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1권 / Chapter 14
CHAPTER 14: 옆집 여자는 인터넷에 예고된다
신휘의 실종을 추적하던 도윤과 NOVA는 인터넷에 예고된 방송을 발견하고, 카운트다운이 흐르는 가운데 그녀를 찾을 단서를 좇는다.
옆집 여자는 인터넷에 예고된다
NOVA LINE MUSIC 회의실은 전쟁터 같았다.
총도, 피도, 비명도 없었지만 그곳에는 분명 전쟁터의 공기가 있었다.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네 대, 태블릿이 두 대, 휴대폰 여러 개가 흩어져 있었다. 화면마다 다른 영상이 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 CCTV, 도로변 방범 카메라, 안전가옥 이동 차량 주변 영상, 엘리베이터 홀, 후문, 그리고 오전에 신 씨와 내가 다녀온 바닷가 주변 지도.
회의실 한쪽 화이트보드에는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08:32 아파트 주차장 이탈 11:48 아파트 복귀 14:30 안전가옥 이동 준비 시작 16:25 최종 이동 준비 재개 16:32 외부 배송 보조 인력 출입 확인 16:38 신휘, 차량 선탑승 요청 16:40 신휘, 마지막 육안 확인 17:40 차량 문 열림 확인 17:42 휴대폰 발견 17:50 경찰 및 NOVA 내부 보고 특이 사항 15:07 서도윤 1차 메시지 발송 16:11 서도윤 2차 메시지 발송 17:56 한유경, 서도윤 전화
나는 그 특이 사항을 기록한 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15:07.
내가 보낸 메시지.
안전가옥 이동 준비 중입니까? 문제 없으시죠?
그때는 아직 신 씨가 아파트에 있었을 것이다. 사라지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다.
내 머릿속에서는 그 문장이 계속 되풀이되었다.
안전가옥. 이동 준비. 문제 없으시죠.
그때 내가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면.
직접 전화를 걸어 보았다면.
경찰 한 명이 내 앞에 앉아 있었다.
그는 차분하게 질문을 이어갔다.
“서도윤 씨. 오전 동선 다시 확인하겠습니다. 아파트 주차장을 빠져나간 건 신휘 씨가 먼저 제안한 겁니까?”
신휘 씨.
그 이름이 또 나왔다.
나는 아직도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아주 잠깐 멈췄다.
신 씨. 신휘 씨. SHINHWI.
세 이름이 내 머릿속에서 서로 겹쳤다가 떨어졌다. 이제는 억지로 떼어놓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신 씨라고 생각하려 애썼다.
신 씨.
라면을 먹는 사람.
초코우유를 라면값으로 내는 사람.
분리수거를 못 하는 사람.
체인을 걸 줄 알게 된 사람.
“네.”
나는 대답했다.
“신 씨가…… 아니, 신휘 씨가 바다에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말이 어색했다.
신휘 씨라고 부르는 순간, 내 입 안에 모르는 이름이 들어온 것 같았다.
아니, 모르는 이름은 아니다.
너무 잘 아는 이름이다.
내 방의 앨범, 포스터, 굿즈, 플레이리스트, 다키마쿠라 상자에까지 박혀 있는 이름.
그래서 더 이상했다.
경찰은 내 흔들림을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때 보안 인력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하셨죠.”
“네.”
“그런데 빠져나갔다.”
“네.”
“방법은요?”
나는 오전 일을 다시 설명했다.
큰 택배 차.
지하 주차장.
보안 인력의 시선이 배송 차량에 머물던 순간.
택배 차의 커다란 옆면이 만든 사각지대.
그 사이를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가던 신 씨.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는 뜻입니까?”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했냐고 한다면 그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돌이 할 법한 일이냐고 한다면 그건 절대 아닐 거다.
경찰이 펜을 움직이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말했다.
“익숙해 보였습니다.”
그 말이 나가자 회의실 한쪽에서 CCTV를 보고 있던 한유경의 손이 잠깐 멈췄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나는 봤다.
경찰이 물었다.
“무엇에 익숙해 보였습니까?”
할 필요 없는 말이지만 해버린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답을 고르다 말했다.
“감시를 피하는 데요.”
내가 신 씨를 의심하는 것 같아 속이 불편해지는 말, 역시 할 필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오전의 신 씨는 낯설게 능숙했다.
계란은 태우고, 분리수거는 못 하고, 편의점 메뉴 앞에서는 멈춰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시선과 동선, 보안의 빈틈은 너무 잘 읽었다.
그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다.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도 오래 남는 기술이 있다면, 신 씨에게는 도망치는 법이 그런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것이 경찰에게 어떤 방향으로 들릴지 알기에 말을 한 것을 후회했다.
“오전에는 본인 의사였다고 판단하십니까?”
경찰이 물었다.
오전에 도주한 신휘, 그리고 오후에 사라진 신휘.
어쩌면 실종이 아닌 자발적 도주와 잠적으로 판단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오전의 도주 또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확실합니까?”
“네.”
“근거는요?”
나는 잠깐 숨을 골랐다.
“신 씨가 저한테 연락했습니다.”
“메시지 말씀이신가요?”
“네. 바다 보고 싶다고 했고, 제가 안 된다고 하니까 혼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따라간 겁니다.”
“따라갔다.”
“혼자 보내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경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후 상황과는 다르다고 보시는군요.”
“다릅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전에는 방향을 말했습니다. 자기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말했어요. 그런데 오후에는 아무 말도 없었습니다. 휴대폰도 두고 갔고요.”
나는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게 보여주었다.
읽지 않은 메시지.
3시 7분.
4시 11분.
둘 다 그대로였다.
“신 씨는 배고파도 메시지합니다. 피곤해도 메시지하고, 라면 먹고 싶어도 메시지하고, 도망가고 싶어도 메시지합니다.”
경찰의 표정이 아주 조금 미묘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나도 안다.
수사 진술로는 이상하다.
하지만 사실이다.
“그 사람이 휴대폰을 두고 아무 말 없이 사라질 리 없습니다.”
경찰은 내 말을 적었다.
“알겠습니다.”
회의실 반대편에서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16시 26분 영상부터 다시 돌려주세요.”
그녀는 다른 경찰 두 명과 함께 CCTV를 확인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안전가옥 이동 준비 현장이 떠 있었다.
차량.
보안 인력.
짐을 옮기는 직원들.
주변에 드나드는 외부 인력.
한유경은 화면을 멈추라고 했다.
“여기. 이 사람.”
화면 속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박스 하나를 들고 지나가고 있었다.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움직임이 이상했다.
박스를 옮기는 사람처럼 보였지만, 시선은 자꾸 차량 쪽으로 갔다.
NOVA 직원이 빠르게 말했다.
“16시 32분 외부 출입 기록 확인해보겠습니다.”
직원이 명단과 영상을 번갈아 봤다.
“출입 기록상 그 시간에 들어온 인원은 배상철입니다.”
경찰이 물었다.
“이전에 신원 확인은 된 사람인가요?”
“주민등록상 주소와 연락처는 확인되어 있습니다. 잠시만요, 연락 한 번 해보겠습니다.”
NOVA 직원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휴대폰 꺼져 있습니다.”
한유경의 얼굴은 차가웠다.
“범인과 관련된 유력 용의자로 두고 확인해 주세요.”
경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거동이 수상하긴 하네요. 그런데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이 사람은 현장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범행과 연관되어 있다면, 공범이 있을 겁니다.”
“어젯밤 문 앞에 왔던 남자와의 연결은요?”
“확인 중입니다. 문 앞 스토커를 유력 용의자로 보고 행적을 추적하고 있지만, 번호는 대포폰 가능성이 높고, CCTV에 잡힌 얼굴도 불충분합니다. 어젯밤 이후 동선이 끊겼습니다.”
동선이 끊겼다.
그 말이 너무 싫었다.
사람이 사라졌고, 그 사람을 찾기 위해 다른 사람의 동선을 쫓고 있는데, 그 동선도 끊겼다.
모든 것이 중간에서 잘려 있었다.
한유경이 나를 힐끗 본 뒤에 말했다.
“오늘 오후 안전가옥 이동 예정은 내부 핵심 인원 외 공유하지 않았습니다.”
본래 나한테까지 알려줄 일정은 아니었다.
그런데 신 씨가 알몸 앞치마 소동을 벌였고, 계란을 다시 한 번 죽였고, 나는 그 자리에 있었다.
어쩌다 보니 내부 핵심 인원도 아닌 내가 일정 일부를 알고 있었다.
경찰이 물었다.
“배상철이라는 사람, 누가 들여보냈는지 확인됩니까?”
“네.”
NOVA 직원이 대답했다.
“배상철은 협력 업체 등록 인력입니다. 과거 NOVA 행사 장비 반입 기록도 세 차례 있고, 오늘 배정 명단에도 정상적으로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몇 번 같이 일한 적이 있어 신뢰했었다는 말이군요.”
회의실 공기가 더 무거워졌다.
경찰은 화면을 확대했다.
“우선 이 배상철을 동선 유출 및 현장 접근 유력 용의자로 두고 추적합니다. 실제 신휘 씨를 데려간 인물이 있다면 다른 인물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스토커와 동일인인지, 또는 별도 공범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차량은요?”
다른 경찰이 말했다.
“현재 당일 오후 해당 시간대에 인근을 이동한 차량 중심으로 검증 중입니다. 아파트 주변 CCTV, 도로 방범 카메라, 주차장 입출차 기록과 예정 이동 경로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수색 후보지도 차량 이동 가능 거리 중심으로 좁히는 중입니다.”
“후보지는요?”
“아직 확정 단계는 아닙니다. 폐공장, 임대 창고, 단기 대여 스튜디오, 과거 촬영지, 그리고 주변 폐건물들까지 포함해서 보고 있습니다.”
후보지가 너무 많았다.
그 말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처럼 들렸다.
아니, 실제로는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용의자. 차량. CCTV. 통신 기록. 동선.
하나씩 좁혀가고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신 씨는 어디에 있는가.
그 질문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나는 주먹을 쥐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경찰의 질문은 계속됐다.
“오전 바다 동선에서 누군가 따라붙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은요?”
“제가 확인한 바로는 없었습니다. 다만 완전히 장담은 못 합니다.”
“신휘 씨가 특정 장소를 언급했습니까? 바다 외에요.”
“아니요.”
“차량 안에서 이상한 메시지나 전화를 받은 건요?”
“없었습니다. 한유경 씨와 통화했고, 위치 공유를 켰습니다.”
“그 뒤 정오 전에 돌아왔고요.”
“네. 11시 48분쯤이었습니다.”
“돌아온 뒤 신휘 씨 상태는 어땠습니까?”
나는 잠깐 생각했다.
바다를 봤어.
그 짧은 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의 얼굴.
“피곤해 보였지만, 위험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적어도 그때는요.”
그때는.
이제 모든 말 끝에 그 단어가 붙었다.
그때는.
그때는 괜찮았다.
그때는 돌아왔다.
그때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진술을 마치고 잠깐 복도로 나오자, 박 대리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되어 따라온 그는 나를 보자 몸을 바로 했다.
“끝났어요?”
“일단 오전 동선은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다는 말은 오늘 너무 멀었다.
박 대리는 내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안 괜찮네요.”
“네.”
“그분은…… 아직 못 찾았고요.”
“네.”
그는 회의실 쪽을 한 번 보았다.
문 너머로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전화 통화 소리, 키보드 소리, 낮은 지시가 섞여 나왔다.
박 대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도윤 씨.”
“네.”
“여기 와서도 계속 신 씨라고 부르네요.”
나는 멈췄다.
“네.”
“왜요?”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SHINHWI.
그 이름을 모르는 게 아니다. 너무 잘 안다.
그런데 SHINHWI라고 부르면 화면 속 사람이 된다. 붉은 조명 아래의 사람. 포스터와 앨범 재킷 속의 사람.
내가 찾고 있는 건 그 사람이 아니었다.
“신 씨니까요.”
“그분이?”
“제가 아는 사람은요.”
박 대리는 말없이 나를 봤다.
“서도윤 씨.”
“네.”
“그럼 신 씨 찾읍시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찾아야 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요.”
박 대리는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내일 무슨 일 있으면 연차 써요.”
“업무가…….”
“업무 걱정하지 말고요. 제가 팀장님께 말해둘게요.”
“대리님이 왜 그렇게까지 해주십니까?”
“회사 동료잖아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람 아니겠어요?”
그는 조금 민망한 듯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솔직히 지금 서도윤 씨가 회사 앉아 있어도 일 안 됩니다.”
반박할 수 없었다.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해요. 혼자 뛰쳐나가지 말고요.”
나는 잠깐 멈췄다.
“그건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장담하세요.”
“노력하겠습니다.”
“그 말도 못 믿겠네요.”
박 대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말해둡니다. 혼자 가지 마요. 경찰 있고, 회사 있고, 저 한유경 팀장님도 있잖아요. 서도윤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하지만 몸이 그 말을 따라줄지는 몰랐다.
박 대리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가다 말고 다시 돌아봤다.
“그리고.”
“네.”
“그분이 SHINHWI든 아니든, 서도윤 씨한테는 옆집 신 씨잖아요.”
나는 말문이 막혔다.
박 대리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냥 손을 한 번 들어 보이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복도에 잠깐 서 있었다.
SHINHWI든 아니든.
신 씨.
라면을 먹던 사람.
초코우유를 라면값으로 내밀던 사람.
바다 보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
그 사람이 지금 없다.
그 사실 하나만은, 어떤 이름보다 컸다.
회의실로 돌아왔을 때, 안의 공기가 바뀌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도 충분히 다급했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날카로웠다.
한 NOVA 직원이 노트북을 들고 거의 뛰어 들어왔다.
얼굴이 창백했다.
“팀장님.”
한유경이 바로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인터넷 방송 하나 확인하셔야 합니다.”
직원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화면을 돌렸다.
검은 배경.
아무 꾸밈 없는 채널.
프로필 이미지는 기본값.
채널명은 의미 없는 영문자와 숫자가 섞여 있었다.
개설일은 오늘.
정확히는 개설된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채널이었다.
화면 중앙에는 라이브 방송 대기 페이지가 떠 있었다.
아직 방송은 시작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기 인원 숫자가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312명. 489명. 721명. 1,204명.
누군가 이미 링크를 퍼뜨리고 있었다.
방송 제목은 짧았다.
잠시 후, 진짜 SHINHWI를 보여드립니다.
그 아래에는 더 작은 문장이 있었다.
가짜가 아닌, 진짜 모습.
회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은 평온이 아니었다.
모두가 같은 걸 떠올린 조용함이었다.
조작된 스캔들 영상.
다수의 남성과 난잡한 상황에 있었던 것처럼 만들어져 유포된 사진과 영상.
그게 사실인지 확인되기도 전에, 인터넷은 이미 SHINHWI를 그런 이미지로 덮어씌웠다.
그리고 어젯밤 문앞의 남자도 그 이미지를 믿고 있었다.
어울리는 남자들이랑. 어울리는 곳에서. 어울리는 모습으로.
이제 그 말이 라이브 대기 화면으로 돌아왔다.
진짜 SHINHWI를 보여주겠다.
진짜 모습.
한유경의 얼굴에서 색이 빠졌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화면 녹화. URL 복사. 플랫폼 긴급 신고. 경찰 공유. 법무팀 바로 연결하세요.”
직원들이 동시에 움직였다.
한 경찰이 다가와 화면을 확인했다.
“방송 시작까지 얼마나 남았습니까?”
직원이 목소리를 억눌렀다.
“카운트다운 54분입니다.”
54분.
숫자만 보면 길었다.
하지만 회의실의 누구도 안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끔찍해졌다.
54분.
그 시간 동안 링크가 퍼질 것이다.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
누군가는 녹화 준비를 할 것이다.
차단되면 미러 링크가 생길 것이다.
그리고 범인들은 그 시간을 이용해 기대를 키우고 있었다.
채팅창이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심이었다.
공식 아닌데 진짜 SHINHWI야? 가짜 낚시 아냐? 어그로면 신고함 근데 제목 미쳤네 진짜면 오늘 인터넷 터진다
곧 말들이 더러워졌다.
나 아직 못 봤는데 그 난교 영상이나 틀어주면 좋겠다 SHINHWI 쩐다며 ㅋㅋ 노모 무삭제임? 공식 복귀보다 이게 더 재밌겠는데 진짜 모습ㅋㅋ 딱 그거 아님? 가짜라도 일단 켜봐라
나는 화면을 보고 숨이 막혔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았다.
신 씨가 화면에 나온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사람이 위험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뭔가 자극적인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아니, 이 사람들은 누군가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낮게 갈라졌다.
“똑같네요.”
한 경찰이 그녀를 봤다.
“똑같다고요?”
“스캔들 영상이요.”
회의실 안의 직원 몇 명이 입을 다물었다.
한유경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영상은 조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도 전에 자기들이 보고 싶은 SHINHWI를 먼저 믿었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테이블 위를 눌렀다.
“이번엔 조작 영상을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끌고 가서 그 조작된 프레임 안에 실제 신휘 씨를 세우려는 겁니다.”
그 말이 회의실을 얼렸다.
나는 몸이 먼저 움직였다.
정확히는, 일어났다.
의자가 뒤로 밀렸다.
끼익.
모두가 나를 봤다.
나는 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디로 갈지 몰랐다.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폐극장인지, 창고인지, 임대 스튜디오인지, 차량 안인지, 어디인지 모른다.
그런데도 몸이 먼저 문으로 갔다.
여기 앉아 화면을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채팅창에서 누군가 “무삭제”라는 말을 치고, 대기 인원이 2천 명을 넘고, 누군가 신 씨를 그 더러운 프레임 안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서도윤 씨.”
한유경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날아왔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서도윤 씨!”
이번엔 그녀가 내 앞을 막았다.
생각보다 빠른 움직임이었다.
나는 그녀를 봤다.
“비켜주세요.”
“어디로 가실 겁니까?”
“찾으러요.”
“어디를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목구멍이 막혔다.
“모르겠습니다.”
“그럼 못 갑니다.”
“그래도 여기 앉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내 목소리가 흔들렸다.
화가 났는지, 무서운지, 미친 것인지 나도 몰랐다.
“저 화면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잖습니까. 저 사람들이 뭘 기다리는지 다 알면서, 저는 여기서…….”
“저희도 가만히 있는 게 아닙니다.”
한유경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무관심이 아니었다.
버티기 위해 차갑게 만든 목소리였다.
“경찰이 차량을 추적 중이고, 용의자 동선을 확인 중입니다. 후보지를 좁히고 있습니다. 플랫폼 차단 요청도 들어갔습니다. 지금 서도윤 씨가 목적지도 없이 뛰쳐나가면, 찾는 사람이 하나 더 늘어납니다.”
“그래도…….”
“신휘 씨를 찾고 싶으면 생각하세요.”
나는 숨을 멈췄다.
한유경이 내 눈을 똑바로 봤다.
“무작정 뛰지 말고, 생각하세요. 냉정해지세요. 최근 신휘 씨와 가장 가까이 있던 것은 서도윤 씨입니다.”
“가까이…….”
“네.”
“저는…….”
나는 화면을 봤다.
검은 대기 화면.
흰 글자.
붉은 글자.
진짜 SHINHWI. 진짜 모습.
채팅창은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공식 아니냐. 가짜 아니냐. 그 영상 틀어달라. 무삭제냐. SHINHWI답다.
그 말들이 하나의 방향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신휘를 찾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믿는 SHINHWI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더러운 가짜를.
“팬.”
나는 거의 숨처럼 말했다.
한유경이 멈췄다.
“네?”
나는 화면을 더 가까이 봤다.
제목.
색감.
문구.
가짜가 아닌, 진짜 모습.
그건 그냥 납치범의 말이 아니었다.
팬 커뮤니티에서 본 적 있는 식의 말이었다.
특히 스캔들 이후, SHINHWI를 비웃던 사람들이 쓰던 말.
무대에서 퇴폐를 팔더니 진짜도 그렇다. 공식 이미지는 가짜고 사생활이 진짜다. 진짜 Velvet Inferno는 무대 밖에 있다.
그 쓰레기 같은 프레임.
“이건…….”
나는 마른 입술을 핥았다.
“그냥 돈 벌려고 납치 방송을 여는 게 아닙니다.”
한유경이 조용히 말했다.
“계속하세요.”
“범인은 SHINHWI를 모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SHINHWI를 자기 방식으로 너무 많이 본 사람입니다.”
내 목소리가 조금씩 돌아왔다.
“저 문구는 스캔들 조롱이랑 Velvet Inferno 팬덤 밈이 섞여 있습니다. ‘진짜 SHINHWI’라는 말. ‘가짜가 아닌’이라는 말. 저건 SHINHWI를 아티스트로 보는 사람이 쓰는 말이 아닙니다. 무대 이미지를 사생활로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쓰는 말입니다.”
한유경은 나를 보았다.
처음으로, 그녀의 눈에 아주 작은 기대가 떠올랐다.
“짐작가는 것이 있나요?”
나는 바로 답하지 못했다.
아직 확실하지 않았다.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다.
경찰은 이미 차량과 CCTV, 후보지를 쫓고 있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그건 추측이다.
하지만 추측하지 않으면 움직일 수 없다.
나는 다시 화면을 봤다.
진짜 SHINHWI.
진짜 모습.
스캔들.
문앞 스토커.
Velvet Inferno.
무대가 아닌 곳에서 무대를 만들려는 사람.
“짐작, 전부 그저 추측일 뿐입니다만…….”
내가 말끝을 흐리자 한유경이 바로 말했다.
“생각하세요.”
“네?”
“뛰쳐나가는 대신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최근 신휘 씨와 가장 가까이 지낸, 그리고 신휘 씨를 가장 좋아하는 팬인 서도윤 씨의 추측이 도움 될 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이번에는 밀어내는 말이 아니었다.
잡아주는 말이었다.
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장소를 생각해보자.
SHINHWI를 모르는 사람이면 아무 창고나 고른다.
돈이 목적이면 모텔, 스튜디오, 폐공장, 어디든 된다.
하지만 이 문구를 쓰는 사람.
스캔들 이미지를 “진짜 모습”이라고 믿는 사람.
문밖에서 “어울리는 곳,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말한 사람.
그런 사람이 SHINHWI를 방송에 세우려고 한다면.
그는 그냥 숨기 좋은 곳을 고르지 않는다.
상징적인 곳을 고른다.
무대처럼 보이는 곳.
하지만 공식 무대는 아닌 곳.
SHINHWI의 이미지를 더럽히기에 적당하고, 팬들이 보면 알아볼 수 있고, 동시에 폐쇄적인 곳.
내 머릿속에 붉은 조명이 켜졌다.
낡은 객석.
찢어진 커튼.
무너진 무대.
Velvet Inferno의 티저 촬영지.
팬들이 농담처럼 “지옥극장”이라고 부르던 곳.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폐극장.
나는 고개를 들었다.
“후보지 중에 폐극장 있습니까?”
경찰이 바로 물었다.
“어느 폐극장 말입니까?”
나는 한유경을 봤다.
“잠깐만요.”
한유경이 눈짓을 하자 NOVA 직원이 빠르게 노트북을 검색했다.
“……있습니다.”
“뭐가요?”
“배상철. Velvet Inferno 티저 촬영 때 장비 반입 인력으로 폐극장 촬영 장소에 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한유경이 말했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곳은 현재 폐쇄된 시설입니다. 촬영 이후로는 저희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팬덤에서는 지옥극장이라고 부릅니다. SHINHWI 팬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장소예요. 의미도 있고요.”
내 말이 끝나자 경찰이 바로 물었다.
“현재 수색 후보지에 포함되어 있습니까?”
NOVA 직원이 지도 화면을 확인했다.
“주변 차량 이동 가능 거리에는 들어갑니다. 하지만 CCTV상 직접 연결되는 차량은 아직 확인 안 됐습니다.”
“근거는요?”
경찰이 나를 봤다.
나는 대답했다.
“확실한 근거는 아닙니다.”
내 목소리는 떨렸지만,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
“하지만 저 방송을 만든 사람이 SHINHWI를 어떻게 소비하는지 보면, 그 장소가 말이 됩니다. 저 사람은 신휘 씨를 숨기고 싶은 게 아니라 보여주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자기들이 믿는 ‘진짜 SHINHWI’로요. 그러면 그냥 창고가 아니라 무대가 필요합니다. SHINHWI의 이미지가 붙어 있는 무대.”
경찰은 바로 판단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내 말은 수사 증거가 아니었다.
팬의 추론이었다.
한유경이 경찰을 향해 말했다.
“확실한 증거가 아니라는 건 압니다.”
그녀는 아주 짧게 나를 보았다.
“하지만 이 사람은 팬입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가슴을 쳤다.
팬.
나는 이제 그 단어를 피할 수 없었다.
“SHINHWI를 좋아하는 팬이기도 하고, SHINHWI를 왜곡해서 소비하는 인간들의 사고방식도 누구보다 많이 봤습니다. 지금 저 방송 제목을 만든 사람이 어떤 상징을 고를지, 저희 내부 인원보다 더 민감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경찰이 물었다.
“전 인원을 돌릴 수는 없습니다.”
“압니다.”
한유경은 바로 대답했다.
“다른 후보지 수색은 계속 진행해주세요. 다만 일부 인원만이라도 폐극장 확인에 배정해주십시오. 저도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위험합니다.”
“어디든 위험합니다. 전 신휘 씨의 매니저입니다.”
한유경의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없습니다.”
대기 인원은 4천 명을 넘고 있었다.
채팅창은 미쳐가고 있었다.
진짜면 오늘 잠 못 잠 낚시면 죽인다 근데 SHINHWI면 저런 방송 어울리긴 함 난교 영상보다 센 거 나오냐? 가짜 말고 진짜라잖아ㅋㅋ
나는 더 볼 수 없어 화면에서 눈을 뗐다.
한유경은 나를 봤다.
“서도윤 씨.”
“네.”
“같이 갑니다.”
“제가요?”
“네. 신휘 씨는 서도윤 씨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바로 말했다.
“관계없는 일반인 동행은 위험합니다.”
“일반인입니다.”
한유경이 말했다.
“서도윤 씨는 신휘 씨가 신뢰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구조됐을 때 신휘 씨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통제선 밖에서 대기시키겠습니다.”
한유경의 말에 경찰이 납득을 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 역시 현장을 찾을 자격 정도는 있다는 것은 이해해준 것 같았다.
“별도 차량으로 이동하시고 현장 진입은 안 됩니다. 통제선 밖에서 대기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경찰의 말에 한유경이 동의하고, 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갑니다.”
망설임은 없었다.
아까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뛰쳐나가려던 것과는 달랐다.
이번에는 방향이 생겼다.
확실한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 씨가 오전에 말했던 것처럼.
내가 가는 방향을 내가 정하고 싶었어.
지금은, 적어도 한 방향을 정할 수 있었다.
한유경이 직원들에게 말했다.
“차량 준비. 경찰 동행 확인. 법무팀은 플랫폼 대응 계속. 방송 녹화 중단하지 말고, 미러 링크 모니터링하세요. 배상철 동선 추적 계속하고, 스토커 번호 통신 기록도 갱신되는 대로 공유받으세요.”
직원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네.”
회의실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더 빠르게.
경찰 일부가 무전을 주고받았고, 지도 화면에 폐극장 위치가 표시됐다. 다른 후보지들도 동시에 붉은 점으로 떠 있었다.
수색이 폐극장 하나로 좁혀진 것은 아니었다.
다른 후보지들도 동시에 확인되고 있었다.
다만 그중 하나가 이제, 내 말 때문에 조금 더 밝게 표시되었다.
폐극장.
지옥극장.
Velvet Inferno의 그림자가 남은 곳.
나는 휴대폰을 쥐었다.
3시 7분의 읽지 않은 메시지가 아직 그대로였다.
그 메시지 아래로, 박 대리에게서 새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박정민 대리: 혼자 가지 말랬습니다.
나는 답장했다.
나: 혼자는 아닙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박정민 대리: 그럼 됐습니다. 꼭 데려와요.
나는 화면을 한참 봤다.
꼭 데려와요.
나는 답장하지 못했다.
대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한유경이 문 쪽으로 걸었다.
나도 따라갔다.
회의실 화면에서는 여전히 카운트다운이 줄어들고 있었다.
00:48:37
시청자 대기 수는 계속 늘고 있었다.
인터넷은 진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는 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조작된 가짜가 실제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런 건 보여주지 않는다.
신 씨가 누구든.
신휘 씨든.
SHINHWI든.
그 사람은 저들의 것이 아니다.
내 옆집의 신 씨를, 분리수거도 제대로 못하는 신 씨를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모습으로 던져지게 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