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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11

CHAPTER 11: 옆집 여자는 앞치마의 용도를 모른다

문고리 사건 다음 날, 도윤은 안전가옥으로 떠날 신 씨에게 마지막 식사를 준비하려 하지만 앞치마 하나에서 시작된 평범한 아침은 그녀의 바다를 향한 부탁으로 예상 밖의 방향을 향한다.

옆집 여자는 앞치마의 용도를 모른다

나는 거의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문고리 소리가 들렸다.

철컥.

철컥.

철컥.

잠금장치가 버티던 소리. 체인을 걸던 내 손. 문밖에서 들리던 남자의 목소리. 그리고 휴대폰 화면에 찍혀 있던 문장.

다 알아 SHINHWI. 네 모습도 네가 거기 있는 것도.

나는 그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서늘해졌다.

SHINHWI.

한유경은 어젯밤 결국 그녀를 신휘 씨라고 불렀다.

신 씨. 신휘. SHINHWI.

세 단어는 이제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부정하고 있었다.

아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적어도 내 정신 건강상 아니어야 한다.

그 사람이 SHINHWI라면, 나는 SHINHWI 본인에게 SHINHWI 다키마쿠라 상자를 들킨 인간이다. 그것도 본인이 자기 키만 한 상자를 들고 와서 칭찬을 요구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앞에서 공식과 민망함은 공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다.

그러므로 아니다.

나는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자마자 침대에 누운 채 그 결론을 다시 붙잡았다.

그런데 결론을 붙잡는다고 현실이 얌전히 있어주는 건 아니다.

휴대폰을 켜자 신 씨와의 마지막 메시지가 보였다.

신 씨: 체인 걸었어.

나: 잘하셨습니다. 기특합니다.

신 씨: 응.

그 뒤로는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나는 괜히 불안해졌다.

어젯밤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정말 제대로 잤을까. 체인은 계속 걸려 있을까. 혹시 또 문밖 소리를 들은 건 아닐까. 혹시 혼자 나가지는 않았을까.

한유경은 말했다.

오늘 밤 신휘 씨는 외출 금지입니다. 오늘 밤 도윤 씨 집 방문도 금지입니다. 내일 안전가옥으로 이동합니다.

신 씨는 그 말을 싫어했다.

갇히는 거잖아.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침대에 앉아 휴대폰을 들었다.

문자를 보낼까 말까 고민했다.

괜찮습니까, 라고 묻는 건 어울리지 않았다. 신 씨는 괜찮냐는 질문에 라면으로 대답하는 사람이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나: 살아 있으십니까?

보내고 나서 후회했다.

표현이 이상하다.

그런데 답장은 금방 왔다.

신 씨: 응.

나는 조금 안심했다.

곧바로 두 번째 메시지가 왔다.

신 씨: 배고파.

나는 이마를 짚었다.

살아 있다는 증거가 너무 신 씨답다.

나: 아침 드세요.

신 씨: 계란.

나는 잠깐 멈췄다.

계란.

어제부터 불길한 단어가 되었다.

나: 달라는 겁니까, 조리한다는 겁니까?

답장이 없었다.

나는 바로 상체를 세웠다.

나: 신 씨?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머리는 아직 덜 깼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어젯밤 문고리 소리 때문에 신경이 바짝 서 있어서 그런지, 평소라면 “잠깐 기다리면 답 오겠지” 하고 넘겼을 일도 불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때.

벽 너머에서 작게 소리가 났다.

탁.

뭔가 떨어지는 소리.

그다음.

“아.”

신 씨 목소리.

분명 기억에 있는 상황이다.

나는 바로 현관으로 나갔다.

휴대폰을 들고, 슬리퍼를 대충 신고, 옆집 문 앞으로 갔다.

딩동.

초인종을 눌렀다.

반응이 없었다.

“신 씨?”

안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딩동.

다시 눌렀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잠깐.

그 단어가 너무 무서웠다.

잠깐 사이에 사람은 계란을 태우고, 가스를 켜놓고, 프라이팬을 죽일 수 있다. 이미 경험했다.

나는 문에 귀를 기울였다.

“가스불 켜져 있습니까?”

“비슷한 거.”

“그건 켜져 있다는 뜻이죠?”

“응.”

“문 여세요!”

잠금장치 풀리는 소리가 났다.

찰칵.

문이 조금 열렸다.

그리고 나는 그대로 굳었다.

신 씨가 서 있었다.

하얀 앞치마를 입고.

아니, 정확히는 아주 커다란 하얀 앞치마가 몸 앞쪽을 거의 다 가리고 있었다. 머리는 대충 묶으려다 실패한 듯 몇 가닥이 삐져나와 있었고, 볼에는 밀가루인지 먼지인지 모를 흰 가루가 묻어 있었다.

문제는 앞치마가 너무 컸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앞치마 안에 무언가를 입었는지가 식별되지 않는 차림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천장으로 올렸다.

“신 씨.”

“응.”

“옷은 입으셨습니까?”

“앞치마.”

“앞치마는 옷이 아닙니다.”

“옷 위에 입는 거?”

“네.”

“그럼 입었어.”

나는 아주 천천히 시선을 낮췄다.

다행히.

정말 다행히, 그녀는 안에 검은 민소매 티셔츠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만 앞치마가 너무 커서, 문이 열린 첫 순간에는 그것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벽에 손을 짚었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습니다.”

“왜.”

“왜라니요.”

신 씨는 자기 차림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곧 무언가를 깨달은 듯.

“알몸 앞치마.”

나는 그대로 굳었다.

복도에 아주 차가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신 씨.”

“응.”

“그 단어를 아침 복도에서 말하지 마세요.”

“왜.”

“내용이 큽니다.”

“어제도 말했어.”

“아닙니다. 어제는 신혼이라고 했습니다. 어쨌든 둘 다 금지입니다.”

“도윤 얼굴 빨개.”

“가스불 때문입니다.”

“여기 복도인데.”

“제 인생이 불타고 있습니다.”

그때 안쪽에서 타는 냄새가 났다.

나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가스불!”

신 씨가 돌아봤다.

“아.”

“아가 아닙니다!”

복도 끝에 있던 보안 인력도 탄 냄새를 맡고 다가왔다. 내가 불부터 끄겠다고 하자 그는 현관 밖에서 상황을 확인한 뒤 한유경에게 보고했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는 작은 프라이팬이 가스레인지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안에는 계란으로 추정되는 물체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한때 계란이었던 것.

가장자리는 이미 갈색을 넘어 검은색에 가까웠고, 가운데는 이상하게 덜 익은 부분이 남아 있었다. 이 정도면 조리라기보다 인류의 이해 범주를 넘어서는 어떤 것을 연성했거나, 정체 모를 고대의 무언가를 발굴하던 현장에 가까웠다.

나는 바로 불을 껐다.

환풍기를 켜고 창문을 열었다.

“신 씨.”

“응.”

“계란은 왜 이런 상태입니까?”

“약해.”

“계란이요?”

“응.”

“계란은 약한 게 아니라 신 씨가 강하게 공격하신 겁니다.”

“뒤집으려고 했는데.”

“언제요?”

“타기 전에.”

“지금은 탄 뒤입니다.”

“어렵네.”

“어렵지 않습니다. 불 앞에 있으시면 됩니다.”

“있었어.”

“정신적으로도.”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그건 얼마 전에 들은 거 같아.”

“불 앞에서는 기억하셔야 합니다.”

나는 프라이팬을 싱크대 옆으로 옮겼다.

다행히 이번에는 화재경보기까지 울리지는 않았다.

큰 발전이다.

아마도.

“왜 갑자기 계란을 조리하려고 하신 겁니까?”

내가 물었다.

신 씨는 앞치마 끈을 만지작거렸다.

“자립.”

나는 말문이 막혔다.

“지금 자립이요?”

“응.”

“어제 그런 일이 있었고, 오늘 오후에는 안전가옥으로 이동한다면서요.”

“응.”

“그런데 아침부터 계란으로 전에 실패하신 자립을 하십니까?”

“그 전에.”

“뭐가요?”

“내가 해보려고.”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뜻은 길었다.

오늘 오후에 안전가옥으로 이동한다.

문이 많아진다. 열어도 되는 문, 열면 안 되는 문, 누가 지키는 문.

신 씨는 그걸 갇히는 거라고 했다.

그 전에 뭔가를 혼자 해보고 싶었던 걸까.

계란 하나라도.

나는 싱크대에 손을 짚고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를 부르셨어야죠.”

“그러면 자립 아니잖아.”

“불을 낸 뒤 부르면 재난 대응입니다.”

“안 냈어.”

“냄새는 냈습니다.”

“비슷한 거.”

“안 비슷합니다.”

신 씨는 조금 억울한 얼굴이었다.

앞치마 차림만 아니었으면 더 진지하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많은 정보가 내 정신을 공격하고 있었다.

앞치마.

계란.

자립.

알몸 앞치마.

아침.

신 씨.

한유경은 이미 그녀를 신휘 씨라고 불렀고, 문밖의 남자는 SHINHWI라고 불렀다.

SHINHWI.

SHINHWI가 이런 식으로 자립을 시도할 리 없다.

SHINHWI가 알몸 앞치마라며 옆집 회사원을 놀라게 할 리 없다.

그렇다.

그러니까 내 앞의 사람은 옆집의 신 씨다.

아침부터 나는 또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일단 앉으세요.”

내가 말했다.

“왜.”

“제가 아침 만들겠습니다.”

“도윤 출근.”

“알고 있습니다.”

“늦어.”

“신 씨 계란 때문에 이미 늦고 있습니다.”

신 씨는 프라이팬을 보았다.

“계란 약하네.”

“계란 탓으로 돌리지 마세요!”


결국 나는 아침을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계란을 새로 구웠다.

신 씨 냉장고에서 아직 살아남은 계란 두 개를 꺼내고, 즉석밥 하나를 데우고, 없는 김을 찾았다. 없는 것을 찾았으니 당연히 없었다. 대신 초코우유가 있었다. 왜 이 사람 냉장고에서는 식재료를 찾을 때마다 초코우유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나는 계란 프라이를 하고, 즉석밥 위에 올렸다.

간장은 있었다.

소금도 있었다.

냉장고 구석에서 김치도 발견했지만, 신 씨가 “맛 시끄러워”라고 할 것 같아서 꺼내지 않았다.

식탁 위에 밥그릇을 내려놓자 신 씨의 눈이 조금 밝아졌다.

“밥.”

“네. 밥입니다.”

“계란.”

“정상적인 계란입니다.”

“기특해.”

“저 말고 계란을 칭찬하세요.”

“계란 기특해.”

“조금 이상하지만 좋습니다.”

신 씨는 앞치마를 그대로 입은 채 식탁에 앉았다.

나는 맞은편에 앉지 않고 부엌에 기대 섰다.

시간이 없었다.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그런데도 나는 나가지 못했다.

어젯밤의 일 때문인지, 신 씨가 앞치마 차림으로 계란을 태운 것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 안전가옥으로 이동한다는 말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냥 두고 가기 어려웠다.

“천천히 드세요.”

“응.”

“그리고 오늘은 절대 혼자 밖에 나가지 말고 유경 씨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또.”

“또입니다.”

“도윤 잔소리.”

“신 씨의 안전 불감증이 너무 커서 그렇습니다.”

“불감증.”

“특정 단어만 따라 하지 마세요.”

신 씨는 밥을 한 숟가락 먹었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맛 조용해.”

“칭찬입니까?”

“응.”

“다행입니다.”

그녀는 다시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 평범했다.

앞치마만 빼면.

아니, 앞치마가 너무 컸다.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나는 다시 시선을 피했다.

억울하게도 신 씨가 눈치챘다.

“왜 안 봐?”

“출근 생각 중입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닙니다.”

“앞치마?”

“그 단어로 충분합니다.”

“알몸 아니라 아쉬워?”

나는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신 씨!”

“왜.”

“그런 농담은 금지입니다.”

“도윤 반응 재밌어.”

“농담으로 사람을 사회적으로 죽이지 마세요.”

“얼마 전에도 죽기 직전.”

“어제 죽었다가 오늘 부활 중이었습니다.”

“또 죽었네.”

“네. 방금 다시 죽었습니다.”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웃을 수 있는 상태인 건 다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웃음을 보며 조금 마음이 무거웠다.

정말 웃는 걸까.

아니면 웃을 수 있는 만큼만 웃는 걸까.

어젯밤 문밖의 남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역시 남자랑 있네. 그게 너한테 어울리긴 하지. 어울리는 남자들이랑, 어울리는 곳에서,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어야지.

그 더러운 말들이 신 씨에게 닿았을까.

생각할 필요 없다. 당연히 닿았다.

그녀는 바로 그 자리에 있었다.

“신 씨.”

“응.”

“어젯밤 일은…….”

말하다가 멈췄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괜찮냐고 묻는 건 부질없다.

괜찮을 리 없고, 괜찮다고 대답해도 믿을 수 없다.

신 씨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무서웠어.”

나는 말을 잃었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평소라면 “비슷한 거”나 “배고파”로 피했을 사람이.

“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럴 만했습니다.”

“근데.”

그녀는 밥그릇을 보며 말했다.

“도윤이 말했잖아.”

“뭘요?”

“증명하지 말라고.”

나는 숨을 멈췄다.

어젯밤 현관 앞에서 했던 말.

지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마세요.

신 씨는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

“좋았어.”

그녀가 말했다.

아주 작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 씨는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래서 밥 먹어.”

“그게 연결됩니까?”

“먹어야 해.”

“울면 배고프다?”

신 씨가 나를 보았다.

“기억하네.”

“신 씨 말은 가끔 이상하게 오래 남습니다.”

“상처네.”

“좋은 뜻입니다.”

“그럼 기특해?”

“네. 기특합니다.”

이번에는 진심이었다.

신 씨는 아주 조금 만족한 얼굴로 밥을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옆집 신 씨.

사람들이 SHINHWI라고 부르는 사람.

내 마음의 평온을 위해 절대로 옆집 신 씨여야만 하는 사람.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먼저인 게 있었다.

이 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

문을 잠가야 한다.

오늘 어딘가로 이동해야 하고, 그것을 싫어하고 있다.

그리고 어젯밤 무서웠다고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지금은.


식사가 끝난 뒤, 신 씨는 설거지를 하겠다고 했다.

나는 의심했다.

“정말 하시겠습니까?”

“응.”

“세제는 조금만입니다.”

“알아.”

“스펀지는 이쪽.”

“알아.”

“거품이 남으면 안 됩니다.”

“도윤 잔소리.”

“설거지의 기본입니다.”

신 씨는 싱크대 앞에 섰다.

앞치마 차림이라 설거지에는 어울렸다.

다만 앞치마의 첫인상이 문제였을 뿐이다.

그녀는 세제를 눌렀다.

나는 바로 말했다.

“멈춤.”

신 씨가 손을 멈췄다.

세제는 아주 조금만 나왔다.

정말 아주 조금.

나는 놀랐다.

“오.”

신 씨가 나를 봤다.

“기특해?”

“기특합니다.”

그녀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두 개.”

“뭘 세고 계십니까?”

“오늘 기특.”

“칭찬 횟수를 기록하지 마세요.”

“중요해.”

“왜 중요합니까?”

“모아.”

“쿠폰입니까?”

“비슷한 거.”

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녀는 그릇을 닦았다.

서툴렀지만, 이전보다 나았다. 거품도 적당했고, 물로 헹구는 것도 훨씬 나아졌다. 물론 그릇을 물에 오래 담그고 목욕이라고 중얼거리며 멍하니 있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좋습니다.”

내가 말했다.

“설거지를 학습하셨군요.”

“기특해?”

“방금 했습니다.”

“또.”

“기특합니다.”

“세 개.”

“너무 쉽게 모입니다.”

“좋아.”

이 작은 대화가 이상하게 평화로웠다.

어젯밤 문고리 소리가 거짓말 같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한유경이었다.

왜 나에게 연락을 했을까.

나는 신 씨를 봤다.

신 씨는 바로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나에게 연락을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신 씨.”

“응.”

“혹시 아침에 유경 씨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까?”

“아마.”

이 사람, 진짜.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서도윤입니다.”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죄송합니다. 혹시 신휘 씨와 같이 계십니까?”

신휘 씨.

아침 공기 안에 그 이름이 또 놓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신 씨를 봤다.

그녀는 싱크대 앞에서 그릇을 들고 있었다.

앞치마 차림.

볼에는 아직 흰 가루가 조금 묻어 있었다.

계란을 태웠고, 세제를 조금만 쓰는 법을 배웠으며, 칭찬 횟수를 세고 있었다.

나는 다시 현실 부정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유경이 “신휘 씨”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방어선은 조금씩 무너졌다.

“네. 옆에 계십니다.”

나는 결국 그렇게 말했다.

“왜 신휘 씨는 전화를 받지 않습니까?”

나는 잠깐 멈췄다.

신 씨가 내 눈을 피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계란 때문입니다.”

전화 너머가 아주 잠깐 조용해졌다.

“……계란이요?”

“신 씨가 아침에 계란을 조리하다가 약간의 사고가 있어서요.”

신 씨가 옆에서 작게 말했다.

“알몸 앞치마.”

나는 숨이 멎었다.

“신 씨! 그 말 하지 마세요!”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의 침묵이 길어졌다.

정말 길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 나의 사회적 생명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사망하는가.

한유경이 아주 차분하게 말했다.

“서도윤 씨.”

“네.”

“신휘 씨가 옷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앞치마로 치환했습니까?”

“아닙니다.”

“다행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신 씨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나는 휴대폰을 손으로 막고 말했다.

“조용히 계세요.”

“배신.”

“사회적 생명입니다.”

“배신이 사회적 생명의 옷을 입었네.”

“제발.”

한유경이 말했다.

“옆에 계시면 신휘 씨에게 통화해야 한다고 전달 부탁드립니다.”

나는 신 씨에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신 씨는 그릇을 내려놓고 손을 대충 물에 털었다.

나는 바로 수건을 건넸다.

“손 닦고요.”

“도윤 잔소리.”

“전자기기입니다.”

“잔소리가 전자기기의 옷을 입었네.”

“그건 좀 새롭네요.”

신 씨는 손을 닦고 휴대폰을 받았다.

“응.”

한유경의 목소리는 작게 들리지 않았다. 신 씨가 귀에 제대로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휘 씨, 오늘 오후로 이동 일정 확정됐습니다.”

신 씨의 표정이 변했다.

방금까지 설거지로 칭찬을 모으던 얼굴에서, 웃음기가 조금 사라졌다.

“오후 두 시 반에 보안팀이 올라갑니다. 세 시 전에 차량 출발합니다. 짐은 최소한만 챙기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정리합니다.”

신 씨는 아주 짧게 말했다.

“싫어.”

한유경은 예상했다는 듯 대답했다.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갇히는 거잖아.”

“보호입니다.”

“배신.”

“오늘은 배신이 보호의 옷을 입겠습니다.”

한유경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신 씨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 옆모습을 보았다.

짧은 머리카락이 볼 옆으로 내려와 있었고, 앞치마 끈은 살짝 비뚤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은 더 이상 알몸 앞치마 농담을 말하던 신 씨가 아니었다.

문 앞에서 “갇히는 거잖아”라고 말하던 사람.

회의실에서 “도망가고 싶어”라고 메시지를 보내던 사람.

그 사람이었다.

“하루가.”

신 씨가 작게 말했다.

한유경이 멈췄다.

“네?”

“하루가 하루로 안 끝나는 거 알아.”

그 말은 이상했다.

아주 이상했다.

마치 경험에서 나온 말처럼 들렸다.

‘오늘만’이라며 시작된 보호가 정말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아는 사람의 말.

한 번 들어가면, 문이 늘어나고, 허락이 늘어나고, 누군가의 확인이 늘어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밖으로 나가는 일 자체가 사건이 된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아무것도 묻지 못했다.

한유경도 잠깐 침묵했다.

하지만 곧 말했다.

“그래도 오늘은 움직여야 합니다.”

신 씨는 다시 오랜 시간을 대답하지 않았다.

옆에 있던 나까지 긴장할 만큼 긴 침묵이 흐른 뒤에야 겨우 말했다.

“알았어.”

그 말은 승낙이 아니었다.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는 뜻에 가까웠다.

한유경은 이어 말했다.

“오늘 오후 이동 전까지 혼자 외출 금지입니다. 보안 인력 배치되어 있으니 몰래 빠져나가려고 하지 마세요. 필요한 물품은 저희가 가져가겠습니다. 서도윤 씨 댁 방문도 안 됩니다.”

신 씨가 나를 봤다.

“급식소도 변수야?”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이 대답했다.

“네.”

나는 멈칫했다.

“제가 변수입니까?”

신 씨가 휴대폰을 내 쪽으로 조금 내밀었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죄송하지만 현재 신휘 씨에게는 그렇습니다.”

나는 잠깐 가슴을 눌렀다.

“정확해서 더 아프네요.”

한유경은 사과하지 않았다.

아마 진짜로 미안하지만, 지금은 정확한 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도윤 씨께도 부탁드립니다. 오늘 오후 이동 전까지 신휘 씨가 혼자 나가려는 움직임이 있으면 바로 연락주십시오.”

신 씨가 바로 말했다.

“감시.”

“안전 확인입니다.”

“감시.”

“신휘 씨가 안전을 귀찮음으로 분류하고 무시하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나는 작게 말했다.

“그건 맞습니다.”

신 씨가 나를 봤다.

“도윤도 배신.”

“팩트입니다.”

“배신이 팩트의 옷을 입었네.”

“오늘 정말 옷이 많습니다.”

한유경은 짧게 정리했다.

“두 시 반입니다. 그 전까지 짐은 최소한만 챙기세요. 충전기, 꼭 필요한 개인 물품. 그 외에는 나중에 옮기겠습니다.”

“응.”

“정말 위험할 수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해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이런 상황일수록 식사는 챙겨드세요.”

신 씨는 나를 봤다.

“먹었어.”

“서도윤 씨께서 챙겨주셨습니까?”

신 씨가 혼자 챙겨 먹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말이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계란입니다.”

한유경은 이번엔 한숨을 숨기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왜 감사받는지 모르겠다.

나는 아침부터 가스불과 알몸 앞치마와 계란과 사회적 생명을 상대로 싸웠을 뿐이다.

이윽고 통화가 끝났다.

신 씨는 내 휴대폰을 돌려주었다.

그리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조금 전까지 씻던 그릇은 싱크대에 남아 있었다.

나는 그릇을 마저 헹구고 물기를 털었다.

“신 씨.”

“응.”

“짐 챙기셔야 하지 않습니까?”

“귀찮아.”

“귀찮다고 안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알아.”

“그럼 챙기세요.”

“도윤.”

“네.”

“안전이면 문이 많아져.”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신 씨는 식탁 위를 보며 말했다.

“열어도 되는 문. 열면 안 되는 문. 누가 지키는 문. 누가 열어주는 문. 내가 열면 안 되는 문.”

그녀는 잠깐 숨을 골랐다.

“귀찮아.”

그 말은 이번에도 농담이 아니었다.

“답답하고요.”

내가 말했다.

신 씨가 나를 보았다.

“응.”

“그래도 오늘은 도망가지 말고 기다리셔야 합니다.”

“도윤도?”

“네?”

“기다리라고 해?”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자유롭게 해줄 수 없다. 보호 계획을 바꿀 수 없다. 어젯밤 문밖에 있던 남자를 없앨 수도 없고, 인터넷의 악의를 멈출 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침을 만들고, 세제를 조금 쓰라고 말하고, 문단속을 알려주고,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하는 것 정도다.

너무 작다.

그런데 지금은 그 정도밖에 없다.

“네.”

나는 말했다.

“기다리세요. 적어도 오늘 오후까지는.”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신 씨? 기다리실 거죠?”

그 말에 신 씨의 눈이 아주 잠깐 흔들렸다.

아주 잠깐.

하지만 나는 봤다.

“신 씨.”

“왜.”

“방금 뜨끔하셨죠.”

“아니.”

“그 표정은 얌전이란 개념이 도망가 버린 얼굴이었습니다.”

“도윤 눈치 늘었네.”

“신 씨 때문입니다.”

“기특해.”

“칭찬으로 넘어가지 마세요.”

신 씨는 입술을 조금 내밀었다.

“답답해.”

“알고 있습니다.”

“몰라.”

“정확히는 모르죠. 그래도 답답하다는 건 압니다.”

신 씨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 말했다.

“바깥 보고 싶어.”

나는 시계를 봤다.

출근 시간이 이미 위험했다.

그런데도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은 참으세요.”

“치사해.”

“안전입니다.”

“배신이 안전의 옷을 입었네.”

“네. 오늘도 그 옷입니다.”

신 씨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일단 내 집으로 돌아가 급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챙겨 다시 옆집 문 앞에 섰을 때는 이미 지각 확정이었다.

문 앞에서 신 씨에게 다시 확인했다.

“혼자 나가지 마세요.”

“응.”

“유경 씨 올 때까지 문 잠그고 체인 거세요.”

“응.”

“가스불 켜지 마세요.”

“계란은?”

“오늘 계란 금지입니다.”

“배신.”

“화재 예방입니다.”

“배신이 화재 예방의 옷을 입었네.”

“정확합니다.”

“도윤도 혼자 가?”

나는 멈췄다.

“출근이요?”

“응.”

“갑니다.”

“조심.”

그 말이 예상 밖으로 나왔다.

나는 신 씨를 보았다.

그녀는 식탁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어제.”

그녀가 말했다.

“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도윤도.”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뜻은 알 것 같았다.

나도 조심하라는 말.

“사람 많은 출근길입니다. 일반인인 저는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걱정되시면 출발 전에 박 대리님에게 연락하고 가겠습니다. 도착하면 유경 씨에게도 연락해 둘게요.”

“박.”

“회사 동료입니다. 편의점에서 보시지 않았습니까?”

“믿는 사람?”

“네.”

신 씨는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믿을래.”

어제도 비슷한 말을 했다.

내가 믿으면 자기도 믿겠다고.

나는 그 말이 기쁘면서도 무거웠다.

“너무 쉽게 믿지는 마세요.”

“도윤은 어렵게 믿어?”

“네.”

“그럼 됐어.”

그 말에는 이상한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반박할 힘이 없었다.

나는 현관을 나왔다.

복도에는 보안 인력 한 명이 서 있었다. 검은 재킷 차림의 남자가 내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아마 밤새 신 씨뿐 아니라 내 안전 역시 지켜준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출근하고 나면, 신 씨의 안전은 전적으로 이 사람들이 맡게 된다.

아니, 내가 뭔가를 맡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옆집 문이 닫혔다.

찰칵.

잠금장치 소리.

그리고 조금 뒤.

철컥.

체인 소리.

나는 그 소리를 듣고서야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휴대폰으로 박 대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나: 죄송합니다. 조금 늦을 것 같습니다.

답장은 빨랐다.

박정민 대리: 또 그분입니까?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답장했다.

나: 계란입니다.

곧바로 답이 왔다.

박정민 대리: 그분이군요.

엘리베이터 도착음이 울렸다.

문이 열리고,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려는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신 씨였다.

신 씨: 도윤.

나는 바로 답장했다.

나: 네.

잠시 후.

신 씨: 바다 보고 싶어.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멈췄다.

층수 표시가 천천히 내려갔다.

오후 두 시 반. 보안팀. 세 시 전 차량 출발. 안전가옥.

갇히는 거잖아.

그리고.

바다 보고 싶어.

나는 휴대폰 화면을 한참 바라보았다.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무언가가 이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