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7
CHAPTER 07: 옆집 여자는 본인 인증을 피한다
라면을 앞에 둔 도윤은 인터넷의 의심을 신 씨에게 직접 묻지만, 그녀는 본인 인증보다 평범한 저녁과 작은 방어선을 택한다.
옆집 여자는 본인 인증을 피한다
나는 라면과 계란과 초코우유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봉투 안에서 라면 봉지가 바스락거렸다.
평소라면 아무 의미 없는 소리였을 것이다. 퇴근길 편의점 봉투에서 라면 소리가 나는 건 한국 직장인의 흔한 저녁 풍경이다. 특별할 것 하나 없다.
그런데 오늘은 그 소리가 이상하게 현실적이었다.
인터넷 게시글. 흐릿한 사진. 댓글. SHINHWI라는 이름을 향한 저속한 조롱. 사진 속의 신 씨. 사진 속의 나.
그 모든 것들이 휴대폰 화면 안에서 들끓고 있는데, 내 손에는 라면과 계란이 들려 있었다.
삶은 가끔 지나치게 우스운 방식으로 균형을 맞춘다.
나는 아파트 계단을 올라가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신 씨: 도착?
나는 답장했다.
나: 거의 다 왔습니다.
곧바로 답장이 왔다.
신 씨: 늦네.
나는 걸음을 멈출 뻔했다.
아니, 이 사람은.
지금 인터넷에 사진이 올라간 상태다. 댓글은 아직도 늘어나고 있다. 누군가 SHINHWI일지도 모른다며 추측하고 있다. 그 와중에 나까지 같이 찍혀 있다.
그런데 늦네.
어쩌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답장했다.
나: 퇴근하고 편의점 들렀습니다.
신 씨: 계란?
나: 샀습니다.
신 씨: 기특해.
나는 휴대폰을 잠깐 내려다봤다.
기특해.
그 짧은 말이 어쩐지 너무 신 씨다워서,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대신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이 사람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알고도 이렇게 말하는 걸까.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걸까.
정말 아무렇지 않은 걸까.
나는 내 집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멈췄다.
신 씨가 내 현관문 옆에 서 있었다.
오늘 낮의 정장 차림은 아니었다. 커다란 회색 후드티에 검은 반바지, 슬리퍼. 머리는 다시 대충 헝클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선글라스도 마스크도 없었다.
대신 손에는 초코우유가 있었다.
언제나처럼.
“도윤.”
“네.”
“라면.”
“인사보다 라면이 먼저입니까?”
“응.”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초코우유 빨대를 빠는 쪽 소리가 났다.
나는 잠깐 눈을 감았다.
“신 씨.”
“왜.”
“일단 들어오세요.”
“응.”
신 씨는 내 집에 들어왔다.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졌다.
이건 문제가 있다.
사람은 환경에 적응한다. 처음에는 옆집 여자가 내 집에 들어와 라면을 먹는 상황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봉투에서 라면을 꺼내고 냄비를 찾고 있었다.
이것도 인간 문명의 어두운 일면일까.
아니면 정말 누군가를 위한 급식소의 개업일까.
나는 냄비에 물을 받았다.
신 씨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방구석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어제의 상자가 서 있었다.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Full Set.
나는 바로 말했다.
“상자는 안 됩니다.”
“아직 말 안 했어.”
“눈이 말했습니다.”
“열었어?”
“안 열었습니다.”
“왜.”
“신 씨가 계속 보려고 할 것 같아서요.”
“보면 안 돼?”
“그래서 안 열었습니다.”
신 씨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초코우유를 마셨다.
“불쌍해.”
“누가요?”
“베개.”
“베개를 불쌍해하지 마세요.”
“상자 안에 계속 있잖아.”
“그 상태가 가장 평화롭습니다.”
“도윤 배신.”
“안전입니다.”
“배신이 안전의 옷을 입었네.”
“오늘은 그 옷이 필요합니다.”
나는 라면 물을 올렸다.
물이 끓는 동안, 말해야 했다.
인터넷 사진.
댓글.
신 씨 괜찮냐는 말.
그런데 입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신 씨는 평소와 다를 바 없어 보였다. 후드티 소매에 손을 반쯤 숨기고, 초코우유 빨대를 물고, 식탁에 턱을 괴고 있었다. 눈은 조금 졸려 보였고, 표정은 무심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 사람처럼.
하지만 나는 이제 그 표정을 그대로 믿을 수 없었다.
점심때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들이 나를 말해. 내가 있는데.
“신 씨.”
내가 불렀다.
“응.”
이제는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라면을 먹으러 온 옆집 사람이 인터넷에서 상처받는 걸 외면할 취미는 없었다.
“오늘……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 보셨습니까?”
신 씨는 초코우유를 마시던 손을 멈췄다.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이었다.
“봤어.”
그녀가 말했다.
목소리는 평소와 같았다.
짧고, 낮고, 담담했다.
나는 냄비 앞에서 멈췄다.
“언제요?”
“아까.”
“누가 알려줬습니까?”
“유경이.”
또 유경.
나는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이번에는 친구라고 넘기기 어려웠다. 모바일 교통카드 등록, 초코우유 크기 관리, 회의, 그리고 인터넷 사진 공유.
동선을 생각해보면 회사에도 함께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정체가 뭘까.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괜찮으십니까?”
내가 물었다.
신 씨는 나를 보았다.
“라면? 불었어?”
“아직 안 넣었습니다. 그러니까 라면 말고요.”
“라면 괜찮아.”
“신 씨.”
나는 조금 강하게 불렀다.
그녀가 눈을 깜빡였다.
“댓글도 보셨습니까?”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은 대답과 비슷했다.
나는 물이 끓기 시작하는 소리를 들었다.
보글보글.
스프를 넣어야 했다.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왜 안 넣어?”
신 씨가 물었다.
“신 씨.”
“응.”
“정말 괜찮으십니까?”
그녀는 잠깐 나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배고파.”
나는 눈을 감았다.
“그건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배고픈 것도 상태의 이름이야.”
“상태는 맞지만, 제가 묻는 건 그게 아닙니다. 인간은 한 가지 상태만을 가지는 게임 캐릭터가 아닙니다.”
“배고프면 상태 이상?”
나는 냄비 앞에서 돌아섰다.
신 씨는 식탁에 앉아 있었다. 후드티 차림에 슬리퍼. 초코우유. 라면을 기다리는 사람.
그런데 낮에는 큰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얼굴을 가린 그녀를 두고 온갖 저속한 말들이 달렸다.
“상처받았을까 봐요.”
내가 말했다.
신 씨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정확히 어떤 표정인지는 모르겠다.
놀람인지, 불편함인지, 어색함인지.
아마 전부 조금씩이었다.
“저는 남자라서 정확히는 모릅니다. 저런 댓글이 어떤 식으로 닿는지, 어떤 식으로 기분 나쁜지, 어떤 식으로 남는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나는 말을 고르며 이어갔다.
나 역시 이런 일에 노출된 경험이 없는 일반인이다. 하지만 나는 적어도 입에 담기 힘든 저속한 조롱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저 흐릿한 사진 하나만으로. 누군지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면서.
흥미와 재미를 위해 저속한 조롱의 대상이 된 사람은 눈앞의 여자였다. 스스로 요리만 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아무 해도 끼칠 것 같지 않은 사람.
“그런데…… 싫었습니다. 사진 속 사람이 누군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추측만으로, 재미삼아 가장 더러운 말을 가져다 붙이는 게. 그게 너무…….”
나는 말을 멈췄다.
적당한 단어가 없었다.
더럽다.
그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신 씨는 초코우유를 내려놓았다.
“도윤도 봤네.”
“봤습니다.”
“많이?”
“……많이는 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봤습니다.”
“왜.”
“걱정돼서요.”
“나?”
“네.”
“도윤도 찍혔잖아.”
“저를 알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관심의 대상도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그녀는 시선을 조금 내렸다.
“미안.”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네?”
“도윤 찍혔어.”
“그건 신 씨가 미안해할 일이 아닙니다.”
“나랑 있어서.”
“같이 점심 먹은 게 잘못입니까?”
“귀찮아졌잖아.”
“인터넷 사람들이 귀찮게 만든 거지, 신 씨가 만든 게 아닙니다.”
신 씨는 내 말을 듣고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깐 손가락으로 초코우유 팩 모서리를 눌렀다. 종이팩이 조금 찌그러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런 말 해도.”
“네.”
“귀찮은 건 생겨.”
그건 맞았다.
정확했다.
아무리 잘못이 없다고 해도, 귀찮은 일은 생긴다.
상처도 생긴다.
피해도 생긴다.
세상은 종종 그 둘을 구분하지 않는다.
“그렇죠.”
나는 인정했다.
“하지만 그게 신 씨 잘못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신 씨는 나를 보았다.
“도윤은 가끔 맞는 말 해.”
“오늘은 자주 하고 싶습니다.”
“부담.”
“그럼 적당히 하겠습니다.”
“응.”
그녀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냄비 쪽으로 돌아갔다.
물이 이미 끓고 있었다.
“스프 넣습니다.”
“응.”
“면도 넣습니다.”
“응.”
“계란도 넣습니다.”
“기특해.”
“이 상황에서 칭찬 기준은 여전히 낮군요.”
“낮으면 좋아.”
라면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냄새는 이상하게 사람을 붙잡았다.
인터넷 댓글도, 흐릿한 사진도, 특정되지 않았다는 안도와 분노도 잠깐 멀어졌다. 적어도 냄비 앞에서는 면이 불지 않게 익어야 한다.
면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인간관계와 달리, 라면은 타이밍이 분명하다.
나는 젓가락으로 면을 풀었다.
“그런데 신 씨.”
“응.”
“댓글에서 사람들이 SHINHWI라고 추측하던데요.”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신 씨가 아니라면, 아니라고 말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사진 속 사람이 SHINHWI가 아니라고. 혹은 그냥 일반인이라고.”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누구한테?”
“인터넷에요.”
“왜.”
“왜라니요. 오해를 줄이려고요.”
“줄어?”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신 씨가 나를 봤다.
“아니라고 하면 믿어?”
“……아마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죠.”
“얼굴 보여주면?”
“그건 안 됩니다.”
내 대답은 생각보다 빨랐다.
신 씨가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왜.”
“그건 더 위험합니다.”
“본인 인증.”
나는 그 단어에 멈췄다.
본인 인증.
인터넷은 늘 그것을 요구한다.
의심받는 사람이 직접 나오라고 한다. 얼굴을 보여주라고 한다. 아니라고 증명하라고 한다. 맞으면 맞다고 인정하라고 한다. 침묵하면 인정이라고 하고, 해명하면 변명이라고 하고, 증명하면 또 다른 증명을 요구한다.
신 씨는 짧게 말했다.
“내가 나인 걸 왜 계속 증명해야 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초코우유 빨대를 손끝으로 만지며 덧붙였다.
“아니면 아닌 걸 증명해야 하고. 맞으면 맞는 걸 증명해야 하고. 얼굴 보여주면 얼굴 얘기하고. 안 보여주면 숨는다고 하고.”
그녀의 목소리는 높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낮고 담담했다.
그래서 더 오래 들렸다.
“끝이 없어.”
라면 냄비가 끓었다.
나는 불을 조금 줄였다.
“그럼 안 하셔도 됩니다.”
내가 말했다.
신 씨가 나를 봤다.
“응?”
“본인 인증이요. 안 하셔도 됩니다.”
나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내가 어떤 결정을 했는지 알았다.
나는 궁금했다.
정말 궁금했다.
신 씨가 SHINHWI인지 아닌지.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했다. NOVA LINE MUSIC 근처. 정체 모를 유경이라는 사람. 얼굴을 가리는 태도. 음악과 비슷한 일. SHINHWI 이야기에 대한 이상한 반응. 그리고 인터넷의 사람들도 알아보려 할 정도의 분위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팬으로서도.
이웃으로서도.
한 사람으로서도.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궁금증을 충족시키기 위해 신 씨에게 뭔가를 증명하라고 말하는 건 아니었다.
그건 인터넷의 사람들과 같은 줄에 서는 것 같았다.
“증명하지 마세요.”
나는 말했다.
“저한테도요.”
신 씨는 말없이 나를 봤다.
“신 씨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시면 됩니다. 아니면 안 하셔도 됩니다. 적어도 저는…….”
나는 잠깐 말을 골랐다.
“사진 속 사람이 누구인지보다, 지금 라면 기다리는 사람이 괜찮은지가 먼저입니다.”
신 씨는 아주 오래 말이 없었다.
오래라고 해봐야 몇 초였을 것이다.
하지만 냄비 앞에서는 꽤 긴 시간이었다.
라면은 그런 분위기를 모른 채 익어갔다.
신 씨가 말했다.
“도윤.”
“네.”
“그 말은 좀 위험해.”
“위험합니까?”
“응.”
“왜요?”
“좋아서.”
나는 손에 든 젓가락을 떨어뜨릴 뻔했다.
“네?”
신 씨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었다.
“좋은 말은 위험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다시 초코우유를 들었다.
“감정 보류.”
“무슨 감정을 보류하시는 건데요?”
“몰라.”
“모르는 걸 보류하십니까?”
“모르니까.”
“감정이 무슨 검토 자료입니까?”
“비슷한 거.”
정말이지.
이 사람은.
계란은 반숙에 가깝게 익었다. 치즈는 넣지 않았다. 오늘은 깔끔한 라면이 나을 것 같았다.
나는 라면을 두 그릇에 나눠 담았다.
계란이 든 그릇을 신 씨 앞에 내려놓았다.
신 씨의 눈이 아주 조금 밝아졌다.
“라면.”
“네. 라면입니다.”
“계란.”
“넣었습니다.”
“기특해.”
“오늘 세 번째입니다.”
“세고 있어?”
“신 씨 때문에 별걸 다 셉니다.”
그녀는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면을 집었다.
나는 맞은편에 앉았다.
한동안 우리는 말없이 라면을 먹었다.
신 씨가 먼저 먹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 식힌 면을 천천히 먹었다.
신 씨는 생각보다 배가 고팠던 모양이다. 초반에는 평소보다 속도가 빨랐다. 하지만 중간쯤부터 조금 느려졌다. 젓가락이 멈추는 시간이 길어졌다.
“신 씨.”
“응.”
“정말 괜찮은지 모르겠으면, 괜찮은 척 안 하셔도 됩니다.”
그녀가 나를 봤다.
“괜찮은 척 아니야.”
“그럼요?”
“라면 먹는 중이야.”
“그건 그냥 지금 행동입니다.”
“배고프면 먹어야 해.”
“그건 생존입니다.”
“울면 배고파.”
나는 말을 잃었다.
그녀는 담담하게 면을 먹었다.
울면 배고프다.
그 말은 우스웠고, 동시에 전혀 우습지 않았다.
“신 씨는…….”
나는 말하다가 멈췄다.
너무 많은 질문이 있었다.
지금까지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까? 상처받을 때마다 밥을 먹었습니까? 혹시 오늘도 울었습니까? 정말 괜찮습니까?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하지만 어느 질문도 지금 묻기에 맞지 않았다.
나는 대신 말했다.
“천천히 드세요.”
“응.”
“국물 뜨겁습니다.”
“응.”
“초코우유는 라면 다 드신 뒤에 드세요.”
“배신.”
“위장입니다.”
“배신이 위장의 옷을 입었네.”
“오늘은 몸 안쪽도 챙기셔야 합니다.”
신 씨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초코우유를 내려놓았다.
그 작은 행동이, 이상하게 안도감을 줬다.
식사가 끝난 뒤, 신 씨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한참 가만히 있었다.
나는 그릇을 치우려다 멈췄다.
“더 드십니까?”
“아니.”
“그럼 치우겠습니다.”
“도윤.”
“네.”
“댓글.”
나는 움직임을 멈췄다.
신 씨는 식탁 위를 보며 말했다.
“다 지울 수 있을까?”
“아마 다는 못 지울 겁니다.”
“그렇지.”
그녀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댓글들 캡처는 박 대리님이 해두셨습니다.”
“박 대리?”
“회사 동료입니다. 오늘 점심에 같이 있던 분요.”
“아.”
“그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도윤이 믿어?”
“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그럼 믿을래.”
나는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쉽게?
내가 믿는다는 이유로?
그건 너무 가볍고, 너무 무방비했다.
당연히 나는 신 씨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런 감정에 신 씨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옆집 이웃이, 내 집에 와서 라면을 먹고 초코우유를 마시는 이 사람이.
자신이 원하지 않은 모습으로 물어뜯기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것은 내 생각인 것이고, 신 씨와 나는 알게 된 지 불과 며칠 되지 않은 이웃일 뿐이다.
이런 사람을, 인터넷의 사람들은.
나는 다시 화가 치미는 것을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조심하셔야 합니다. 오늘 사진 찍은 사람이 또 찍을 수도 있습니다.”
“응.”
“외출할 때는 가능하면 혼자 다니지 마시고요.”
“귀찮아.”
“안전입니다.”
“도윤도?”
“네?”
“같이 다녀?”
나는 잠깐 멈췄다.
“제가요?”
“혼자 다니지 말라며.”
“…….”
“도윤은?”
나는 대답을 못 했다.
신 씨는 나를 빤히 보았다.
눈은 졸려 보이는데, 질문은 이상하게 피할 수 없었다.
“저는…… 아마도 괜찮을 겁니다.”
“아마도.”
“네.”
대중들에게 나는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일반인이다. 저렇게 찍힌 사진은 부모님께 보여드려도 나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관심도 없는 대상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파고들 사람은 없다.
아마도.
“라면도?”
“그건 확실히 괜찮습니다.”
오늘의 라면은 그 어느 때보다 잘 끓여졌다.
“급식소 괜찮아.”
“급식소가 아닙니다.”
“비슷한 거.”
나는 한숨을 쉬었다.
“신 씨.”
“응.”
“저는 신 씨가 누구인지 아직 모릅니다.”
그녀는 조용히 나를 봤다.
“며칠 전에 알게 된 옆집 사람, 그 이상은 저에게도 말할 필요 없다고 방금 말했습니다.”
“응.”
“그런데 그래도…….”
나는 말을 천천히 했다.
“위험한 일이 생기면 말해주세요. 신 씨가 누구인지와 상관없이요.”
신 씨는 눈을 깜빡였다.
“상관없어?”
“네.”
“SHINHWI라면?”
심장이 세게 뛰었다.
그 이름이, 드디어 그녀의 입에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형이었다.
SHINHWI라면.
나는 숨을 고르고 대답했다.
“네.”
“아니라면?”
“네.”
“왜?”
“같이 라면 먹는 이웃이니까요.”
신 씨는 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거.”
“네?”
“좀 웃기네.”
“웃깁니까?”
“응.”
“나름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짧은 머리카락이 볼 옆으로 내려왔다.
“웃겨.”
그 말이 싫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조금 다행이었다.
신 씨가 웃기다고 말할 수 있다면, 아직 괜찮은 부분이 남아 있는 것 같아서.
“그럼 웃긴 이웃으로 하겠습니다.”
“응.”
“단, 외출은 조심하세요.”
“도윤 잔소리.”
“오늘은 잔소리 좀 하겠습니다.”
“왜.”
“걱정돼서요.”
신 씨는 아주 작게 말했다.
“위험하다니까.”
“뭐가요?”
“그런 말.”
나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그녀는 다시 말했다.
“감정 보류.”
“계속 보류하시네요.”
“응.”
“그 감정, 나중에 이자 붙습니까?”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아마.”
“큰일이군요.”
“도윤 책임.”
“왜 제 책임입니까?”
“좋은 말 했잖아.”
“그럼 앞으로 나쁜 말만 해야 합니까?”
“그건 싫어.”
“어쩌라는 겁니까?”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분명히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고, 오늘 처음으로 제대로 숨을 쉬었다.
신 씨가 돌아간 뒤, 나는 설거지를 했다.
그릇을 헹구고, 냄비를 닦고, 젓가락을 씻었다.
싱크대 물소리가 작게 울렸다.
평범한 소리였다.
그 평범함이 이상하게 귀했다.
휴대폰은 식탁 위에 엎어두었다.
게시글을 다시 확인하지 않으려고.
박 대리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박정민 대리: 캡처 계속 해두고 있습니다. 몇 개는 삭제됐고, 다른 데로 퍼진 것도 있어요. 너무 보지 마세요.
나는 답장했다.
나: 감사합니다. 나중에 정리해서 알려주세요.
보내고 나서 잠깐 망설였다가 덧붙였다.
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곧 답장이 왔다.
박정민 대리: 라면 잘 끓였습니까?
나는 피식 웃었다.
나: 네.
박정민 대리: 그럼 됐습니다. 근데 그분 진짜 뭐 하는 분이에요?
나는 화면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답장했다.
나: 저도 아직 모릅니다.
박 대리는 잠시 후 답했다.
박정민 대리: 그럼 더 조심하세요. 사람을 돕는 건 좋은데, 모르는 사람에게는 모르는 위험도 같이 올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위험은 이미 왔다.
사진 한 장으로.
댓글 몇 줄로.
그리고 내가 사온 라면 하나로, 그 위험은 내 집 식탁까지 들어왔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방구석의 상자가 보였다.
SHINHWI 다키마쿠라.
아직 열지 않은 상자.
어제까지만 해도 그것은 내 사회적 죽음의 상징이었다. 오늘은 조금 달라 보였다.
SHINHWI의 이미지.
공식이 만든, 팬이 산, 성인 인증을 거친, 과감하고 위험한 굿즈.
그리고 인터넷이 멋대로 더럽히는 이미지.
내가 좋아한 것은 어느 쪽일까.
아니, 질문이 틀렸다.
내가 좋아한 SHINHWI는 이미지 하나가 아니라, 그 이미지를 선택하고 통제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사람들은 그 선택과 통제를 빼앗아가려고 했다.
나는 상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안 열어야겠다.”
오늘은 더더욱.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딩동.
나는 몸을 돌렸다.
혹시 신 씨인가.
또 뭘 두고 갔나.
아니면 라면을 더 달라는 건가.
나는 조심스럽게 현관 쪽으로 갔다.
“누구세요?”
문밖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나.”
신 씨였다.
나는 체인을 건 채 문을 조금 열었다.
신 씨는 자기 집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내 문 앞에 서 있었다.
머리는 조금 젖어 있었다.
씻고 나온 모양이었다.
손에는 초코우유가 들려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라면 있어?”
정말로. 이 사람은.
나는 눈을 감았다.
“방금 드셨잖아요.”
“내일 거.”
“내일은 내일 생각하시면 안 됩니까?”
“약속.”
나는 말을 멈췄다.
약속.
그 단어가 너무 작게 나왔다.
마치 내일도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이 이어진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것처럼.
그 말을 한 신 씨는 초코우유 빨대를 만지작거렸다.
“있어?”
나는 잠깐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체인을 풀었다.
“있습니다. 내일 드실 라면 골라 두시겠습니까?”
신 씨는 고개를 조금 끄덕였다.
“기특해.”
나는 문을 열었다.
그녀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오늘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터넷의 댓글도, 사진도, 정체에 대한 의심도.
그리고 괜찮은 척하는 신 씨의 불안도.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라면이 있었다.
그게 우리가 가진 가장 작고 우스운 방어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