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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1권 / Chapter 15

CHAPTER 15: 옆집 여자는 사람들에게 벗겨진다

예고된 방송의 카운트다운이 줄어드는 가운데, 도윤과 한유경은 경찰의 수색을 기다리며 폐극장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낯익은 흔적을 발견한다.

옆집 여자는 사람들에게 벗겨진다

차가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기도 전에 경찰차 두 대가 먼저 출구를 통과했다.

붉고 푸른 불빛이 천장에 짧게 번졌다가 사라졌다.

우리가 탄 차는 그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경찰은 경찰대로 움직였다.

폐극장으로 가는 인원도 있었고, 다른 후보지를 확인하는 인원도 있었다.

우리는 조금 늦게 출발했다.

NOVA LINE MUSIC 차량.

운전석에는 회사 직원 한 명.

뒷좌석에는 나와 한유경.

그게 전부였다.

폐극장 근처까지 이동하되, 경찰이 지정한 곳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도착하면 대기한다.

그 설명도 출발 전에 경찰에게 들은 것이 전부였다.

작전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누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언제 진입하는지.

그런 건 아무도 우리에게 설명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한유경은 매니저였고.

나는 직장인이었다.

범죄 현장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차가 도로로 올라왔다.

내 휴대폰 화면에는 아직 그 페이지가 떠 있었다.

잠시 후, 진짜 SHINHWI를 보여드립니다.

그리고 아래.

00:47:51

숫자가 줄어들었다.

나는 화면을 껐다.

3초 뒤 다시 켰다.

00:47:42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었다.

당연했다.

9초 만에 사람이 구조될 리 없다.

그런데도 자꾸 확인했다.

대기 인원은 이미 육천 명을 넘었다.

페이지 아래 채팅창은 너무 빨리 올라가서 한 줄을 제대로 읽기도 어려웠다.

이거 진짜임? SHINHWI 맞으면 오늘 인터넷 끝남 낚시라도 일단 본다 아까 그 스캔들 원본 좀 풀어라 진짜 모습이라잖아 ㅋㅋㅋ 수위 어디까지냐 얼굴부터 인증해 가짜여도 수위 세기만 하면 됨

나는 화면을 내렸다.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또 다른 문장이 올라왔다.

납치한 거 아니냐 ㅋㅋ

그 아래.

진짜 납치면 더 레전드

나는 휴대폰을 껐다.

이번에는 뒤집어서 무릎 위에 놓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저 사람들은 모른다.

신 씨가 정말 사라졌다는 걸.

경찰이 움직이고 있다는 걸.

휴대폰이 차 안에 남아 있었다는 걸.

어젯밤 어떤 남자가 신 씨 집 문고리를 돌렸다는 걸.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저럴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몰라서 저러는 걸까.

납치한 거 아니냐라고 써놓고도 그다음에 웃고 있었다.

진짜면 레전드.

수위가 세면 됨.

누군가에게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보다 오늘 밤 자기가 볼 게 재미있는지가 먼저였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보지 마세요.”

옆에서 한유경이 말했다.

나는 그녀를 봤다.

한유경은 자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유경 씨도 보고 계시잖습니까.”

“저는 봐야 합니다.”

그녀가 짧게 대답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한유경은 곧바로 받았다.

“네.”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네. 캡처만 하지 말고 계속 녹화해 주세요. 채널이 내려가도 원본 보존해야 합니다.”

잠깐 들었다.

“미러는요?”

다시 침묵.

한유경의 입술 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네. 전부 기록하세요. 법무팀에 넘기고 플랫폼 쪽 긴급 요청 계속 넣어주세요.”

통화가 끊겼다.

그녀는 곧바로 다른 곳에 전화를 걸었다.

“배상철 위치 아직입니까?”

잠깐.

“알겠습니다. 경찰 쪽 확인 기다리겠습니다.”

끝.

다시 전화.

이번에는 받지 않고 메시지만 확인했다.

한유경은 계속 차분했다.

정확히는.

차분하게 말하고 있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왼손만 빼면.

손이 너무 세게 쥐어져 있었다.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손톱이 손바닥 안으로 파고들 것 같았다.

나는 그 손을 잠깐 봤다.

한유경은 눈치채고 손을 폈다.

그리고 몇 초 뒤 다시 쥐었다.

“……괜찮습니까?”

내가 물었다.

한유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창밖을 봤다.

신호가 빨간색이었다.

차가 멈췄다.

퇴근 시간이었다.

옆 차선에 버스가 섰다.

버스 창문 너머로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웃었다.

누군가는 이어폰을 꽂고 있었다.

횡단보도를 학생들이 건넜다.

한 남자가 편의점 봉투를 들고 뛰었다.

평범했다.

모든 게 너무 평범했다.

내 휴대폰이 진동했다.

라이브 알림이었다.

방송 시작 알림은 아니었다.

대기 페이지를 팔로우하는 사람이 급격히 늘면서 뜬 알림이었다.

나는 다시 화면을 켰다.

00:41:06

대기 인원.

11,382명.

조금 전보다 거의 두 배였다.

“……미친.”

나도 모르게 말했다.

채팅은 더 빨라졌다.

커뮤에 다 퍼짐 본방 여기 맞음? 링크 저장해놔라 터질 수도 있음 녹화하는 사람 있음? 나 한다 미러 따둠 진짜 SHINHWI면 바로 박제감 가짜라도 삭제 전에 봐야지 그 영상보다 센 거 기대한다

녹화.

미러.

박제.

삭제 전에.

사람이 아니라 영상 이야기였다.

아직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는데.

신 씨가 살아 있는지.

다친 데는 없는지.

겁먹고 있는지.

그런 건 아무도 묻지 않았다.

아니.

몇 개쯤은 있었을지도 모른다.

채팅이 너무 빨라 보이지 않았을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저런 것뿐이었다.

센 거 기대한다.

나는 화면을 껐다.

손이 떨렸다.

신 씨 얼굴이 떠올랐다.

회색 후드티.

볼캡.

마스크.

난간 위에 올려두었던 손.

바다를 보면서.

문 없네.

그렇게 말하던 사람.

계란 하나도 제대로 못 굽는다.

세제를 많이 넣으면 깨끗해지는 줄 안다.

체인 거는 법도 내가 알려줬다.

라면 하나 먹고 초코우유를 내밀면서 라면값이라고 했다.

그런 사람이다.

그냥.

그런 사람이다.

내 옆집에 살던 이상한 여자.

그런데 지금 누군가는 그 사람을 데려갔다.

그리고 진짜 SHINHWI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진짜.

그 단어가 너무 싫었다.

뭘 진짜라고 만들 생각이지.

어떤 옷을 입혀놓고.

어디에 세워놓고.

누구 옆에 밀어놓고.

무슨—

나는 생각을 멈췄다.

멈추려고 했다.

안 됐다.

이미 한 시간이 넘었다.

신 씨가 마지막으로 확인된 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방송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생각이 머리에 들어온 순간.

숨이 잘 안 쉬어졌다.

“서도윤 씨.”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서도윤 씨.”

“……네.”

“숨 쉬세요.”

그 말을 듣고서야 내가 숨을 너무 얕게 쉬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길게 들이마셨다.

잘 안 됐다.

한유경이 나를 보고 있었다.

입술이 굳어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됐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일이 벌어질까.

방송이 시작되면.

카메라 앞에 신 씨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

아니.

서 있기나 할까.

그 순간 한유경이 고개를 돌렸다.

창밖을 봤다.

“……씨발.”

아주 작았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한유경은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목소리는 이미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네. 말씀하세요.”

잠깐.

“폐극장 선발 인원은요?”

그녀는 듣기만 했다.

나는 몸을 조금 세웠다.

“네.”

한유경의 손에 다시 힘이 들어갔다.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뭐래요?”

내가 바로 물었다.

한유경은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경찰이 이동 중이랍니다.”

“아직 도착 안 했습니까?”

“근처 팀은 먼저 접근 중이고, 추가 인원도 가고 있답니다.”

그게 전부였다.

몇 명인지.

얼마나 걸리는지.

언제 들어가는지.

모른다.

“폐극장이 맞대요?”

“아직 모릅니다.”

또 그 말.

아직 모른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휴대폰을 켰다.

00:33:18

시간이 너무 빨랐다.

아니.

느렸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다.

1초가 너무 길었는데 8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대기 인원은 만 팔천 명을 넘었다.

채팅에 새 문장이 떠올랐다.

근데 진짜 강제로 찍는 거면 문제 아님?

나는 손을 멈췄다.

처음으로 정상적인 말 같았다.

곧바로 아래가 올라왔다.

문제는 경찰이 알아서 하겠지 일단 방송이나 켜 ㄹㅇ 우리가 뭘 어쩌라고 신고할 사람은 신고했겠지 난 볼 건데 SHINHWI 본인이 저런 컨셉 좋아하잖아 그러니까 어울리는 거지 ㅋㅋ 싫으면 저런 이미지 왜 했겠냐

나는 그대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지막 문장이 머릿속에 박혔다.

싫으면 저런 이미지 왜 했겠냐.

아.

이거였다.

어젯밤 문밖의 남자도 그랬다.

어울리는 남자들.

어울리는 곳.

어울리는 모습.

무대 위에서 어떤 이미지를 선택했다는 이유로.

무대 밖에서도 그 이미지대로 다뤄져도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보고 싶은 방식으로.

자기가 원하는 만큼.

그리고 지금 저 사람들은 신 씨가 실제로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보고도.

본인이 그런 컨셉 좋아하잖아.

한 줄이면 끝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너무 세게 쥐었다.

“서도윤 씨.”

한유경이 불렀다.

“저 사람들…….”

말이 제대로 안 나왔다.

“저 사람들 지금.”

한유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나도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욕을 하고 싶었다.

화면 속 이름 하나하나 찾아가서 얼굴을 보고 싶었다.

너희가 기다리는 게 뭔지 아느냐고 묻고 싶었다.

사람이 납치됐을 수도 있다고.

아니.

납치됐다.

지금 경찰이 찾고 있다고.

그걸 알면 채팅을 멈출 건지 묻고 싶었다.

그런데 아까 봤다.

진짜 납치면 더 레전드.

말해봐야 소용없을 사람도 있었다.

그 사실이 더 역겨웠다.

나는 휴대폰을 던지고 싶었다.

못 던졌다.

혹시라도.

신 씨가 나오면.

방송이 갑자기 시작되면.

무언가 바뀌면.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알아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서 다시 화면을 봤다.

그게 제일 끔찍했다.

저 사람들과 똑같은 화면을 보고 있다는 게.

목적은 전혀 다른데도.

나는 신 씨가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고.

저들은 뭔가 자극적인 장면을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화면에는 똑같이 숫자 하나가 줄고 있었다.

00:29:59


시간이 25분 아래로 내려갔을 때부터 한유경의 전화가 더 자주 울렸다.

“네.”

“플랫폼 답변 왔습니까?”

“해외 서버 쪽은요?”

“미러 링크 전부 경찰에도 전달해 주세요.”

“언론에는 아직 실종 사실 외 세부 내용 내보내지 마세요.”

“가족 쪽은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그 마지막 말에서 목소리가 잠깐 막혔다.

정말 잠깐이었다.

한유경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말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었다.

휴대폰을 내리지 않았다.

그대로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신 씨 가족.

그 생각까지 하면.

나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차량 앞쪽에서 내비게이션 안내가 들렸다.

목적지까지 12분.

내 휴대폰.

00:23:41

시간은 우리보다 빨랐다.

“더 빨리 못 갑니까?”

말이 튀어나왔다.

운전하던 직원이 백미러로 나를 봤다.

미안한 표정이었다.

“앞이 막혀서…….”

나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이 사람한테 화낼 일이 아니다.

빨간불.

앞차.

퇴근 시간.

평범한 것들이 전부 방해처럼 느껴졌다.

신호 하나.

차 한 대.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 하나.

전부 미웠다.

그러면 안 된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미웠다.

빨리 가야 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경찰은 이미 가고 있다.

우리가 먼저 도착할 필요는 없다.

내가 가서 할 일도 없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00:22:58

숫자가 줄었다.

신호는 아직 빨간색이었다.

“제발…….”

내 입에서 다시 말이 나왔다.

“제발 빨리…….”

한유경이 옆에서 말했다.

“저도 압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처음이었다.

한유경이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목을 한 번 가다듬었다.

다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만들었다.

하지만 늦었다.

나는 봤다.

꽉 다문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손에 쥔 휴대폰도 아주 조금 흔들렸다.

한유경은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지금 냉정해야 해서 그러고 있는 사람이다.

그걸 이제 알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다시 움직였다.


폐극장 근처에 도착했을 때.

카운트다운은 17분을 지나고 있었다.

길가에 경찰 차량이 보였다.

한 대.

두 대.

조금 더 멀리 한 대.

경광등은 일부만 켜져 있었다.

차량 문이 열리고 경찰들이 빠르게 내렸다.

누군가는 뛰었다.

누군가는 무전기를 귀에 붙인 채 건물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한 차량은 그대로 폐극장 뒤편 도로로 들어갔다.

다른 쪽에서는 경찰 두 명이 지나가던 차량을 멈춰 세웠다.

지금까지 회의실 화면과 전화로만 존재하던 사건이 갑자기 현실이 됐다.

사람들이 뛰고 있었다.

경찰이 뛰고 있었다.

진짜 범죄 현장이었다.

우리 차량 앞을 경찰 한 명이 막았다.

운전자가 창문을 내렸다.

“NOVA 쪽입니다.”

“여기 세우세요. 더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

말이 빠르고 짧았다.

그 경찰은 우리 쪽을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차량 안에 계십시오.”

말을 남기고 바로 뛰어갔다.

그게 전부였다.

한유경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경찰은 바빴다.

우리가 누군지 설명할 시간도.

감정을 받아줄 시간도 없었다.

당연했다.

차는 골목 가장자리에 멈췄다.

폐극장이 보였다.

사진보다 작았다.

영상보다 초라했다.

낡은 외벽.

깨진 간판.

막혀 있는 정문.

옆으로 길게 이어진 낮은 건물.

저게.

지옥극장.

팬들이 그렇게 불렀던 곳.

Velvet Inferno에서는 붉은 불빛과 연기 속에 거대한 지옥처럼 보였다.

지금은 그냥 버려진 건물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봤다.

00:16:48

대기 인원.

31,614명.

3만 명.

신 씨 하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3만 명.

나는 숫자를 보고 토할 것 같았다.

채팅은 이제 읽을 수도 없을 만큼 빨랐다.

멈춰놓고 한 줄씩 봤다.

곧 시작 와 15분 얼굴 인증부터 해라 삭제되기 전에 녹화 수위 기대한다 진짜면 평생 소장 방송 터지면 미러로 와 오늘 제대로 보여줘라 오직 팬들 위한 영상 진짜 ㅋㅋ

진짜.

진짜.

진짜.

그들이 쓰는 진짜가.

내가 아는 신 씨와 너무 멀었다.

내가 아는 진짜는.

라면 앞에 앉아서 젓가락을 들고 있던 사람이다.

세제를 조금만 넣으라고 하면 정말 조금만 넣으려고 집중하던 사람.

현관 체인을 걸고 기특하냐고 묻던 사람.

바다 앞에서 문이 없다고 좋아하던 사람.

그게 진짜인데.

왜 저 사람들이 진짜를 정하지.

내가 생각하는 것도 정답은 아닐 것이다.

신 씨가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는지는 신 씨가 정한다.

그런데 최소한.

저건 아니다.

강제로 끌고 가서.

카메라 앞에 세워놓고.

무슨 짓을 해서.

그걸 진짜라고 부르는 건.

절대로 아니다.

“……제발.”

나도 모르게 말했다.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 모르겠다.

경찰에게.

신 씨에게.

신에게.

시간에게.

아무한테나.

“제발.”

한유경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두 손이 무릎 위에서 맞잡혀 있었다.

손가락이 떨렸다.

이번에는 숨기지 못했다.

입술도 굳어 있었다.

경찰 한 명이 극장 옆길로 뛰어 들어갔다.

또 한 명이 뒤따랐다.

멀리서 무전 소리가 들렸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차량 하나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

다른 경찰이 손짓했다.

사람들이 움직였다.

전부 빨랐다.

그런데 우리는 움직이지 못했다.

차 문 하나.

그걸 열면 안 됐다.

경찰이 대기하라고 했다.

우리가 나가봤자 방해다.

너무 잘 알았다.

그래서 더 미칠 것 같았다.

휴대폰.

00:15:02

00:14:59

나는 숫자가 14로 바뀌는 걸 봤다.

아무 일도 하지 못한 채.

1분이 사라졌다.

그 1분 동안 저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른다.

혹은.

이미 벌어졌는지도 모른다.

그 생각이 다시 들어왔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싫었다.

머릿속에서 신 씨에게 무슨 모습도 입히고 싶지 않았다.

망상을 실현하듯 옷을 바꿔 입혔을 수도 있다.

카메라 앞에 세워놨을 수도 있다.

다쳤을 수도 있다.

겁에 질려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이미—

안 돼.

나는 눈을 떴다.

한유경이 손등으로 입을 한번 눌렀다.

울음을 참는 건 아니었다.

분노를 삼키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가 낮게 중얼거렸다.

“죽여버리고 싶네.”

나는 그녀를 봤다.

한유경은 바로 말했다.

“못 들은 것으로 해주세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나도 비슷했다.

하지만 우리는 차 안에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그게 맞았다.

그래서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한유경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가 거의 빼앗듯 받았다.

“네.”

나는 그녀의 얼굴만 봤다.

“……승합차요?”

심장이 내려앉았다.

“어디에 있습니까?”

잠깐.

“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확인 중이라는 거죠.”

다시 잠깐.

“알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뭐래요?”

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건물 뒤에서 흰색 승합차를 하나 발견했답니다.”

“신 씨는요?”

“아직.”

한유경이 입을 닫았다.

나도.

그 뒤는 묻지 않았다.

아직 모른다.

그 말은 이제 듣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창밖을 봤다.

차 안에서는 승합차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폐극장 건물 모서리 너머.

흰색 차체 일부만 아주 조금 보였다.

경찰들이 그쪽으로 움직였다.

빠르게.

두 명.

세 명.

누군가 손전등을 켰다.

빛이 바닥을 훑었다.

나는 몸을 앞으로 숙였다.

“서도윤 씨.”

한유경이 불렀다.

“안 나갑니다.”

목소리가 거칠게 나왔다.

“그냥…… 봅니다.”

한유경도 더 말하지 않았다.

손전등 빛이 한 번 움직였다.

차량 아래.

벽.

바닥.

쓰레기.

다시 사라졌다.

휴대폰 화면.

00:12:21

다시 빛.

이번에는 승합차 옆 바닥을 비췄다.

작은 것이 하나 보였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다.

경찰도 아무 것도 아닌 듯 지나쳤다.

쓰레기.

종이.

그 정도.

손전등이 지나갔다.

잠시 다시 돌아왔다.

사각형.

갈색.

위에 하얀 부분.

빨대.

나는 숨을 멈췄다.

쓰레기.

그냥 전부 일반 쓰레기.

씻어서 종이로 분류해야 한다고 처음 만난 여자에게 말했던 그것.

최근 아주 자주 보았던 그것.

우리 집 식탁에서.

라면 옆에서.

신 씨 손에 들려 있는 걸.

라면값이라고 내미는 걸.

“……저거.”

내 목소리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한유경이 나를 봤다.

“네?”

나는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손이 떨렸다.

“저거.”

손전등이 다시 바닥을 훑었다.

이번에는 선명했다.

찌그러진 작은 종이팩.

빨대가 꽂혀 있었다.

한유경도 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표정이 사라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증거가 아니다.

아직은.

신 씨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런데 그 순간.

폐극장은 더 이상 팬의 추측으로 찍은 후보지가 아니었다.

휴대폰 화면에서는 숫자가 계속 줄고 있었다.

00:10:57

초코우유 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