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9
CHAPTER 09: 옆집 여자는 문단속을 배운다
소속사 회의 뒤 돌아온 도윤은 신 씨의 허술한 문단속과 낯선 방문자의 흔적을 마주하고, 그녀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규칙을 가르친다.
옆집 여자는 문단속을 배운다
밤 10시 41분.
나는 씻지도 못하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집에 돌아온 뒤 한 시간쯤 지났지만, 정신은 아직 NOVA LINE MUSIC 회의실에 남아 있었다.
유리벽. 하얀 테이블. 노트북 화면에 정리된 게시글 캡처. 차분한 목소리의 한유경. 그리고 그 회의실 한가운데 앉아 초코우유를 빨던 신 씨.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안 됐다.
NOVA LINE MUSIC에 신 씨가 있었다.
SHINHWI의 매니저로 팬덤에 알려진 한유경이 나를 불렀다.
한유경은 계속 ‘당사 소속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썼다.
신 씨는 회의실에서 초코우유를 마셨다.
그리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보고도 결론을 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나는 그 결론을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이유는 충분했다.
첫째, SHINHWI가 내 옆집에 살 리 없다.
둘째, SHINHWI가 분리수거장에서 “다 쓰레기잖아”라고 말할 리 없다.
셋째, SHINHWI가 오므라이스를 태워 화재경보기를 울릴 리 없다.
넷째, SHINHWI가 내 집에서 라면을 기다리며 초코우유 빨대를 물고 있을 리 없다.
다섯째, SHINHWI가 자기 키만 한 SHINHWI 다키마쿠라 상자를 들고 와 “기특해?”라고 물을 리 없다.
여섯째.
만약 신 씨가 SHINHWI라면, 나는 SHINHWI 본인에게 SHINHWI 성인 인증 한정판 다키마쿠라 상자를 들킨 인간이 된다. 본인이 내용물이 어떤 것인지 모를 리가 없으니, 내용물은 지켰다는 것이 더 이상 내 사회적 생명을 지켜주는 동앗줄이 되지 못한다.
그건 불가능하다.
논리적으로가 아니라, 정신 건강상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나는 그렇게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얻었다고 생각했다.
휴대폰이 울리기 전까지는.
신 씨: 도윤.
나는 화면을 보며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이 두 글자만 봐도 어딘가 불안했다.
나: 네.
잠시 후.
신 씨: 돌아왔어.
나는 시계를 봤다.
10시 42분.
생각보다 늦었다.
나: 지금요?
신 씨: 응.
나: 회사 차량으로 한유경 씨와 돌아오신 거죠?
신 씨: 응.
나: 그럼 안전하게 들어오신 겁니까?
신 씨: 아마.
아마.
그 단어 하나로 사람의 혈압을 올릴 수 있다니.
나는 바로 답장했다.
나: 오늘은 바로 집에 계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제 사진도 있었고, 오늘 NOVA LINE에서도 이야기했잖습니까. 늦은 시간에는 나가지 마세요.
잠시 후.
신 씨: 배고파.
나는 눈을 감았다.
예상했다.
예상했는데도 힘들다.
나: 식사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잖습니까.
신 씨: 먹었어.
나: 그런데요?
신 씨: 라면 아니었어.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천장을 보았다.
정말.
진짜.
이 사람은.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었다.
나: 오늘은 그냥 집에 계세요. 늦었습니다.
답장은 빨랐다.
신 씨: 늦었어.
나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늦었다.
무엇이?
라면을 먹기에는? 집에 있기에는? 나가기에는?
내가 다시 묻기 전에 새 메시지가 왔다.
신 씨: 문 앞.
동시에.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아직 ‘문 앞’이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그리고 현관 너머에는, 아마도 신 씨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은 진짜.”
나는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문 앞에 다가가 렌즈를 들여다봤다.
신 씨였다.
회색 후드티. 검은 반바지. 슬리퍼. 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
나는 체인을 건 상태로 문을 조금 열었다.
“신 씨.”
“응.”
“오늘은 집에 있으시라고 했습니다.”
“있어.”
“여기는 제 집 문 앞입니다.”
“가까워.”
“그런 논리로 위치의 의미를 축소하지 마세요.”
신 씨는 편의점 봉투를 살짝 들어 보였다.
봉투 안에는 초코우유 두 개가 들어 있었다.
작은 팩이 아니라, 꽤 큰 팩 두 개.
“편의점 다녀오셨습니까?”
“응.”
나는 바로 주변 복도를 확인했다.
늦은 밤 아파트 복도는 조용했다. 형광등이 희미하게 깜빡였고, 계단 쪽은 어두웠다. 인기척은 없었다.
그래도 불안했다.
어제 사진이 올라갔다.
오늘 NOVA LINE에서까지 주의를 들었다.
그런데 신 씨는 아마도 혼자 밤늦게 편의점에 다녀왔다.
“일단 들어오세요.”
나는 문을 열었다.
신 씨는 순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지나가자 씻고 나온 듯한 비누 냄새와 바깥 공기가 함께 들어왔다.
나는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걸었다.
찰칵.
그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신 씨는 식탁 쪽으로 갔다.
편의점 봉투를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초코우유 두 개가 나란히 굴러 나왔다.
나는 그것을 보았다.
“설마 하나는 제 겁니까?”
신 씨가 멈췄다.
그녀는 초코우유 두 개를 봤다.
그리고 나를 봤다.
다시 초코우유를 봤다.
정말, 진심으로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말했다.
“뺏어먹을 생각은 아닙니다.”
신 씨는 다시 나를 봤다.
“그럼 왜 물어?”
“두 개나 사오셨길래요.”
“응.”
“설마 둘 다 드실 생각이셨습니까?”
“비슷한 거.”
“고민하실 거면 둘 다 드세요.”
신 씨는 초코우유 하나를 손에 들었다.
잠시 망설이더니 내 쪽으로 내밀었다.
“라면값.”
나는 초코우유를 받았다.
손끝에 차가운 감촉이 닿았다.
“라면값이요?”
“응.”
“신 씨답지 않게 꽤나 정상적인 거래를 하려 하고 있습니다.”
“상처네.”
“좋은 뜻입니다.”
“그럼 기특해?”
나는 잠깐 신 씨를 보았다.
그녀는 평소처럼 무심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손끝은 초코우유 팩 모서리를 조금 세게 누르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건 사과다.
신 씨다운 사과.
“어제 사진 때문에.”
라고 말하지 못하고.
“오늘 NOVA LINE까지 불러서 미안해.”
라고 말하지 못하고.
“도윤이 내 일에 휘말려서 미안해.”
라고 말하지 못해서.
초코우유 두 개를 사왔다.
처음에는 둘 다 마실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말에 초코우유가 두 팩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낮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고 내게 하나를 건넸다.
라면값이라고 하면서.
나는 초코우유를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기특합니다.”
신 씨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짧은 대답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부엌으로 갔다.
“라면 끓이겠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먹고 바로 들어가세요.”
“왜.”
“늦었으니까요. 그리고 문단속도 제대로 하셔야 합니다.”
“문단속.”
“네.”
“귀찮아.”
“생존입니다.”
“문단속이 생존의 옷을 입었네.”
“문단속은 생존의 옷을 입은 것이 맞으니, 오늘은 그 옷 여러 겹 입으세요.”
나는 냄비에 물을 받았다.
가스불을 켜고, 라면 봉지를 뜯었다.
그 순간, 신 씨의 시선이 방구석으로 향했다.
나는 바로 돌아봤다.
“안 됩니다.”
“아직 안 했어.”
“눈이 했습니다.”
방구석에는 아직 상자가 있었다.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Full Set.
여전히 열지 않은 채.
거대한 상자는 방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너무 커서 숨길 수도 없었다. 담요를 덮으면 더 수상했고, 책장 뒤로 밀어 넣기엔 길이가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있었다.
마치 집 안에 설치된 지뢰처럼.
신 씨는 상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안 열었어?”
“네.”
“왜.”
“제 마음의 평화 유지를 위해서요.”
“불쌍해.”
“상자 안에 있을 뿐입니다.”
“태어나지도 못했어. 더 불쌍해.”
“의인화하지 마세요.”
신 씨는 식탁에 턱을 괴었다.
“오늘은 열어?”
“안 엽니다.”
“왜.”
“신 씨가 있어서요.”
“내가 없으면?”
“그 질문도 안 됩니다.”
“도윤 이상해.”
“이상한 건 저 상자의 내용물입니다.”
“그럼 봐야지.”
“그 논리 오늘도 금지입니다.”
신 씨는 초코우유 빨대를 물었다.
내게 준 것 말고, 자기 몫이었다.
언제 빨대를 꽂았는지 모르겠다.
그녀는 초코우유를 마시며 상자를 봤다.
나는 라면 냄비 앞에서 그녀를 경계했다.
불안했다.
라면 물이 끓는 사이에 신 씨가 상자 테이프를 뜯을 수도 있다.
이 사람은 귀찮음이 기본값인데, 하지 말라는 것에는 이상하게 부지런해진다.
상자 안의 내용물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과 실제로 눈앞에서 내용물을 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아니, 상자 안의 내용물을 알고 있을 리 없다.
이 사람은 옆집 신 씨다. NOVA LINE MUSIC에서 일하는 신 씨.
그러니까 SHINHWI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신 씨.”
“응.”
“상자에 가까이 가지 마세요.”
“라면 기다리는 중이야.”
“기다리는 것과 이동은 별개의 행동 아닙니까.”
“들켰네.”
“시도할 생각이셨군요.”
“조금.”
“조금도 안 됩니다.”
“치사해.”
“사생활입니다.”
“치사함이 사생활의 옷을 입었네.”
“그 옷 아주 두껍습니다.”
라면 물이 끓었다.
나는 스프와 면을 넣었다.
계란도 넣었다.
오늘은 치즈를 넣지 않았다. 상황이 충분히 느끼했다. 음식까지 그럴 필요는 없었다.
신 씨는 라면 냄새가 나자 상자에서 시선을 뗐다.
역시 라면은 강하다.
세상의 많은 위기를 일시적으로 덮을 수 있다.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하지만.
나는 그릇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뜨겁습니다.”
“응.”
“천천히 드세요.”
“응.”
“초코우유는 라면 다 드신 뒤에.”
“이미 마셨어.”
나는 그녀 손의 초코우유를 봤다.
빨대에서 빈 우유팩의 소리가 들렸다.
“말하기 전에 드셨군요.”
“응.”
“전략적이네요.”
“비슷한 거.”
나는 반박할 힘이 조금 줄었다.
신 씨는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조금 조용했다.
젓가락질은 느렸고, 면을 몇 번 불어 식혔다. 국물을 마시기 전에는 한참 냄새를 맡았다.
마치 확인하듯.
이게 라면인지. 집인지. 안전한지.
나는 맞은편에 앉아 초코우유를 손으로 굴렸다.
“신 씨.”
“응.”
“오늘 NOVA LINE에서…….”
나는 말을 고르다 멈췄다.
SHINHWI의 소속사.
한유경.
당사 소속 아티스트.
신 씨.
이 모든 걸 어떻게 물어야 하지.
신 씨는 라면을 먹으며 나를 봤다.
“왜.”
“아닙니다.”
“물어봐.”
“물어봐도 됩니까?”
“싫으면 대답 안 해.”
정말 신 씨다운 허락이었다.
나는 잠깐 웃었다.
“한유경 씨는 신 씨에게 어떤 분입니까?”
신 씨는 생각했다.
“잔소리.”
“직업이 잔소리입니까?”
“비슷한 거.”
“또요.”
“나 안 굶게 해.”
“그건 중요한 일입니다.”
“귀찮게 해.”
“그것도 중요한 일일 수 있습니다.”
“도윤이랑 비슷해.”
나는 멈췄다.
“제가요?”
“응.”
“제가 한유경 씨랑요?”
“잔소리.”
“그 기준이면 전 국민의 보호자가 한유경 씨와 비슷해집니다.”
“도윤은 라면 해줘. 유경은 라면 못 먹게 해.”
“그럼 차이가 크네요.”
“응.”
신 씨는 면을 먹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오늘 회의에서는 제 이야기가 왜 나왔습니까?”
“사진.”
“그건 알고 있습니다.”
“도윤 찍혔잖아.”
“네.”
“일반인.”
신 씨는 그 단어를 조금 낮게 말했다.
“말 많아지면 안 된대.”
“누가요?”
“유경이.”
그건 맞는 말이었다.
한유경도 그렇게 말했다.
일반인인 서도윤 씨의 신상 보호.
나는 일반인이다.
그러니까 보호해야 한다.
그런데 그 말을 신 씨 입에서 들으니 이상했다.
마치 그녀는 일반인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아니다.
또 그쪽으로 가면 안 된다.
나는 즉시 부정했다.
일반인이 아니라고 해서 꼭 SHINHWI인 건 아니다.
NOVA LINE에는 여러 관계자가 있다.
작곡가, 세션, 스태프, 크리에이터, 연습생, 다른 아티스트.
신 씨가 SHINHWI일 필요는 없다.
제발.
필요 없다.
“신 씨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나는 말했다.
“응.”
“응이 아니라 정말로요. 편의점도 밤에는 혼자 가지 마세요.”
“초코우유.”
“초코우유보다 안전이 먼저입니다.”
신 씨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라면을 먹었다.
그 표정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NOVA LINE 회의실에 있던 사람도, 인터넷에서 SHINHWI일지도 모른다고 추측당하던 사람도, 지금은 그냥 라면을 먹으며 초코우유에 대한 잔소리에 삐진 옆집 여자였다.
나는 또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라면 국물을 마시며 초코우유 때문에 삐지는 SHINHWI 같은 건 없다.
없어야 한다.
라면을 다 먹은 뒤, 신 씨는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살았다.”
“라면 하나로 생사가 오가시면 곤란합니다.”
“오가.”
“그럼 더 곤란합니다.”
나는 그릇을 치우려 했다.
그때 신 씨가 아주 자연스럽게 상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그릇을 든 채 멈췄다.
“안 됩니다.”
“보기만.”
“더 안 됩니다.”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사회적 생명을 갉아먹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릇을 싱크대에 내려놓고 말했다.
“이제 돌아가세요.”
“벌써?”
“벌써가 아닙니다.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급식소 문 닫아?”
“처음부터 영업한 적 없습니다.”
“라면 줬잖아.”
“그건 긴급 구호입니다.”
“내일도?”
“내일은 내일 생각하세요.”
신 씨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피곤해 보였다.
정말 피곤해 보였다.
낮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피곤해. 배고파. 여기 라면 없어. 도망가고 싶어.
그리고 지금.
늦었어. 문 앞.
나는 한숨을 삼켰다.
“신 씨.”
“응.”
“집에 들어가시면 바로 문 잠그세요.”
“응.”
“현관 잠금장치만 하지 말고 체인도 거세요.”
“체인?”
“네. 문 안쪽에 걸쇠 있죠.”
“있어.”
“그거 거는 법 아십니까?”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모르십니까?”
“조금 전에 도윤 문에 걸려 있는 거 봤어.”
“본 것과 하는 건 다릅니다.”
“비슷한 거.”
“절대 안 비슷합니다.”
나는 현관 쪽으로 갔다.
“잠깐 보세요. 이게 잠금장치고, 이게 체인입니다. 문을 닫은 다음 이걸 이렇게 걸면, 밖에서 문고리를 돌려도 문이 완전히 열리지 않습니다.”
나는 직접 보여주었다.
찰칵.
체인이 걸렸다.
문은 조금만 열리고 멈췄다.
“이렇게요.”
신 씨는 옆에서 진지하게 보고 있었다.
“기특해.”
“이걸로 기특해요?”
“응.”
“문단속을 설명한 제가 왜 기특합니까?”
“아니. 나.”
“아직 안 해보셨잖아요.”
“배웠잖아.”
“그럼 예비 기특입니다.”
“그런 것도 있어?”
“방금 만들었습니다.”
“좋네.”
나는 체인을 풀었다.
“신 씨 집에 가면 바로 해보세요. 문 닫고, 잠금장치 걸고, 체인 걸고. 누가 와도 바로 열지 말고요.”
“도윤도?”
“저도요.”
“라면이면?”
“라면이어도요.”
“배신.”
“안전입니다.”
“배신이 안전의 옷을 입었네.”
“오늘 세 번째쯤입니다.”
“세고 있어?”
“살기 위해서요.”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때였다.
철컥.
문고리가 돌아갔다.
나는 처음에는 내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너무 자연스러운 소리였다.
평범한 방문객이 문을 열려 할 때 나는 소리.
하지만 밤 11시가 넘은 이 시간에, 내 집 문고리를 돌릴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신 씨도 멈췄다.
철컥.
다시 문고리가 돌아갔다.
이번에는 분명했다.
밖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려고 하고 있었고,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문은 열리지 않은 거다.
그리고 문고리는 다시 내려갔다.
철컥.
찰칵.
아주 작고, 집요한 소리.
피부가 차가워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신 씨를 내 뒤로 밀었다.
“뒤로.”
내 목소리는 낮게 나갔다.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숨이 아주 작게 멈춘 것 같았다.
나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신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나는 이상하게 또 생각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문밖의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잠금화면을 풀고, 집에 돌아와 저장한 명함의 번호를 찾았다.
한유경.
통화 버튼을 눌렀다.
신호음이 갔다.
그 사이에도 문고리는 다시 움직였다.
철컥.
이번에는 더 세게.
문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나는 현관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갔다.
신 씨는 내 뒤에 있었다.
“누구십니까?”
나는 일부러 평범한 목소리를 냈다.
조금 낮게.
조금 짜증난 사람처럼.
무서운 사람이 아니라, 귀찮은 일을 당한 집주인처럼.
문밖에서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에 있는 거 알아.”
심장이 세게 뛰었다.
나는 신 씨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절대 돌아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여긴 제 집입니다.”
나는 말했다.
“밤이 늦었습니다. 돌아가세요.”
전화가 연결됐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작게 들렸다.
“서도윤 씨?”
나는 휴대폰을 귀에 대지 않았다.
손에 쥔 채 마이크만 막지 않도록 했다.
최대한 문 쪽에 목소리가 들리게.
“한유경 씨.”
나는 아주 낮게 말했다.
“제 집 문을 누군가 열려고 합니다.”
전화 너머의 침묵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문 열지 마세요. 혹시 두 분 함께 계십니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문밖의 남자에게도 들릴 수 있었다.
대신 문 쪽을 향해 말했다.
“전 당신을 모릅니다. 잘못 찾아오신 겁니다.”
문밖의 남자가 웃었다.
작고, 낮은 웃음.
“거짓말하지 마.”
신 씨가 내 뒤에서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손을 뒤로 뻗어 그녀가 더 뒤로 물러나게 했다.
“돌아가세요.”
“다 알아.”
남자가 말했다.
“안에 있는 거 다 알아.”
철컥.
문고리가 다시 내려갔다.
이번에는 문을 당기는 힘까지 느껴졌다.
체인을 걸어두지 않았다면.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속이 차가워졌다.
방금 문단속을 보여주기 위해 체인을 걸었다가 풀었다.
지금은 잠금장치만 걸려 있다.
체인은 걸려 있지 않다.
하지만 잠금장치는 버티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체인을 걸 수 있는지 확인했다.
나는 신 씨를 뒤로 물리고, 조금 전 풀어둔 체인을 다시 걸었다.
찰칵.
잠금장치가 버티고 있어도 하나라도 더 걸어두고 싶었다. 방금 설명한 문단속이 바로 필요해질 줄은 몰랐다.
문밖의 남자가 다시 말했다.
“역시 남자랑 있네.”
그 말이 너무 더러워서,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게 너한테 어울리긴 하지.”
나는 이를 악물었다.
신 씨가 뒤에서 움직이려 했다.
나는 손을 들어 막았다.
절대.
지금 신 씨가 목소리를 내면 안 된다.
문밖의 남자는 그녀의 반응을 원한다.
그녀가 무서워하든, 화를 내든, 부정하든.
그 모든 걸 자기 뜻대로 끌어내고 싶어 한다.
나는 낮게 말했다.
“여긴 혼자 사는 제 집입니다. 계속 이러시면 경찰 부르겠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지 마세요. 지금 옆에 있는 직원에게 바로 112 신고시키겠습니다. 통화는 유지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해달라 대답했다.
내 반응으로 한유경은 이미 나와 신 씨가 함께 있고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 같았다.
그리고 내 대답을 문밖의 남자도 들었을 것이다.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는 이미 알고 온 듯했다.
“그런 남자는 아니잖아.”
남자가 말했다.
목소리가 점점 이상해졌다.
분노인지, 흥분인지, 집착인지 알 수 없는 것이 섞여 있었다.
“그런 평범한 남자랑 있으면 안 되잖아. 너는 그런 데 있을 사람이 아니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울리는 남자들이 있잖아.”
남자가 계속 말했다.
“어울리는 곳에서, 어울리는 모습으로 있어야지.”
피가 차갑게 식었다.
그 말들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수 없었다.
스캔들.
사진과 영상.
다수의 남성들과 난잡하게 얽힌 것처럼 유포된 저열한 이미지.
그 남자는 그 더러운 프레임을 그대로 믿고 있었다.
아니, 믿고 싶어 했다.
그는 SHINHWI라는 이름을, 자신이 소비하고 싶은 가장 저속한 이미지로만 보고 있었다.
나는 문 쪽을 똑바로 보았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뭐?”
“여기는 제 집이고, 당신이 찾는 사람은 없습니다.”
“있잖아.”
“없습니다.”
“네가 뭘 알아.”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는 알아. 팬이니까 알아. 어떤 모습이 진짜인지.”
그 말에 속이 뒤틀렸다.
팬.
저런 사람이 팬이라는 단어를 쓴다.
나는 낮게 말했다.
“팬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문밖이 조용해졌다.
아주 잠깐.
나는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곧 남자가 다시 말했다.
“넌 아니야.”
“뭐가 말입니까.”
“너는 어울리지 않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 평범한 회사원 같은 놈이 옆에 있을 사람이 아니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밥이나 먹여? 라면이나 끓여?”
나는 몸이 굳었다.
라면.
그 단어가 나왔다.
그는 알고 있다.
어느 정도까지?
인터넷 사진만 본 사람이 아니다.
더 가까이서 봤다.
편의점? 아파트? 회사 근처? 아니면.
내 집?
나는 뒤에 있는 신 씨를 생각했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숨만 쉬고 있었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전화 너머에서 들렸다.
“서도윤 씨, 절대 문 열지 마세요. 가능하면 현관에서 떨어져 계세요. 경찰 출동 요청했습니다.”
나는 작게 대답했다.
“네.”
문밖의 남자가 말했다.
“안에 있는 거 다 안다니까.”
그때.
내 뒤에서 아주 작은 진동음이 울렸다.
신 씨의 휴대폰이었다.
나는 돌아봤다.
신 씨는 휴대폰을 손에 들고 있었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모르는 번호.
메시지 하나.
그녀는 그것을 보고 굳어 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휴대폰 화면을 봤다.
문자는 짧았다.
다 알아 SHINHWI. 네 모습도 네가 거기 있는 것도.
숨이 멎었다.
SHINHWI.
그 이름이 화면에 박혀 있었다.
신 씨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휴대폰을 조심스럽게 그녀 손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화면을 한유경 쪽으로 보이게 할 수도 없다는 걸 깨닫고, 빠르게 말했다.
“한유경 씨. 신 씨 휴대폰으로 메시지가 왔습니다. 모르는 번호입니다. 내용은…….”
나는 잠깐 멈췄다.
SHINHWI.
말해야 한다.
하지만 입이 이상하게 굳었다.
그 이름을 말하는 순간, 내가 필사적으로 붙잡고 있던 현실 부정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다 알아 SHINHWI. 네 모습도 네가 거기 있는 것도.’라고 왔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한유경의 목소리가 차갑게 굳었다.
“문밖 인물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메시지 삭제하지 마세요. 경찰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나는 대답했다.
“네.”
문밖의 남자가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철컥.
이번에는 더 세게.
문이 흔들렸다.
나는 신 씨를 더 뒤로 밀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세요.”
신 씨는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낮게 말했다.
“신 씨.”
그녀가 나를 보았다.
눈이 조금 커져 있었다.
평소의 무심함은 없었다.
피곤함도, 귀찮음도, 라면을 기다리던 느슨함도.
그냥 얼어붙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말했다.
“증명하지 마세요.”
그녀의 눈이 흔들렸다.
“지금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저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마세요.”
문밖에서 남자가 다시 말했다.
“들리지? 다 안다고. 네가 어떤 사람인지.”
나는 문 쪽을 향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돌아가십시오. 경찰 오고 있습니다.”
남자가 웃었다.
“경찰?”
“네.”
“그래. 불러. 그래야 더 재밌지.”
그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건 단순한 장난이 아니다.
단순한 착각도 아니다.
누군가 인터넷의 조롱을 현실로 끌고 왔다.
사진 속 흐릿한 추측이, 댓글 속 저속한 말이, 내 집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
어쩌면 편의점에서 사진을 찍은 사람도 이 남자일지 몰랐다.
적어도 댓글 속 악의를 현실로 끌고 와, 지금 내 집 문고리를 잡고 있는 사람은 그였다.
나는 휴대폰을 꽉 쥐었다.
한유경의 목소리가 들렸다.
“서도윤 씨, 현관에서 떨어지세요. 방 안에 계세요. 경찰 도착 전까지 통화 유지하겠습니다.”
나는 짧게 대답했다.
“네.”
그리고 다시 신 씨를 보았다.
“안쪽으로.”
이번에는 신 씨가 움직였다.
아주 천천히.
나는 그녀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문에서 조금 떨어졌다.
문고리는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철컥.
철컥.
철컥.
밤 11시가 지난 아파트 복도에서, 누군가 내 집 문을 계속 열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그 생각은 여전히 머릿속 어딘가에서 버티고 있었다.
아니어야 한다.
아니면 나는 감당할 수 없다.
하지만 문밖의 남자는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에는 SHINHWI라는 이름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신 씨를 내 뒤에 숨기고 있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아직 인정하지 못한 채로.
그래도.
지금 이 문은 열리면 안 된다.
그것만은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