생명의 봉인.

신 씨가 쪼그려 앉았다.

“아직도.”

“네. 아직도입니다.”

“안 열었어?”

“안 열었습니다.”

“왜.”

“인간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선 뽑았잖아.”

“그 선이 아닙니다.”

신 씨는 상자의 테이프를 보았다.

나는 긴장했다.

“신 씨.”

“응.”

“오늘은 정말 안 됩니다.”

“왜.”

“그런 분위기 아니잖아요.”

“뭐?”

“아무튼 안 됩니다.”

신 씨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그리고 손톱으로 테이프 끝을 건드렸다.

찍.

아주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내 귀에는 천둥처럼 들렸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신 씨!”

신 씨는 테이프 끝을 아주 조금 뜯어낸 채 나를 보았다.

눈이 조금 반짝였다.

“열릴 뻔했어.”

“열리면 안 됩니다!”

“나중에.”

“그 나중에라는 단어가 너무 무섭습니다.”

신 씨는 상자를 다시 침대 밑으로 밀어 넣었다.

완전히 넣지는 않았다.

일부러인지, 끝이 조금 튀어나왔다.

그녀가 말했다.

“다음에도 와야 하니까.”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 말에 웃을 수도 없고, 화낼 수도 없었다.

상자는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봉인은 조금 뜯겼다.

아주 조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불길했다.

신 씨는 초코우유를 들고 말했다.

“도윤.”

“네.”

“기특해.”

“뭘요?”

“아직 안 열어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건 칭찬입니까?”

“응.”

“그럼 신 씨도 기특합니다.”

“왜.”

“오늘은 테이프만 뜯고 멈추셨으니까요.”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반 기특.”

“그런 단어 만들지 마세요.”

그녀가 아주 작게 웃었다.

나도 결국 웃었다.

창밖은 어두웠고, 세상은 아직 시끄러웠고, SHINHWI의 복귀는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밤 내 방에는 라면 냄새와 초코우유와, 반쯤 뜯긴 테이프와, 돌아온 옆집 여자가 있었다.

분리수거는 아직 멀었다.

다키마쿠라의 봉인도 아직 살아 있었다.

일단은.

그리고 옆집 여자는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