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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8

CHAPTER 08: 옆집 여자는 소속사 회의실에도 있다

도윤은 온라인 사진 문제로 NOVA LINE MUSIC에 호출되고, 소속사 회의실에서 초코우유를 마시는 신 씨와 마주한다.

옆집 여자는 소속사 회의실에도 있다

다음 날 회사에서, 나는 휴대폰을 책상 위에 엎어두었다.

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인터넷 게시글도, 댓글도, 사진도.

그리고 신 씨의 메시지도.

물론 마지막 건 실패했다.

오전 10시 22분.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참았다.

업무 중이다. 지금은 보고서 정리 중이다. 팀장님이 오전 안에 초안을 달라고 했다. 나는 직장인이다. 직장인은 근무 시간에 사적인 메시지 하나하나에 흔들리지 않는다.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나는 3초를 더 버텼다.

그리고 졌다.

화면에는 신 씨의 이름이 떠 있었다.

신 씨: 피곤해.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짧다.

너무 짧다.

하지만 이 짧은 메시지가 너무나도 신 씨답다.

나는 답장했다.

나: 오늘도 밖이십니까?

잠시 후 답장.

신 씨: 응.

역시 아침부터 옆집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나더니, 지금은 집에 없는 모양이었다.

어제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갔는데 더 조심해야 하지 않나. 회사든 스튜디오든 회의든, 적어도 오늘 하루쯤은 밖에 나오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답장을 입력했다.

나: 어제 일도 있었으니 오늘은 가능하면 밖에 나오지 않는 게 좋습니다.

보내자마자 답이 왔다.

신 씨: 여기 라면 없어.

나는 모니터 앞에서 멈췄다.

이 사람은 정말.

정말.

나는 천천히 답장했다.

나: 라면이 없는 곳은 대체로 정상적인 업무 공간입니다.

신 씨: 배고파.

나: 식사하셔야죠.

신 씨: 초코우유.

나: 초코우유는 식사가 아닙니다.

신 씨: 도윤 잔소리.

나는 손가락을 멈췄다.

어제도 이랬다.

인터넷에 사진이 퍼지고, 댓글은 더러웠고, 사람들은 확실한 증거도 없이 SHINHWI라는 이름을 씹어댔다. 그 와중에 신 씨는 라면을 찾았다. 계란도 요구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일 먹을 라면이 있느냐고 물었다.

약속. 내일도 계속되기 위한 것.

그 말을 들은 뒤로, 나는 신 씨의 짧은 메시지를 그대로만 읽을 수 없게 되었다.

피곤해. 배고파. 라면 없어.

이게 정말 단순한 불평인지, 아니면 불안하다는 신호인지 모르겠다.

오전 11시 03분.

다시 메시지가 왔다.

신 씨: 도망가고 싶어.

나는 의자에서 거의 일어날 뻔했다.

옆자리 박 대리가 내 쪽을 흘끗 보았다.

“왜요?”

“아닙니다.”

“아닌 얼굴이 아닌데요.”

나는 휴대폰을 다시 봤다.

도망가고 싶어.

그 네 단어가 이상하게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는 빠르게 답장했다.

나: 어디십니까?

답장은 바로 오지 않았다.

나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1분. 2분. 3분.

답장이 없었다.

그 짧은 시간이 길었다.

어제 인터넷 사진이 떠올랐다. 검은 정장, 큰 선글라스, 얼굴을 가린 신 씨. 길 건너편에서 빛나던 휴대폰 카메라. 댓글들. 저속한 추측들. SHINHWI라는 이름을 끌고 와 남의 몸과 사생활을 아무렇게나 더럽히던 말들.

혹시 또 뭔가 올라온 건가.

누가 알아본 건가.

아니, 알아본다는 표현도 이상하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안했다.

나는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신 씨, 오늘은 진짜 회사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어제 사진도 있었으니까요. 사람 많은 곳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신 씨: 회사 아니야.

나는 멈췄다.

집도, 회사도 아니면 이 시간에 어디에 있는 건가.

나: 그럼 어디십니까?

신 씨: 비슷한 거.

나는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따라 그 말이 더 답답했다.

비슷한 거.

회사도 비슷한 거. 음악도 비슷한 거. 출근도 비슷한 거. NOVA LINE MUSIC 근처도 비슷한 거.

도대체 뭐가 비슷하다는 건데.

나는 답장을 쓰려다가 지웠다.

화내면 안 된다.

신 씨는 설명을 대충하는 사람이다. 길게 말하는 게 귀찮아서. 설명하면 더 복잡해져서. 어쩌면 말할 수 없어서.

나는 천천히 다시 썼다.

나: 그럼 그 비슷한 곳 안에 계세요. 오늘은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잠시 후.

신 씨: 라면?

나는 눈을 감았다.

나: 라면은 퇴근 뒤에 생각합시다.

신 씨: 치사해.

나는 답장하지 않았다.

그때 박 대리가 의자를 조금 당겼다.

“서도윤 씨.”

“네.”

“또 옆집 분이에요?”

나는 휴대폰을 엎었다.

“네.”

“어제 그 게시글 이야기인가요?”

“네.”

박 대리는 낮게 한숨을 쉬었다.

“그분 괜찮대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괜찮냐.

신 씨에게 그 말은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았다.

괜찮아? 배고파. 상처받았어? 라면. 약속. 내일 거 있어?

그녀는 자기 상태를 그렇게 말한다.

사람이 묻는 감정의 언어와, 신 씨가 내놓는 생존의 언어가 계속 어긋난다.

“잘 모르겠습니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근데 오늘도 밖에 있는 것 같아서요.”

“그럼 진짜 조심해야겠네요.”

“네.”

“게시글은 일단 몇 개 내려갔어요. 그런데 캡처본이 다른 데로 돌고 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예상했다.

인터넷의 더러운 말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동한다.

게시글이 지워져도 누군가는 캡처했고, 누군가는 다른 제목을 붙였고, 누군가는 더 자극적인 말을 덧붙인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점점 중요하지 않아진다. 그냥 그런 말이 돌고 있다는 사실만 남는다.

나는 모니터를 보았다.

일해야 했다.

일은 나를 붙잡아주는 가장 평범한 핑계였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오후 내내 신 씨의 메시지는 드문드문 왔다.

신 씨: 회의 길어.

나는 답장했다.

나: 식사는 하셨습니까?

신 씨: 초코우유.

나: 그건 식사가 아닙니다.

신 씨: 맛있어.

나: 맛과 식사는 다릅니다. 식사를 하세요.

신 씨: 귀찮아.

오후 2시 41분.

신 씨: 사람 많아.

나: 가능하면 조용한 곳에 계세요.

신 씨: 조용한 곳 없어.

오후 3시 26분.

신 씨: 도윤.

나: 네.

신 씨: 퇴근 언제.

나는 시계를 봤다.

아직 두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

나: 6시쯤입니다.

신 씨: 늦네.

나: 직장인은 원래 그렇습니다.

신 씨: 불쌍하네.

나는 잠깐 웃을 뻔했다.

불쌍한 건 내가 아니라 당신 아닙니까.

회의가 길고, 라면이 없고, 사람 많고, 도망가고 싶다면서.

하지만 신 씨는 그런 식이다.

자기 불편함을 말하다가도, 남을 먼저 불쌍하다고 한다. 진심인지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그리고 퇴근 직전.

5시 47분.

메시지가 왔다.

신 씨: 도윤 이야기 나와.

나는 그 문장을 한참 들여다봤다.

도윤 이야기 나와.

나는 금방 그 말이 무엇인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도윤? 나? 이야기가 나온다고?

어디에서? 신 씨의 회사에서?

왜?

나는 입력창을 열었다.

나: 무슨 뜻입니까?

보내려던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나는 멈췄다.

업무 시간 끝나기 직전의 모르는 번호.

가장 받기 싫은 조합이었다.

하지만 화면 위에는 방금 신 씨가 보낸 메시지가 떠 있었다.

도윤 이야기 나와.

나는 스팸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에 전화를 받았다.

“네, 서도윤입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낮고 차분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서도윤 씨 맞으십니까?”

“네. 누구시죠?”

“저는 NOVA LINE MUSIC의 한유경입니다.”

나는 그대로 굳었다.

NOVA LINE MUSIC.

한유경.

어디에서 들어봤다.

아니, 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신 씨의 입에서 유경이라는 이름을 들었다.

그리고…… NOVA LINE MUSIC의 한유경이라면, 내가 떠올리는 그 사람이라면.

공식 영상이나 현장 후기, 인터뷰 주변부에서 몇 번 언급된 사람. SHINHWI의 매니저로 알려진 인물. 냉정하고 일 잘하고, 팬들 사이에서는 ‘신휘보다 신휘를 더 잘 관리하는 사람’처럼 농담 섞여 이야기되던 사람.

그 한유경이.

왜.

왜?

“……네?”

나는 바보 같은 소리를 냈다.

전화 너머의 한유경은 아주 침착했다.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서도윤 씨의 연락처와 기본적인 상황은 함께 계셨던 당사 소속 아티스트에게 전달받았습니다. 어제부터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에 서도윤 씨가 함께 노출된 정황이 확인되어 연락드렸습니다. 다시 한 번 서도윤 씨 본인의 동의를 먼저 구하지 못한 점 사과드립니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

그 표현이 이상하게 귀에 박혔다.

SHINHWI라고 하지 않았다.

신휘라고도 하지 않았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

나는 그 표현에 매달렸다.

그래.

NOVA LINE MUSIC에는 SHINHWI만 있는 게 아니다.

다른 아티스트도 있다. 신 씨가 그중 하나와 관련된 스태프일 수도 있다. 혹은 신 씨 자신이 다른 아티스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연습생일 수도 있고, 작곡가일 수도 있고, 세션일 수도 있고, 그냥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같은 회의에 있던 사람일 수도 있다.

한유경이 SHINHWI 매니저로 알려졌다고 해서, 평생 SHINHWI 한 명만 관리한다는 법도 없다. 회사 내에 SHINHWI만 담당하고 있다는 법도 없다.

그렇다.

너무 당연하다.

나는 내 정신이 필사적으로 찾은 출구가 꽤 그럴듯해서, 조금 안심했다.

“네…… 그런데 왜 저에게…….”

“먼저, 저희 일에 휘말리게 해드린 점 사과드립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정중했다.

하지만 감정적이지 않았다.

일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현재 온라인에 게시된 사진은 당사에서도 확인했고, 해당 게시물 및 악성 댓글에 대한 채증을 진행 중입니다. 다만 사진에 서도윤 씨가 함께 노출되어 있어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재직 중이신 회사가 근처라고 들었습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오늘 퇴근 후 잠시 당사로 방문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요?”

“네.”

“어…… 저는 그냥 그분이랑 점심을 먹었을 뿐인데요.”

“알고 있습니다.”

알고 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더 무서웠다.

“서도윤 씨께 책임을 묻기 위한 자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당사 아티스트의 사생활과 일반인인 서도윤 씨의 신상 보호를 위해, 당시 상황과 게시물 확산 경로를 확인하려는 절차입니다.”

일반인인 서도윤 씨.

그 표현은 조금 현실적이었다.

나는 일반인이다.

그렇다.

나는 SHINHWI와 관련될 일이 없는 사람이다.

그저 옆집 신 씨에게 라면을 끓여주고, 분리수거를 알려주고, 자기 키만 한 SHINHWI 다키마쿠라 상자를 들킨 일반인이다.

아니, 마지막 건 일반적이지 않다.

“혹시 방문이 어려우시면 다른 방식으로도 가능하지만, 직접 뵙고 설명드리는 편이 서도윤 씨에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전화 너머의 한유경은 침착했다.

나는 모니터를 보았다.

퇴근 10분 전.

박 대리가 내 쪽을 보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나는 결국 말했다.

“퇴근 후 방문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착하시면 1층 안내 데스크에서 성함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네.”

“그리고 서도윤 씨.”

“네.”

“오늘 통화 내용이나 당사 방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온라인이나 언론에 공유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곧 뵙겠습니다.”

전화가 끊겼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다보았다.

화면에는 다시 신 씨의 메시지가 떠 있었다.

신 씨: 도윤 이야기 나와.

이제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내 이야기가 나왔다.

NOVA LINE MUSIC에서.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 때문에.

나는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박 대리가 물었다.

“어디서 전화예요?”

나는 그를 봤다.

말해도 되나.

외부에 공유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박 대리는 이미 게시글 캡처를 도와줬고, 사진 속에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도 회사 안에서 크게 말할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목소리를 낮췄다.

“사진 관련해서 그쪽 회사에 잠깐 다녀오라고 합니다.”

“그쪽이라면…….”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 대리의 표정이 굳었다.

“진짜요?”

“네.”

“뭐래요?”

“퇴근 후 잠깐 방문해달라고 합니다.”

“진짜요?”

“네.”

“괜찮겠어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괜찮을 리 없다.

NOVA LINE MUSIC.

SHINHWI의 소속사.

그곳에서 한유경이 전화를 했다.

한유경.

SHINHWI의 매니저로 팬덤에 알려진 사람.

그리고 그곳에는 아마 신 씨가 있다.

아니다.

아마가 아니다.

신 씨가 내게 말했다.

도윤 이야기 나와.

그러니까 신 씨는 그곳에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직 확정은 아니다.

NOVA LINE MUSIC에는 여러 사람이 있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썼다.

SHINHWI라고 하지 않았다.

신휘라고 하지 않았다.

그 표현은 중요하다.

나는 그 마지막 줄을 꽉 붙잡았다.

“확인만 하고 오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박 대리는 나를 보았다.

“서도윤 씨.”

“네.”

“지금 표정이 확인만 하고 올 사람 표정이 아닌데요.”

“그럼 어떤 표정입니까?”

“인생의 장르가 바뀌는 걸 감지한 사람 표정이요.”

“그런 일 없습니다.”

“두 번 말하면 더 수상합니다.”

나는 가방을 들었다.

“일단 다녀오겠습니다.”

박 대리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요.”

“네.”

“그리고 이상한 서류에 사인하지 말고요.”

“제가 어린애입니까?”

“요즘 서도윤 씨 상황을 보면 좀 걱정됩니다.”

반박하기 어려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왔다.


퇴근길의 NOVA LINE MUSIC은 생각보다 가까웠다.

물리적으로는 원래도 가까웠다.

교차로 횡단보도 건너 맞은편이니 회사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그런데 오늘은 그 거리가 이상하게 길었다.

나는 걷는 내내 머릿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확정된 건 없다.

신 씨가 SHINHWI라는 증거는 없다.

그저 NOVA LINE MUSIC에 간다. 한유경이라는 사람이 나온다. 신 씨가 그곳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사진 때문에 몇 가지 확인을 한다.

그뿐이다.

그뿐이어야 한다.

유리 외벽이 보였다.

NOVA LINE MUSIC.

로고가 저녁빛을 받아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팬으로서 나는 이 건물을 몇 번이나 사진으로 봤다.

SHINHWI가 이 건물에 들어가는 공식 사진. 컴백 회의 목격담. 팬들이 주변에서 찍은 외관. 음악 방송 출근길 영상에 잠깐 비친 로비.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앞에 서니, 느낌이 달랐다.

이곳은 팬심의 대상이 아니라 회사였다.

사람들이 출입증을 찍고 지나가고, 안내 데스크 직원이 전화를 받고, 경비 직원이 사람들을 확인하는 공간.

나는 자동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들어가도 되나.

당연히 된다.

초대받았다.

그런데 몸이 망설였다.

마치 무대 뒤로 잘못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팬이 들어가면 안 되는 곳.

나는 심호흡을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이름을 말했다.

“서도윤입니다. 한유경 매니저님과 약속이 있습니다.”

직원은 바로 확인했다.

잠시 후, 엘리베이터 쪽에서 한 여성이 걸어왔다.

정말이다. 진짜다. 사진으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깔끔한 정장. 단정하게 묶은 머리. 냉정해 보이지만 무례하지 않은 표정. 눈매는 정확했고, 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한유경.

SHINHWI의 매니저.

그녀가 내 앞에 섰다.

“서도윤 씨?”

“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유경입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갑작스럽게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녀는 나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나는 따라가며 마음속으로 다시 말했다.

NOVA LINE은 회사다.

연예기획사인 회사는 당연히 여러 아티스트를 동시에 관리한다.

신 씨가 SHINHWI일 이유가 없다.

아니, SHINHWI일 필요가 없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한유경의 침묵이 더 무서웠다.

친분이 없는, 처음 보는 사이니 당연한 침묵일 텐데.

몇 층인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문이 열렸고, 그녀는 복도 안쪽 회의실로 나를 안내했다.

유리벽 너머로 여러 회의실이 보였다.

사람들이 노트북을 펴고 있었다. 누군가는 전화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료를 나눠보고 있었다. 벽에는 방음 처리가 된 문도 있었고, 멀리 스튜디오처럼 보이는 공간도 있었다.

음악 회사.

정말 음악 회사였다.

그 안쪽 회의실 하나 앞에서 한유경이 멈췄다.

“들어가시죠.”

문이 열렸다.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멈췄다.

신 씨가 있었다.

회의실 안쪽 의자에 앉아 있었다.

커다란 검은 후드티를 입고, 테이블 위에는 초코우유가 놓여 있었다. 빨대는 이미 꽂혀 있었고, 그녀는 그걸 물고 있었다.

NOVA LINE MUSIC 회의실.

한유경의 안내.

온라인 게시물 확인을 위한 자리.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초코우유를 빨고 있는 신 씨.

나는 잠시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신 씨가 나를 보았다.

“도윤.”

“……신 씨.”

“왔네.”

“네.”

“라면 없어.”

“여기는 라면집이 아닙니다.”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너무 자연스럽게.

그리고 곧바로 후회했다.

한유경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회의실 안에는 다른 남성 직원 한 명도 있었다. 법무팀인지 홍보팀인지 모르겠다. 그는 노트북을 열어둔 채 우리를 조용히 바라봤다.

나는 뒤늦게 자세를 바로 했다.

“죄송합니다.”

한유경은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괜찮습니다. 앉으시죠.”

나는 신 씨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았다.

신 씨는 초코우유를 마셨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이 사람은 어디서나 초코우유를 마신다.

문제는 지금 그 어디서나인 장소다.

NOVA LINE MUSIC 회의실.

SHINHWI 소속사.

SHINHWI 매니저로 알려진 한유경.

그리고 신 씨.

증거가 너무 많다.

아니, 증거라고 하기엔 아직 부족하다.

한유경은 아직 그녀를 신휘라고 부르지 않았다.

SHINHWI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그게 중요하다.

중요하다.

정말 중요하다.

“먼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유경이 말했다.

“어제부터 확산된 온라인 게시물로 인해 서도윤 씨께 불편을 드린 점, 당사를 대표해 사과드립니다.”

“아닙니다. 제가…….”

말하다가 멈췄다.

내가 뭘 했지.

점심을 먹었다. 도시락을 골라줬다. 초코우유를 식사가 아니라고 했다.

그뿐이다.

“저는 그냥 우연히 같이 있었을 뿐이라서요.”

“네. 그렇게 확인하고 있습니다.”

한유경은 노트북 화면을 내 쪽으로 조금 돌렸다.

게시글 캡처본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어제 박 대리가 캡처한 것과 비슷한 화면들. 사진, 댓글, 유포 경로, 게시 시간, 삭제 여부.

“해당 사진은 어제 점심시간, 서도윤 씨 회사 근처 편의점 앞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입니다. 맞습니까?”

“네.”

“사진 속 남성은 서도윤 씨 본인이 맞습니까?”

“……네.”

“사진 속 서도윤 씨는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함께 있었습니다.”

나는 그 문장을 붙잡았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함께 있던 나.

아니, 잠깐.

그건 무슨 뜻이지.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은 신 씨다. 옆집의 생활력 없는 여자.

그리고 나와 함께 있었던 것은 당사 소속 아티스트다. 나는 NOVA LINE MUSIC 소속 아티스트와 개인적인 친분도 없고, 함께 사진을 찍힐 일 또한 없다.

그것이 평일 점심시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이야기는, 신 씨가 당사 소속 아티스트라는 뜻인가? 애매하다.

세상의 언어는 원래 이렇게 애매하게 구성되어 있는 건가.

아니면 내가 현실을 부정하려고 문장에 대한 이해를 포기한 건가.

나는 신 씨를 보았다.

신 씨는 초코우유 빨대를 물고 있었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한유경은 계속 말했다.

“서도윤 씨께 확인드리고 싶은 것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사진 촬영 당시 상황. 둘째, 사진을 촬영한 사람이나 의심되는 동선. 셋째, 이후 온라인에서 서도윤 씨의 신상이 노출될 가능성입니다.”

“네.”

“답변하기 어려운 부분은 말씀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서도윤 씨 역시 일반인 피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범위에서 확인해주시면 저희 대응에 도움이 됩니다.”

일반인 피해자.

나는 그 표현에 다시 붙잡혔다.

나는 일반인이다.

맞다.

여기서 가장 일반인다운 사람은 나다.

아니, 가장 이상한 상황에 놓인 일반인이다.

“점심시간에 편의점 앞에서 신 씨…… 그러니까.”

나는 말끝을 흐렸다.

신 씨라고 불러도 되나?

이곳은 회사 회의실이다.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된 자리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녀를 신 씨라고 부르고 있다.

한유경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편하신 호칭으로 말씀하셔도 됩니다.”

편하신 호칭.

또 애매하다.

신 씨가 진짜 이름인지 아닌지 확인해주지 않는다.

나는 마지막 현실 부정의 끈을 더 단단히 붙잡았다.

그래.

회사 측도 신 씨라고 부르는 걸 막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적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신 씨는 신 씨다.

SHINHWI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신 씨가 편의점 앞에 서 있었습니다. 곤란해 하는 것 같아서…… 제가 들어가서 도시락을 골라드렸습니다.”

신 씨가 그때 끼어들었다.

“메뉴 많았어.”

한유경이 신 씨를 보았다.

“그래서 서도윤 씨가 골라주셨어요?”

“응.”

한유경은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건 한숨에 가까웠다.

“그래도 드셨다니 다행입니다.”

익숙한 반응이었다.

마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사람의 반응.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또 흔들렸다.

한유경과 신 씨.

둘 사이에는 분명 오래된 업무 관계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신 씨가 SHINHWI라는 증거는 아니다.

한유경은 매니저다. 신 씨가 다른 아티스트일 수도 있다. 아니면 작곡가일 수도 있다. NOVA LINE 소속 크리에이터일 수도 있다. 혹은 회사에서 관리해야 하는 특별한 관련자일 수도 있다.

가능성은 많다.

나는 가능성을 최대한 많이 만들었다.

그 가능성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한유경이 물었다.

“당시 사진을 찍은 사람을 보셨습니까?”

“확실하진 않습니다. 다만 편의점에서 나온 뒤, 길 건너편에서 휴대폰 카메라가 반짝이는 걸 봤습니다. 모자를 쓴 사람이었고, 바로 시선을 피했습니다.”

“방향은 기억하십니까?”

나는 기억나는 대로 설명했다.

한유경 옆의 직원이 조용히 타이핑했다.

신 씨는 회의에 참여하는 듯하면서도 반쯤은 다른 곳에 있었다. 초코우유를 마시고, 테이블 모서리를 손끝으로 만지고, 가끔 나를 봤다.

그러다 말했다.

“도윤 긴장했네.”

나는 바로 대답했다.

“당연하죠.”

“왜.”

“여기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회사.”

“신 씨 회사입니까?”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비슷한 거.”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

또 비슷한 거.

이 사람은 정말.

한유경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힘드신 점, 이해합니다. 너무 시간을 뺏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

내게 익숙하지 않은 공간인 것은 맞다.

그때, 익숙하지 않은 회의실 벽면에 붙은 익숙한 작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Velvet Inferno.

정확히는 공식 홍보 포스터가 아니라 내부용 스케줄 보드에 붙은 작은 이미지였다. 붉은 조명, 검은 레이스, 악마 관객, 무대 중앙의 SHINHWI.

나는 눈을 피했다.

피해야 했다.

안 그러면 방구석의 상자가 떠오른다.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Full Set.

자기 키만 한 상자를 들고 와 “기특해?”라고 묻던 신 씨.

배송 라벨을 읽으며 Body Pillow라고 말하던 신 씨.

신혼 기분이냐고 묻던 신 씨.

만약.

만약 정말 신 씨가 SHINHWI라면.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안 된다.

절대 안 된다.

신 씨가 SHINHWI라면, 나는 SHINHWI 본인에게 SHINHWI 성인 인증 한정판 다키마쿠라를 들킨 것이다.

그것도 상자째.

자기 키만 한 상자를 본인이 들고 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빼앗으려 했고, 라면으로 회유했고, 공식과 민망함은 공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안 된다.

그건 인간이 견딜 수 있는 현실이 아니다.

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아니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SHINHWI가 분리수거장에서 “다 쓰레기잖아”라고 말할 리 없다. SHINHWI가 오므라이스를 태워 화재경보기를 울릴 리 없다. SHINHWI가 내 집 식탁에서 라면을 기다리며 초코우유 빨대를 물고 있을 리 없다. SHINHWI가 자기 굿즈 상자를 들고 와 칭찬과 라면을 요구할 리 없다. SHINHWI가 출근길 지하철에서 초코우유를 가방에 넣으라는 잔소리를 들을 리 없다. SHINHWI가 편의점 도시락 뚜껑을 못 열어 내가 뜯어줄 리 없다.

절대.

절대로.

그러니까 신 씨는 아니다.

신 씨는 그냥 신 씨다.

NOVA LINE MUSIC 회의실에 앉아 있지만.

한유경 앞에서 초코우유를 마시고 있지만.

당사 소속 아티스트와 관련된 온라인 게시물의 중심에 있지만.

그래도 아니다.

인간에게는 자기방어 본능이 있다.

나는 그 본능을 최대한 활용했다.

“서도윤 씨?”

한유경의 목소리에 나는 정신을 차렸다.

“네.”

“혹시 어제 게시글을 처음 확인하신 경로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회사 동료가 알려줬습니다. 박정민 대리라고, 점심 때 같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분이 캡처도 도와줬고요.”

“해당 분 연락처를 저희에게 공유하실 수 있습니까? 직접 연락은 서도윤 씨 동의 없이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캡처 원본 확인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확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유경은 정리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녀는 침착했다.

너무 침착했다.

상황을 통제하는 사람의 침착함.

신 씨는 그 옆에서 점점 의자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자세가 점점 낮아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어느새 턱이 테이블 가까이 내려와 있었다. 초코우유는 거의 빈 채 빈 우유팩을 빨아들이는 빨대 소리만 내고 있었다.

한유경이 말했다.

“피곤하시면 휴게실에서 쉬고 계셔도 됩니다.”

신 씨는 고개를 저었다.

“도윤 왔잖아.”

나는 또 멈췄다.

그 말이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이상했다.

도윤 왔잖아.

내가 오면 왜 남아 있어야 하는가.

아니, 신 씨는 그런 사람이다.

설명은 짧고, 이유는 애매하고, 행동은 이상하다.

한유경은 신 씨를 잠깐 보다가 더 말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 고개를 돌렸다.

“서도윤 씨. 마지막으로 확인드리겠습니다. 혹시 해당 사진과 관련해 언론사나 온라인 계정에서 연락을 받은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아직은 없습니다. 그 사진으로 제가 특정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혹시 그런 연락을 받게 되시면 응답하지 마시고 저희 쪽으로 전달해주십시오.”

“저는 그냥 일반인인데요?”

“네. 서도윤 씨 개인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사진 속 인물이 일반인으로 특정될 경우,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일반인.

내가 일반인이라는 주장을 확인받는 것 같아 그 말이 조금 고마웠다.

이 비현실적인 회의실 안에서, 그나마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바닥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서 들으신 내용은 외부에 공유하지 말아주십시오. 회사 동료분께도 필요한 범위 이상은 말씀하지 않으시는 게 좋습니다.”

“네.”

“저희도 서도윤 씨의 개인정보는 내부 필요 인원 외 공유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회의는 생각보다 짧게 끝났다.

한유경은 필요한 것만 묻고, 필요한 것만 설명했다. 감정적 압박은 없었고,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오히려 지나치게 정중해서 더 이상했다.

그리고 신 씨는 마지막까지 초코우유 팩을 손에 들고 있었다.

회의가 끝났을 때, 그녀가 말했다.

“도윤.”

“네.”

“라면.”

나는 한유경을 봤다.

한유경은 아주 미세하게 눈을 감았다 떴다.

그 표정은 마치 ‘또 시작이군요’에 가까웠다.

“지금요?”

내가 물었다.

신 씨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배고파.”

“방금 초코우유 드셨잖아요.”

“그건 음료라며.”

나는 말문이 막혔다.

내가 한 말이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다.

한유경이 조용히 말했다.

“식사는 준비해두었습니다.”

신 씨는 한유경을 보았다.

“라면?”

“아닙니다.”

“배신.”

“영양입니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배신이 영양의 옷을 입었네.”

한유경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오늘은 그 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나는 그 대화를 들으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익숙하다.

너무 익숙하다.

신 씨가 배신이라고 하고, 누군가가 영양입니다 하고 받아치는 구조.

그건 내가 하던 일이었다.

그런데 한유경도 너무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

마치 오래전부터 그 역할을 해온 사람처럼.

나는 다시 현실 부정을 시작했다.

생활력 없는 아티스트는 어디에나 있다.

매니저가 식사 챙기는 일도 흔하다.

NOVA LINE MUSIC에 신 씨 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 사람이 SHINHWI일 필요는 없다.

전혀 없다.

절대 없다.

한유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도윤 씨,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추가로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 있으면 연락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네.”

“그리고 혹시 온라인에서 서도윤 씨 본인으로 추정되는 정보가 올라오면 바로 알려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신 씨가 끼어들었다.

“도윤.”

“네.”

“집 가?”

“네. 저는 퇴근 후라서요.”

“같이?”

나는 굳었다.

한유경이 아주 조용히 신 씨를 보았다.

“오늘은 저희 차량으로 이동하셔야 합니다.”

“왜.”

“어제 사진이 올라왔기 때문입니다.”

“귀찮아.”

“안전입니다.”

신 씨는 나를 보았다.

신 씨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낌새를 느낀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오늘은 안전의 옷, 입으세요.”

말하고 나서 깨달았다.

NOVA LINE MUSIC 회의실에서 내가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

한유경은 나를 한 번 보았다.

그 시선에는 아주 짧은 판단이 지나갔다.

무슨 판단인지는 모르겠다.

신 씨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이었다.

“도윤도 배신.”

“안전입니다.”

“둘 다.”

“신 씨.”

“왜.”

“오늘은 진짜 조심하세요.”

신 씨는 잠깐 나를 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응.”

그 짧은 대답 하나에, 나는 이상하게 안심했다.


한유경은 나를 1층까지 안내했다.

신 씨는 회의실에 남았다.

아니, 정확히는 한유경이 남게 했다.

“식사 후 이동하실 겁니다.”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NOVA LINE MUSIC.

한유경.

신 씨.

초코우유.

당사 소속 아티스트.

그리고 나의 현실 부정, SHINHWI라는 말을 듣지는 못했다는 안도감.

안도감인가?

중간에 이상한 것이 머릿속에 지나간 것 같지만 어쨌든.

엘리베이터가 내려가는 동안, 한유경이 말했다.

“오늘 일로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네.”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괜찮으십니까?”

괜찮냐.

오늘 그 질문을 내가 신 씨에게 몇 번이나 했는데, 이제 내가 듣고 있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 말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당연합니다.”

한유경은 차분했다.

“갑자기 이런 일에 휘말리셨으니까요.”

“그분은…….”

나는 말하다가 멈췄다.

신 씨라고 해야 할까. 당사 소속 아티스트라고 해야 할까. 사진 속 여성이라고 해야 할까.

한유경은 기다렸다.

나는 결국 말했다.

“신 씨는 괜찮습니까?”

한유경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괜찮지 않으실 겁니다.”

그 대답은 정직했다.

“하지만 버티고 계십니다.”

버틴다.

그 단어가 마음에 남았다.

신 씨는 괜찮은 게 아니었다.

버티고 있었다.

라면, 초코우유, 피곤해, 배고파, 도망가고 싶어.

그 짧은 메시지들은 괜찮다는 증거가 아니라 버티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1층 로비였다.

한유경은 내게 명함을 건넸다.

“NOVA LINE MUSIC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부서 팀장 한유경입니다. 급한 일이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주십시오.”

나는 명함을 받았다.

하얀 명함.

검은 글자.

한유경.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역시 SHINHWI 매니저라고 쓰여 있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에 또 안도했다.

이쯤 되면 안도가 아니라 집착이었다.

“감사합니다.”

“저희 쪽에서 서도윤 씨께 불편을 드리는 일은 없도록 최대한 조치하겠습니다.”

“네.”

“그리고.”

한유경은 잠깐 말을 멈췄다.

“저희 아티스트가 서도윤 씨를 신뢰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나는 놀라 그녀를 봤다.

“저를요?”

“네.”

“왜요?”

정말로 물었다.

왜.

라면 때문인가. 분리수거 때문인가. 다키마쿠라 상자 때문인가. 편의점 도시락 뚜껑 때문인가.

신뢰의 근거로 삼기에는 전부 이상했다.

한유경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건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습니까.”

“다만, 그래서 더 조심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은 무거웠다.

신뢰받는다는 건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무언가를 맡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는 명함을 손에 쥐었다.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로비를 나왔다.

자동문이 열렸다.

저녁 공기가 밀려왔다.

나는 건물 밖으로 나와 한참 서 있었다.

NOVA LINE MUSIC 로고가 머리 위에 있었다.

나는 방금 그 안에서 신 씨를 만났다.

초코우유를 빨고 있는 신 씨.

한유경 옆의 신 씨.

회사 사람들이 당사 소속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신 씨.

모든 것이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결국 나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신 씨는 SHINHWI가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신 씨가 SHINHWI라면.

나는 SHINHWI 본인에게 SHINHWI 다키마쿠라 상자를 들켰고, SHINHWI 본인 앞에서 SHINHWI 팬심을 장황하게 설명했고, SHINHWI 본인에게 “포스터 속 SHINHWI님과 라면 먹는 신 씨는 많이 다르다”고 말했으며, SHINHWI 본인에게 SHINHWI 성인용 공식 굿즈의 민망함과 공식성의 공존에 대해 설명한 셈이 된다.

인간은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다.

그러므로 아니다.

나는 그 논리에 도달하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다.

완벽한 논리였다.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는.

나는 휴대폰을 꺼냈다.

신 씨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신 씨: 도윤.

나는 답장했다.

나: 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신 씨: 라면 먹고 싶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정말로.

이 사람은 SHINHWI일 리 없다.

SHINHWI가 이런 타이밍에 라면을 찾을 리 없다.

나는 아주 평온해진 마음으로 답장했다.

나: 오늘은 한유경 씨 말씀 들으세요. 식사 준비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답장이 왔다.

신 씨: 도윤 배신.

나는 걸음을 옮겼다.

나: 영양입니다.

잠시 후.

신 씨: 도윤이 유경의 옷을 입었네.

나는 피식 웃었다.

그리고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오늘 나는 NOVA LINE MUSIC에 다녀왔다. 한유경을 만났다. 신 씨를 회의실에서 봤다. 거의 모든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신 씨는 그냥 신 씨다.

라면을 좋아하고, 초코우유를 마시고, 분리수거를 못 하고, 도망가고 싶다고 말하는 옆집 여자.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믿음은 때때로 진실보다 사람을 살린다.

특히, 진실이 내 사회적 생명을 끝장낼 가능성이 있을 때는 더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