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UNAC

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1권 / Chapter 17

CHAPTER 17: 옆집 여자는 첫 관중을 고른다

폐극장 사건 사흘 뒤, 도윤은 사건을 전하는 뉴스를 지켜본다. 자신의 무대로 돌아가기로 한 신휘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첫 관중을 고른다.

옆집 여자는 첫 관중을 고른다

폐극장 사건이 끝나고 사흘 뒤.

나는 집에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퇴근하고 돌아온 뒤였다.

라면을 끓이려다 말고 TV를 켰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있었다. 볼 게 그것밖에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안 볼 수가 없었다.

화면 아래 자막이 지나갔다.

SHINHWI 불법 방송 시도 사건, 주범 및 공범 구속영장 신청

자료 화면은 모자이크 처리된 폐극장 외부였다.

낡은 간판.

닫힌 매표소.

경찰 통제선.

그리고 검은 천으로 덮인 장비들이 차량에 실리는 장면.

앵커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경찰은 가수 SHINHWI 씨를 상대로 한 스토킹 및 불법 영상물 제작·유포 사건과 관련해 주범 권 모 씨 등 4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습니다.

권 모 씨.

권민석.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스토커.

주범.

자신만이 진짜 SHINHWI를 알고 있다고 믿었던 사람.

신휘가 직접 말했듯, 끝까지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

화면이 바뀌었다.

경찰 브리핑.

관계자 출입이 통제된 회색 벽.

마이크 여러 개.

— 주범 권 모 씨에게는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형법상 약취·유인 및 감금 교사, 폭행 교사,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허위영상물 등의 제작·반포 교사,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및 음란물 유포 관련 혐의 등이 적용됐습니다.

나는 리모컨을 꽉 쥐었다.

뉴스는 거기까지만 말했다.

당연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맞다.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없는 말들이 있다.

피해자의 몸을 다시 뉴스 문장 안에 세우지 않기 위해 지워야 하는 단어들이 있다.

뉴스는 납치라고 했다.

감금이라고 했다.

불법 영상물이라고 했다.

허위영상물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강간.

교사.

미수.

그 단어들은 자막에 뜨지 않았다.

앵커는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말하지 않았다.

NOVA LINE MUSIC의 공식 입장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신휘를 보호하기 위해, 민감한 범죄 정황을 최대한 지웠다.

불법 방송 시도. 허위영상물 제작 및 유포. 스토킹. 납치 및 감금. 아티스트 보호. 일반인 조력자에 대한 신상 추적 및 허위 사실 유포 자제 요청.

그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들은 말.

경찰이 나중에 확인해준 말.

한유경이 억지로 입술을 깨물며 삼켰던 말.

권민석은 단순히 보여주려던 게 아니었다.

자신이 만든 “진짜 SHINHWI”를 대중에게 알려야 한다는 망상으로, 조작 영상을 만들게 하고, 납치를 의뢰하고, 그 가짜 이미지에 실제 신휘를 밀어 넣으려 했다.

IT 기기를 다루는 것에 능숙한 정우람은 그저 푼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조작 영상을 만들었다.

그런데 대중의 반응이 붙자 자기가 무언가 대단한 것을 폭로하고 사람들이 원하는 걸 보여주는 사람인 양, 권민석이 의뢰한 영상과 이미지 외에도 다수의 난잡하고 추잡한 허위영상물을 조작해 만들고 퍼뜨렸다.

모두 가짜에 불과했지만 그 가짜들은 신휘를 실제로 해쳤다.

임동수는 더 단순했다.

권민석이 실행범의 역할을 푼돈으로 청탁한 폭행과 성범죄 전과가 있는 깡패.

SHINHWI의 음악도, 앨범도, 공연도 한 번 본 적 없는 인간이었다.

단지, 유명한 섹스 심볼 연예인을 자기 힘으로 짓밟을 수 있다는 욕망.

그것이면 충분했던 인간.

그가 폐극장 안에서 하려 했던 일은 뉴스에 나오지 않았다.

나오면 안 됐다.

하지만 나는 봤다.

그가 어떤 눈으로 신휘를 봤는지.

그가 라이브 시작 직전 어떤 허락을 기다렸는지.

유력한 용의자로 보였던 배상철은 무대 용역 일용직이었다.

여러 행사장과 촬영 현장을 오가며 얻은 동선 정보와 출입 구조를 권민석에게 넘겼고, 폐극장의 조악한 무대 소품 제작도 도왔다고 했다.

대단한 조직은 아니었다.

정교한 범죄단도 아니었다.

그들은 하찮았다.

너무 하찮아서 더 끔찍했다.

몇 백만 원.

몇 십만 원.

술값과 빚, 장비값, “성공하면 더 준다”는 약속.

그런 푼돈으로 움직였다.

그 푼돈으로, 사람 하나의 몸과 이름과 이미지를 통째로 훔치려 했다.

TV 화면이 다시 바뀌었다.

— NOVA LINE MUSIC 측은 피해 아티스트의 안정과 회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고 있으며, 현장에서 수사기관과 함께 피해자 구조에 협조한 일반인 조력자에 대해서도 신상 추적과 사적 접촉 시도, 허위 사실 유포를 중단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일반인 조력자.

나였다.

화면에는 내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당연하다.

폐극장 라이브에 잡힌 내 모습도 얼굴이 아니었다.

쓰러지는 카메라의 가장자리.

달려드는 사람의 몸.

손.

그리고 송출선이 뽑히는 순간.

그 정도였다.

그런데도 팬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선 뽑은 사람 누구냐. 신휘가 도윤이라고 부른 거 맞지? NOVA 공지에 나온 일반인 조력자가 그 사람 같은데. 신상 털지 마라. 진짜로. 그때 뛰어든 사람이면 보호해야지. 이걸 연애로 엮는 애들은 정신 차려라. 구조자는 구조자다.

나는 그런 글들을 봤다.

그리고 휴대폰을 엎었다.

그때 전화가 왔다.

한유경이었다.

나는 바로 받았다.

“네, 한유경 씨.”

전화 너머에서 잠깐 침묵이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

나는 그대로 굳었다.

“신 씨?”

“응.”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TV에서는 아직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응.”

“정말요?”

“아마.”

“그 아마는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화 너머에서 아주 작게 숨이 새었다.

웃음인지 한숨인지 알 수 없었다.

“아직 병원이십니까?”

“응.”

“검사는요?”

“많아.”

“다치신 곳은…….”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폐극장의 싸구려 붉은 조명.

손목의 자국.

입가의 피.

코트 안으로 작게 웅크리고 있던 어깨.

그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신휘는 내 침묵을 알았는지, 먼저 말했다.

“살아 있어.”

나는 눈을 감았다.

“네.”

“도윤은?”

“저도 살아 있습니다.”

“선 뽑았어.”

“네.”

“기특해.”

그 말에 숨이 막혔다.

폐극장 바닥에서 들었던 말과 같았다.

나는 겨우 대답했다.

“신 씨도 기특했습니다.”

“나?”

“네.”

“묶여 있었는데.”

“그래도 안 뺏겼잖습니까.”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TV에서는 계속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볼륨을 줄였다.

그때 신휘가 말했다.

“뉴스 봤어?”

“보고 있습니다.”

“싸네.”

나는 멈칫했다.

“네?”

“내 몸값.”

목소리는 무덤덤했다.

너무 무덤덤해서 더 아팠다.

“푼돈이래.”

나는 리모컨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왜.”

“그 사람들이 틀린 겁니다.”

“응.”

“신 씨가 싼 것이 아닙니다.”

나는 TV를 봤다.

“저 인간들이 싼 겁니다.”

신휘는 아주 작게 말했다.

“응.”

“네.”

“구려.”

그 한마디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구려.

그녀는 폐극장에서도 그렇게 말했다.

무대가 구리다고.

범인들이 구리다고.

그들이 만든 가짜가 구리다고.

이번에도 그 말이었다.

자기를 싸게 매긴 사람들이 구렸다.

자기 몸과 이름과 이미지를 푼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고 믿은 사람들이 구렸다.

신휘는 그걸 무덤덤하게 말하고 있었다.

무덤덤한 척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도윤.”

“네.”

“다음은.”

잠깐의 침묵.

“내가 고른 무대야.”

나는 숨을 멈췄다.

“복귀 무대 말씀이십니까?”

“응.”

“한유경 씨와 회사에서 준비하실 거죠?”

“아마.”

“이번엔 아마가 너무 많습니다.”

“도윤.”

“네.”

“첫 관중.”

나는 말을 잃었다.

“네?”

“꼭 봐.”

아.

나는 그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고마운 팬에게 해주는 초대.

현장에서 도와준 일반인에게 보내는 감사의 말.

언젠가 공식 복귀 공연을 하게 되면, 초대해주겠다는 뜻.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녀는 SHINHWI이고, 나는 팬이다.

팬에게 첫 관중이라고 말해주는 건 과한 친절이지만, 옆집 신 씨라면 할 수도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꼭 보겠습니다.”

“응.”

“무대 위에 다시 서시면.”

신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 말했다.

“예전과는 조금 다르게 볼 것 같습니다.”

“왜.”

“신 씨가 고른 무대니까요.”

전화 너머가 조용해졌다.

잠시 후 신휘가 아주 작게 말했다.

“응.”

그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웠다.

“그때 봐.”

“네.”

“도윤.”

“네.”

“라면.”

나는 눈을 감았다.

“병원에서 라면 찾지 마세요.”

“맛 없어.”

“병원밥은 영양입니다.”

“배신이 영양의 옷을 입었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정말 이상하게.

눈가가 뜨거워졌는데도 웃음이 나왔다.

“신 씨.”

“응.”

“번호는요?”

“없어.”

“네?”

“전에 쓰던 거. 해지했대.”

그럴 것이다.

스토커에게 노출된 번호.

문자까지 온 번호.

더 이상 쓸 수 없다.

“그래서 한유경 씨 번호군요.”

“나중에.”

신휘는 잠깐 말을 멈췄다.

“생기면.”

“네.”

“알려줄게.”

“네.”

신휘와의 통화는 길지 않았다.

한유경이 중간에 전화를 가져갔다.

“서도윤 씨.”

“네.”

“신휘 씨는 쉬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오늘 통화 내용은 외부에 말하지 마십시오.”

“당연합니다.”

“그리고 당분간 연락은 어렵습니다. 번호도 바뀌었고, 회복과 조사 일정이 있습니다.”

“네.”

“기다리지는 마세요. 신휘 씨의 공연이 잡히면 티켓은 주소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 말은 친절했다.

정확히는, 친절하려고 한 말이었다.

기다리지 마라.

그 말은 나를 보호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가 이 관계를 착각하지 않게.

내가 더 깊이 들어오지 않게.

신휘도, 나도,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야 하니까.

나는 말했다.

“알겠습니다.”

통화가 끊겼다.

TV에서는 아직 사건 뉴스가 이어지고 있었다.

나는 검은 화면이 된 휴대폰을 한참 내려다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제 정말 끝일 수도 있다.

신휘가 말한 그 “나중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동안 연락은 없었다.

번호가 없었다.

정확히는, 내가 연락할 번호가 없었다.

신휘의 휴대폰 번호는 해지되었다.

새 번호가 생겼는지, 생겼다면 누가 알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당연히 몰라야 했다.

한유경에게 먼저 연락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안부를 묻고 싶었다.

많이.

밥은 먹는지.

병원은 지겨운지.

아직도 라면이 먹고 싶은지.

손목은 괜찮은지.

밤에 잠은 자는지.

뉴스는 보고 있는지.

댓글은 보지 않는지.

내가 뽑은 선이 정말 도움이 됐는지.

그때 카메라를 찬 발은 다치지 않았는지.

묻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물을 권리가 없었다.

나는 일반인 조력자였다.

뉴스 자막에 나온 그 문장.

그 정도가 맞았다.

현장에서 우연히 도운 사람.

폐극장에 같이 갔고, 운 좋게 선을 뽑은 사람.

그 이상을 스스로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는 계속 스스로에게 말했다.

SHINHWI가 일반인과 계속 관계를 이어갈 이유는 없다.

신휘는 다시 보호를 받아야 한다.

회복해야 한다.

법적 대응을 해야 한다.

언젠가 복귀를 준비해야 한다.

나는 출근해야 한다.

보고서를 써야 한다.

점심 메뉴를 골라야 한다.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

서로의 세계는 다르다.

잠깐 겹쳤을 뿐이다.

말은 쉬웠다.

그렇게 생각하는 일은 어려웠다.

집이 너무 조용했다.

정말 이상할 정도로.

예전에도 혼자 살았다.

이 방은 원래 조용했다.

퇴근하면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내가 불을 켜고, 내가 물을 마시고, 내가 TV를 켰다. 벽 너머에서 누가 넘어지는 소리도, 현관 앞에서 초인종이 울리는 일도, 누가 라면을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그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정상으로 돌아온 방이 비어 보였다.

라면을 끓일 때마다 양을 잘못 잡았다.

하나만 끓이면 되는데, 물을 조금 많이 넣었다.

계란을 하나 더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편의점에 가면 초코우유 앞에서 멈췄다.

사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다 어느 날은 샀다.

집에 와서 식탁 위에 올려두고 한참 봤다.

마시지는 않았다.

냉장고에 넣었다.

다음 날 출근 전, 냉장고를 열다가 그 초코우유를 보고 멈췄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그 생각이 들었다.

이건 걱정이다.

나는 그렇게 정리하려 했다.

위험한 일을 겪은 사람을 걱정하는 건 당연하다.

이웃이었고, 내가 사건에 엮였고, 폐극장에서 봤던 장면이 있었으니까.

걱정이다.

그런데 걱정이라면, 왜 분리수거장 앞에서 매번 멈추는가.

왜 밤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괜히 옆집 문을 보게 되는가.

왜 벽 너머가 조용하면 안도보다 허전함이 먼저 오는가.

왜 라면 냄새가 나면, 당연히 들릴 리 없는 목소리를 기다리게 되는가.

도윤.

라면.

그 두 단어가 오지 않는 밤이 계속됐다.

첫 주에는 정신이 없었다.

둘째 주에는 뉴스를 봤다.

셋째 주에는 뉴스를 끊으려고 했다.

넷째 주에는 취미를 찾아봤다.

직장인 취미 추천.

운동.

클라이밍.

요리.

베이킹.

러닝.

사진.

식물 키우기.

악기.

나는 화면을 한참 보다가 닫았다.

하고 싶은 게 없었다.

내가 필요한 건 취미가 아니었다.

허전함을 메울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허전함은 취미 추천 목록으로는 메워지지 않았다.

박 대리는 그걸 눈치챘다.

“서도윤 씨.”

“네.”

“요즘 밥을 너무 대충 먹어요.”

“그렇습니까?”

“네. 사람이 라면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나는 잠깐 멈췄다.

“그 말, 제가 누구한테 한 적 있습니다.”

“그분이요?”

“네.”

박 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는 대신 말했다.

“연락 없어요?”

“네.”

“기다리는군요.”

“아닙니다.”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표정이 제일 기다리는 표정이에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박 대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기다리는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기다릴 사이가 아닙니다.”

“사람의 사이란 것이 뭔데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

사이.

이웃.

팬과 가수.

일반인 조력자와 피해자.

라면 끓여준 사람과 먹은 사람.

폐극장에서 선을 뽑은 사람과, 그 선 너머에 있던 사람.

무엇 하나 정확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기다리면 안 되는 것 같았다.

“끝난 일입니다. 그저 얼마간의 비현실이었어요.”

나는 말했다.

박 대리는 나를 보았다.

“진짜요?”

“네.”

“끝난 일이라는 사람치고는 너무 기다리는 얼굴인데요.”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날 점심은 거의 먹지 못했다.


한 달 하고도 며칠이 지난 밤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방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와 불을 켰다.

라면은 있었다.

계란도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하루 지난 초코우유가 있었다.

버려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였다.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나는 그대로 멈췄다.

택배일 수 있다.

관리실일 수 있다.

이웃일 수 있다.

그런데 심장이 먼저 알았다.

나는 현관으로 걸어갔다.

낡은 철문에 붙은 렌즈를 통해 회색 후드티와 검은 볼캡이 보였다.

마스크를 쓴 얼굴.

한 손에는 기타 케이스.

다른 손에는 초코우유.

초코우유.

나는 숨을 멈췄다.

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도윤.”

나는 문을 열었다.

신휘가 서 있었다.

한 달 만이었다.

현관 밖에 얌전히 서 있었다.

어딘가로 도망쳐 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그냥 편의점에 다녀온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둘 다 맞는 것 같았다.

나는 한참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 씨.”

“응.”

“살아…….”

말이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신휘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살아 있어?”

지난번 통화 때 들었던 말과 비슷했다.

아니, 처음 사건 이후 내가 보냈던 메시지와도 비슷했다.

나는 겨우 대답했다.

“그건 제가 물어야 하는 말입니다.”

“응.”

그녀는 초코우유를 빨았다.

그리고 여전히 문밖에 서 있었다.

나는 뒤늦게 이상함을 느꼈다.

“……안 들어오십니까?”

신휘는 나를 보았다.

“들어가도 돼?”

“네?”

“허락.”

“허락이요?”

“응.”

그 말투가 너무 당연해서, 나는 순간 대답을 잊었다.

“왜 갑자기 예의 바르십니까?”

“남의 집.”

“그걸 이제 아셨습니까?”

“전에도 알았어.”

“전에는 그냥 들어오셨던 것 같은데요.”

“그땐 라면이 허락.”

“라면은 주거침입 면허가 아닙니다.”

신휘는 초코우유를 들고 잠깐 생각했다.

정말로 라면이 남의 집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비슷한 무언가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오늘은 뭐 때문에 오셨습니까? 라면인가요?”

그녀는 기타 케이스를 들어 보였다.

“무대.”

나는 눈을 감았다.

한 달 동안 그렇게 허전했는데.

막상 돌아오자마자 머리가 아팠다.

너무 신휘다워서.

“한유경 씨는 알고 계십니까?”

“아마.”

“그 아마는 절대 안 되는 아마입니다.”

“지금쯤 알았을 거야.”

“도망치셨군요.”

“태오한테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어.”

나는 현관문을 붙잡았다.

강태오.

원년부터 함께 한 SHINHWI의 기타리스트다.

그러니까 한유경이나 보안팀에는 이야기하지 않고, 밴드 멤버에게 슬쩍 이야기해 도망친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는 거다.

“그거 도망 아닙니까?”

“응. 여기로 도망.”

“신 씨!”

“이번엔 복귀.”

“복귀와 도망은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비슷한 거.”

“하나도 안 비슷합니다!”

그녀는 여전히 문턱 바깥에 서 있었다.

기타 케이스와 초코우유를 든 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들어오세요.”

신휘는 그제야 한 걸음 안으로 들어왔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마치 처음부터 여기 올 예정이었다는 듯이.

나는 문을 닫았다.

“설명부터 하세요.”

“나중에.”

“지금입니다.”

“방송 먼저.”

“네?”

신휘는 내 방으로 들어가 기타 케이스를 내려놓았다.

나는 뒤따라갔다.

그녀는 방을 둘러보았다.

책장.

앨범.

포스터.

노트북.

마이크.

라면 봉지.

침대 밑으로 내가 숨기려다 실패한 다키마쿠라 상자 끝부분.

그녀의 시선이 그쪽에서 멈췄다.

“아직도 안 열었어?”

“오늘 그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방송 소품.”

“절대 아닙니다.”

“공식 굿즈잖아.”

“공식 굿즈가 항상 인간을 구원하지는 않습니다.”

신휘는 조금 아쉬운 얼굴을 했다.

“나중에.”

“나중에도 안 됩니다.”

“아쉬워.”

“그 감정은 버리셔도 됩니다.”

나는 침대 밑으로 상자를 더 밀어 넣었다.

다행히 어떻게든 들어갈 수 있었다.

신휘는 그걸 보며 말했다.

“감금.”

“보호입니다.”

“감금이 보호의 옷을 입었네.”

“오늘은 제 사회적 생명 보호입니다.”

그녀는 대답 없이 기타 케이스를 열었다.

검은 어쿠스틱 기타였다.

무대용으로 화려하게 꾸민 악기가 아니었다.

레트로한 연출용 악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작고, 오랜 사용감이 있었다.

나는 멈췄다.

“신 씨.”

“응.”

“정말 여기서 방송하실 겁니까?”

“응.”

“회사랑 상의해야 합니다. 보안도 필요하고, 공지 타이밍도, 법무 검토도—”

“다 알아.”

“아시는 분이 왜 이러십니까?”

“내가 고른 무대라서.”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폐극장.

가짜 무대.

쓰러진 카메라.

이건 내 무대가 아니야.

나는 네 것이 아니야.

그리고 한 달 전, 끊긴 전화 너머로 그녀가 했던 말.

다음은 내가 고른 무대야.

첫 관중.

꼭 봐.

나는 그걸 콘서트 초대 같은 말로 받아들였다.

언젠가 공식 복귀 공연을 하게 되면, 초대해주겠다는 뜻이라고.

그런데 신휘는 지금 기타 하나를 들고 내 방에 서 있었다.

“첫 관중.”

그녀가 말했다.

“도윤.”

나는 숨을 삼켰다.

“제가요?”

“응.”

“지금요?”

“응.”

“이 방에서요?”

“응.”

“신 씨, 이건 정말…….”

“도윤.”

그녀는 나를 보았다.

“볼 거야?”

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볼 거야?

그 질문은 너무 단순했다.

그리고 너무 무거웠다.

나는 팬이었다.

SHINHWI의 무대를 기다리던 사람.

그녀가 다시 무대에 서면 꼭 보겠다고 말한 사람.

하지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내 방.

기타 하나.

초코우유.

아무도 없는 라이브 창.

첫 관중.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봅니다.”

신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응.”

그녀는 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는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잠깐만요. 적어도 한유경 씨에게는 연락해야 합니다.”

“시작하고.”

“안 됩니다. 시작 전에 해야 합니다.”

“그러면 막아.”

“막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도윤.”

그녀는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신휘가 신휘해.”

나는 그대로 멈췄다.

“그걸 본인이 말하시면 안 됩니다.”

“왜.”

“너무 정확해서 화가 납니다.”

신휘는 노트북을 켰다.

내 방에 있는 작은 웹캠이 켜졌다.

플랫폼 화면.

밴드의 공식 계정.

나는 그걸 보고 머리가 아파졌다.

밴드의 공식 계정을 밴드의 프론트이자 중심인 SHINHWI가 알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신휘가 알고 있다는 것은 이상하다.

적어도 내가 한유경이라면 다른 멤버들은 몰라도 신휘에게 밴드의 공식 계정 비밀번호를 알려주는 위험을 감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유경 씨가 알려줬을 리 없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유경이 노트북에서 배웠어.”

“그런 것을 배웠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한유경 씨에게는 알고 있다고 말 안했죠?”

“응.”

“응으로 될 일이 아닙니다.”

“필요할 때 쓰려고 배웠어. 내 밴드, 내 공식 계정. 괜찮아.”

“괜찮지 않습니다.”

적어도 신휘 씨에게는.

신휘는 방송 제목 칸에 손을 올렸다.

나는 화면을 봤다.

아직 제목은 비어 있었다.

그녀는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짧게 입력했다.

MY STAGE

나는 그 제목을 처음 봤다.

MY STAGE.

내 무대.

신휘가 직접 고른 말.

그녀가 폐극장의 가짜 무대 이후 처음 꺼내려는 이름.

“이게 제목입니까?”

“응.”

“내 무대라고 하기에는 여기는 제 방입니다만?”

“비슷한 거.”

“제 방은 신 씨의 무대와 비슷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내 얼굴 많아.”

“그 대답은 아무 설명도 안 됩니다.”

“나중에.”

그녀는 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다.

“잠깐, 신 씨!”

이미 늦었다.

방송이 시작됐다.

시청자 수는 0명이었다.

정말 0.

화면에는 내 방이 비쳤다.

책장, 앨범, 기타를 든 신휘, 화면 밖에서 허둥대는 나.

신휘는 아주 조용히 기타를 조율했다.

줄 하나를 튕겼다.

낮은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시청자 수가 1명이 되었다.

나는 얼어붙었다.

“누가 들어왔습니다.”

“응.”

“방송을 켜셨으니 당연하지만요.”

2명.

5명.

12명.

채팅창에 첫 글이 올라왔다.

뭐야 SHINHWI? 가짜임? 얼굴 뭐야 진짜 같은데 공식 계정이잖아 아무 예고 없었는데? 방 제목 MY STAGE?

신휘는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타 줄을 한 번 더 튕겼다.

시청자 수가 73명이 되었다.

나는 드디어 정신이 돌아왔다.

“안 됩니다. 연락해야 합니다.”

신휘는 나를 보았다.

“지금?”

“네, 지금!”

“방송 중인데.”

“그래서 더요!”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한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손이 떨렸다.

신호음이 한 번 울리기도 전에 받았다.

“서도윤 씨.”

목소리가 얼음장 같았다.

이미 알고 있다.

“네.”

“강태오 씨에게 들었습니다. 신휘 씨가 그쪽에 있습니까?”

“네.”

수화기를 대지 않은 반대쪽 귀에 신휘의 ’태오 배신’이라는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다.

“방송한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다만 방송 중입니까?”

나는 노트북을 봤다.

시청자 수는 이미 312명이었다.

“네.”

전화 너머에서 아주 긴 침묵이 흘렀다.

“왜 방송 전에 연락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려고 했는데 신 씨가 신휘했습니다.”

“…….”

한유경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더 무서웠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신 씨가 ‘시작하면 막을 수 없으니까 시작하고 연락하자’는 취지로 행동하셨습니다.”

신휘가 기타를 안은 채 나를 봤다.

“배신?”

“사실 진술입니다.”

한유경이 낮게 말했다.

“댓글창 닫으세요.”

“네. 지금 닫겠습니다.”

당장 방송을 끄라고 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는 자신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나는 노트북 쪽으로 다가갔다.

시청자 수는 1,204명.

채팅창은 더 빨라졌다.

진짜 신휘다 아니 공식 맞아? NOVA 뭐함? 뭐야, 방에서 실수로 켠 거 아니야? 저런 기타 든 거 처음 봄 진짜 첫 방송? 그냥 방 아니냐? 누구 방이지? 사생활 털지 마라 미친놈들아

나는 댓글창 닫기 버튼을 찾았다.

그때 신휘가 기타를 쳤다.

첫 코드.

방 안의 공기가 바뀌었다.

나는 손을 멈췄다.

채팅창도 멈춘 것처럼 보였다.

아니, 실제로 멈춘 건 아니었다.

글자는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하지만 속도가 이상하게 느려졌다.

사람들이 쓰다 말고 듣기 시작한 것 같았다.

신휘는 카메라를 보지 않았다.

처음에는 기타를 봤다.

그다음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화장기 거의 없는 얼굴.

회색 후드티.

검은 머리.

무대 조명도 없고, 붉은 조명도 없고, 레이스도 코르셋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방은 무대가 됐다.

그녀가 고른 무대.

신휘가 입을 열었다.

“안녕.”

목소리는 낮았다.

평소처럼 짧았다.

그런데 화면 너머로 나가는 순간, 그 한마디는 무대의 시작이 되었다.

“나야.”

잠깐의 침묵.

“SHINHWI.”

나는 숨을 멈췄다.

그 이름을 그녀가 직접 말했다.

누가 증명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다.

누가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

자기 방도 아닌 내 방에서, 기타 하나를 안고, 자기 입으로.

SHINHWI.

채팅창이 다시 빨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욕설보다 놀람이 많았다.

진짜다 목소리 SHINHWI야 댓글 닫아라 제발 아니 듣자 목소리만 들었는데 울 것 같음 MY STAGE 뭐야

나는 뒤늦게 버튼을 눌렀다.

댓글창이 닫혔다.

화면은 조용해졌다.

신휘는 말했다.

“전에.”

그녀는 잠깐 기타 줄을 눌렀다.

“내가 아닌 모습이 방송될 뻔했어.”

방 안이 조용해졌다.

한유경의 숨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아주 작게 들렸다.

신휘는 계속했다.

“그건 내 무대가 아니었어.”

그녀는 카메라를 똑바로 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잠깐.

“내가 고른 무대에서 해.”

나는 카메라 옆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화려하지 않아.”

신휘는 방을 둘러보았다.

“좁아.”

나는 속으로 외쳤다.

제 방입니다.

“라면 냄새도 좀 나.”

나는 눈을 감았다.

신 씨.

제발.

하지만 신휘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래도 내 무대야.”

그녀는 마이크도 없이, 기타를 안고 말했다.

“이 곡은.”

처음으로 제목을 말했다.

“MY STAGE.”

그 순간, 작품 전체가 아주 작게 방향을 바꾼 것 같았다.

그동안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던 이름.

소속사도, 팬덤도, 뉴스도, 나도 몰랐던 이름.

신휘가 자기 입으로 처음 세상에 꺼낸 이름.

MY STAGE.

그녀는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반주는 없었다.

기타 하나뿐이었다.

처음에는 손이 조금 굳어 있었다.

병원과 조사를 오가며 아직 회복이 끝나지 않았을 몸이었다. 손목에 아직 희미한 자국이 있었고, 오른손 움직임도 완벽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코드는 단순했다.

처음엔 작은 방이었어

목소리는 낮게 시작했다.

조금 마르고, 조금 거칠었다.

숨소리뿐인 밤 누구도 듣지 않는 곳에서 내 이름을 다시 불러

하지만 한 소절이 지나자, 그 거친 목소리 안에서 중심이 잡혔다.

SHINHWI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내가 알던 무대 위의 SHINHWI와는 달랐다.

유혹하지 않았다.

압도하려 들지도 않았다.

위험한 표정을 짓지도 않았다.

그냥 불렀다.

자기 목소리로.

남이 만든 이미지도 아니고, 회사가 만든 복귀 연출도 아니고, 범인들이 훔치려 한 가짜 무대도 아니고.

신휘가 지금 이 자리에서 고른 노래.

늦게 도착한 아침에 나는 어제의 얼굴로 서 있어 모두가 지나간 시간 위에 내 발자국은 아직 어려

웃는 법도 다시 배웠고 걷는 법도 다시 배웠어 사랑받는 자리에서도 혼자인 법을 배웠어

누가 내 조명을 골랐고 누가 내 대사를 썼어 누가 내 어둠을 가져가 자기 꿈이라 불렀어

하지만 이제 알아 무대는 주어지는 게 아냐 내가 서기로 한 순간 거기가 시작이야

MY STAGE.

나는 카메라 옆에서 그걸 봤다.

첫 관중.

정말 그랬다.

시청자는 이미 수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었지만, 그 순간 나는 이상하게 알았다.

신휘가 나를 첫 관중으로 부른 건, 팬서비스가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 나를 여기 세우기 위해 왔다.

자기가 고른 첫 무대를, 내가 봐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 사실이 너무 늦게 들어왔다.

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뺐다.

한유경은 통화를 끊지 않았다.

그녀도 듣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노래가 중반을 지나며 신휘의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댓글창은 닫혀 있었지만, 시청자 수는 계속 늘고 있었다.

1만.

3만.

7만.

10만.

숫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숫자들이 무엇을 하든, 지금 이 방의 중심은 신휘였다.

그녀는 자기 무대의 중심에 있었다.

This is my stage my voice, my name 네가 만든 빛은 꺼 내가 나를 비출게

This is my stage my scars, my way 잃어버린 시간 끝에서 다시 나로 노래해

Ah-ah I choose my stage Ah-ah I choose my name

Ah-ah 아픈 채로 빛나 Ah-ah 내가 나를 불러

노래가 끝났다.

마지막 코드는 오래 울리지 않았다.

기타 하나였으니까.

소리는 금방 사라졌다.

방 안에 조용한 여운이 남았다.

신휘는 카메라를 보았다.

“복귀는.”

그녀는 잠깐 숨을 골랐다.

“내가 정해.”

그리고 아주 짧게 덧붙였다.

“내 이미지는 내가 정해.”

나는 방송 종료 버튼 위에 손을 올렸다.

이제 꺼야 한다.

충분하다.

한유경도 아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때 신휘가 말했다.

“그리고.”

불길했다.

나는 온몸으로 느꼈다.

“신 씨.”

내 목소리가 작게 새었다.

이미 방송 중이었다.

신휘는 카메라를 보며 말했다.

“라면 먹을 거야.”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왜 마지막에 그 말을—”

그 순간 아직 방송이 켜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채팅창은 닫혔지만, 소리는 나가고 있었다.

나는 거의 몸을 던지듯 종료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꺼졌다.

너무 늦었다.

아마 0.8초쯤 늦었다.

방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신휘는 태연했다.

“배고파.”

나는 그녀를 보았다.

“전 국민 앞에서 라면을 찾으셨습니다.”

“댓글 닫았잖아.”

“소리는 나갔습니다.”

“아.”

“그 아가 너무 늦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분 다.”

우리 둘 다 휴대폰을 봤다.

한유경의 목소리는 매우 낮고, 매우 차분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이제 아주 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신휘는 기타를 내려놓았다.

“라면 먹고.”

“신휘 씨.”

“배고파.”

한유경은 한참 말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유경 씨.”

“네.”

“라면 하나만 끓이고 혼나도 됩니까?”

“……서도윤 씨.”

“네.”

“오늘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공식 대응도 다시 해야 하고, 보안팀을 보냈으니 곧 도착할 겁니다. 신휘 씨는 보안팀과 이동해야 되니 도망가지 마세요.”

“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라면은 드리세요.”

나는 놀라 휴대폰을 봤다.

신휘도 잠깐 멈췄다.

“식사는 하셔야 하니까요.”

신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유경이 기특해.”

전화 너머에서 깊은 한숨이 들렸다.

“그 말은 제가 할 말입니다.”

나는 부엌으로 갔다.

냄비를 꺼내고, 물을 받았다.

신휘는 내 의자에 앉아 기타를 무릎에 올린 채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한 달 동안 비어 있던 방이 다시 시끄러워졌다.

노트북에는 방금 종료된 방송 화면이 남아 있었다.

제목.

MY STAGE

책장에는 SHINHWI 앨범들이 있었다.

침대 밑에는 아직 다키마쿠라 상자가 숨어 있었다.

식탁에는 라면 봉지가 있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에는 신휘가 있었다.

도망쳐 온 사람.

복귀를 선언한 사람.

자기 무대를 직접 고른 사람.

그리고 지금은 라면을 기다리는 옆집 여자.

나는 냄비에 라면을 넣었다.

물이 끓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아주 평범했다.

그래서 조금 무서웠고, 그래서 더 좋았다.

신휘가 말했다.

“도윤.”

“네.”

“기특해.”

나는 라면을 저으며 말했다.

“오늘은 신 씨가 더 기특합니다.”

신휘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

“응.”

그 한 글자가 방 안에 내려앉았다.

폐극장의 붉은 조명도, 인터넷의 채팅창도, 가짜 무대도 이 방에는 없었다.

있어도 들어오지 못했다.

여기는 좁고, 평범하고, 라면 냄새가 나는 방이었다.

하지만 오늘 밤.

이곳은 분명히 무대였다.

신휘가 고른 무대.

MY S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