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5
CHAPTER 05: 옆집 여자는 회사 근처에 있다
출근길에 헤어진 신 씨가 SHINHWI의 소속사 근처에서 목격되고, 도윤은 회사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사진과 마주한다.
옆집 여자는 회사 근처에 있다
그날 오전, 나는 회사에 지각하지 않았다.
거의 할 뻔했지만,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다.
9시 정각 1분 전.
나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숨은 조금 찼고, 셔츠 목덜미에는 땀이 배어 있었고, 가방끈은 어깨에서 반쯤 흘러내려 있었다. 하지만 지각은 아니다.
직장인에게 1분 전 도착은 승리다.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 박정민 대리가 커피 컵을 들고 나를 봤다.
“서도윤 씨.”
“네.”
“오늘 얼굴이 왜 그래요?”
“정상입니다.”
“정상적인 직장인의 얼굴이 아니라, 출근길에 누군가의 비밀을 봐버린 사람 얼굴인데요.”
나는 순간 손을 멈췄다.
비밀.
봤나?
아니, 보진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
그저 아침부터 옆집 신 씨가 말끔한 정장 차림에 얼굴을 다 가릴 것 같은 큰 선글라스를 쓰고 나왔고, 내 출근길과 계속 같은 방향으로 이동했으며, 같은 지하철을 타고, 같은 역에서 내려, NOVA LINE MUSIC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지는 것을 봤을 뿐이다.
비밀은 아니다.
아마도.
“그냥 좀 뛰어서요.”
박 대리는 내 얼굴을 더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네요.”
“왜 그렇게 판단하십니까?”
“서도윤 씨는 운동 부족이라 조금 뛰면 얼굴이 망하는 게 아니라, 영혼이 잠깐 회사 밖에 남아 있는 얼굴이 됩니다.”
“관찰력이 너무 구체적입니다.”
“옆자리라서요.”
“업무합시다.”
“좋아요. 업무 얘기부터 하죠.”
박 대리는 자기 모니터를 내 쪽으로 조금 돌렸다.
“어제 보낸 자료, 결재선 다시 확인해요. 그리고 오후 세 시에 팀장님 보고. 점심 전까지 표 정리 끝내야 합니다.”
“네.”
“가능하죠?”
“가능합니다.”
“아니면 또 택배 때문에 정신이 흔들립니까?”
나는 커피를 마시려다 멈췄다.
박 대리의 눈이 빛났다.
“어제의 그 중요한 택배, 잘 받으셨어요?”
나는 조용히 컵을 내려놓았다.
“받았습니다.”
“무사히?”
“무사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깨졌어요?”
“깨진 건 물건이 아닙니다.”
“아.”
박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적 생명이군요.”
“왜 맞히십니까?”
“서도윤 씨는 물건이 깨졌으면 이렇게까지 창백하지 않고, 돈 얘기부터 했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속물적으로 보입니까?”
“합리적으로 보여요.”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다.
나는 키보드에 손을 올렸다.
“택배 얘기는 여기까지 하시죠.”
“그럼 마지막 질문 하나만.”
“대리님.”
“알겠어요. 더 안 물어볼게요.”
그가 커피를 마시며 덧붙였다.
“그런데 조심해요.”
“뭘요?”
“요즘 그분 관련해서 인터넷 분위기 안 좋잖아요. 팬이라고 해도 회사에서 너무 티 내면 피곤해질 수 있어요.”
나는 잠깐 침묵했다.
박 대리는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 말의 결은 가볍지 않았다.
맞는 말이었다.
요 며칠 SHINHWI의 이름은 검색어가 아니라 흉기처럼 돌아다녔다. 누가 어디서 그 이름을 꺼내느냐에 따라, 대화는 순식간에 호기심과 조롱과 저속한 추측으로 미끄러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알면 됐어요.”
박 대리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점이 좋았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고, 농담을 좋아하고, 내 사회적 약점을 빠르게 찾아내는 편이지만, 선을 완전히 넘지는 않는다. 나름 신뢰할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는 모니터를 보았다.
엑셀 파일이 열려 있었다.
숫자.
표.
보고서.
직장인의 세계.
여기에는 SHINHWI도, Velvet Inferno 다키마쿠라도, 얼굴을 가린 신 씨도 없다.
없어야 한다.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오전 10시 17분, 무심코 창밖을 봤다가 다시 신 씨를 떠올렸다.
정장 차림. 큰 선글라스. NOVA LINE MUSIC 방향.
“아니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박 대리가 바로 물었다.
“뭐가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아니야, 라고 중얼거리진 않죠.”
“업무합시다.”
“도윤 씨 오늘 정말 수상한데.”
나는 대답하지 않고 표를 정리했다.
세상에는 파고들면 안 되는 생각이 있다.
예를 들어.
옆집에 사는 생활력 제로의 젊은 여자가 사실은 활동 중단 중인 SHINHWI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터무니없다.
말이 안 된다.
그녀가 NOVA LINE MUSIC 방향으로 갔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그 근처에는 스튜디오가 많다. 작은 기획사도 많다. 보컬 레슨실도, 녹음실도, 안무 연습실도 있다.
신 씨는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쪽에 갈 수 있다.
그리고 SHINHWI가 지하철을 탈 리 없다.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손잡이를 잡고, 정장 주머니에 딱 맞는 초코우유를 든 SHINHWI?
없다.
그런 세계는 없다.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아마 이것으로 세 번째.
점심시간이 되자 박 대리가 의자를 밀었다.
“밥 먹죠.”
“네.”
“오늘은 뭘 먹을까요.”
나는 잠깐 생각했다.
회사 근처 식당들은 대부분 붐볐다. 요 며칠 입맛도 별로 없었다. 업무도 밀려 있었다.
“편의점에서 간단히 먹겠습니다.”
“오늘도요?”
“오늘도라니요.”
“서도윤 씨는 간단히 먹겠다고 하고 편의점에 가면, 결국 삼각김밥 하나랑 컵라면 하나를 고릅니다. 그건 간단한 게 아니라 직장인의 패배 선언이에요.”
“그럼 대리님은요?”
“저는 샌드위치와 커피로 패배하겠습니다.”
“둘 다 패배군요.”
“현대 직장인은 점심시간에 주로 집니다.”
우리는 같이 사무실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다른 부서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날씨와 팀장과 주말 근무 가능성에 대한 불길한 소문으로 흘렀다. SHINHWI의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회사 밖으로 나오자 점심시간의 거리 특유의 소음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식당을 향해 걸었고, 누군가는 벌써 커피를 들고 있었다. 자동차 경적과 신호등 알림음과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뒤섞였다.
편의점은 회사 건물에서 두 블록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점심시간에는 붐비지만, 그래도 식당 줄보다는 나았다.
나는 평소처럼 편의점 입구 쪽으로 걸었다.
그리고 멈췄다.
편의점 앞에 신 씨가 서 있었다.
말끔한 정장 차림 그대로.
작은 얼굴을 거의 다 가리는 큰 선글라스도 그대로.
심지어 마스크까지 쓰고 있었다.
그녀는 편의점 자동문 앞에서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돌아가지도 못한 채 어중간하게 서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흘끗 보고 지나갔다. 다들 바빠서 오래 보지는 않았지만, 한 번씩은 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수상했으니까.
검은 정장. 큰 선글라스. 마스크. 그리고 손에 든 초코우유.
아침에 가방에 넣었던 그 작은 팩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방금 산 듯한 일반적인 크기의 초코우유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왜.
왜 여기.
박 대리가 내 옆에서 물었다.
“아는 분?”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옆집 분입니다.”
“아.”
박 대리는 신 씨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엄청 눈에 띄는 옆집 분이네요.”
“그런 편입니다.”
“연예인?”
나는 심장이 한 번 삐끗했다.
“그럴 리 없습니다.”
“그렇게까지 부정할 필요 있나요? 그냥 선과 분위기가 예쁜 분이라는 건데.”
“절대 그럴 리 없습니다.”
“두 번 말하면 더 수상해요.”
나는 대답 대신 신 씨 쪽으로 걸어갔다.
신 씨는 내가 가까이 가자 고개를 돌렸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알아본 건 확실했다.
“도윤.”
“신 씨.”
“응.”
“여기서 뭐 하십니까?”
“밥.”
나는 편의점 문을 봤다.
“들어가서 사시면 됩니다.”
“사람 많아.”
“점심시간이니까요.”
“시끄러워.”
“편의점은 원래 조금 시끄럽습니다.”
“메뉴 많아.”
나는 잠깐 멈췄다.
그건 예상 못 했다.
“메뉴가 많아서 못 들어가시는 겁니까?”
“응.”
“선택지가 많으면 멈추시는 타입이군요.”
“라면도 많아.”
박 대리가 내 뒤에서 아주 조용히 말했다.
“도윤 씨.”
“네.”
“진짜 옆집 분 맞아요?”
“네.”
“말투가 강렬하네요.”
“저도 익숙해지는 중입니다.”
신 씨는 박 대리를 봤다.
“누구?”
박 대리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서도윤 씨 회사 동료입니다. 박정민입니다.”
신 씨는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박 대리는 잠깐 멈췄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응”을 들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나는 이해했다.
나도 처음엔 그랬다.
“신 씨, 일단 들어가시죠. 밖에 서 있으면 더 눈에 띕니다.”
“그래?”
“네.”
“도윤이 골라줘.”
“제가요?”
“응.”
“저는 편의점 직원이 아닙니다.”
“급식소 출장점.”
박 대리가 기침했다.
웃음을 참는 기침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대리님.”
“죄송합니다.”
전혀 죄송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출장점은 아닙니다.”
내가 말했다.
신 씨는 초코우유 빨대를 입에 문 채 나를 봤다.
“근처잖아.”
“근처라고 출장점이 되지는 않습니다.”
“밥 골라주잖아.”
“그건…….”
나는 말문이 막혔다.
틀리지는 않는다.
아니, 틀려야 한다.
“빨대 물고 있는 그거, 계산은 하셨습니까?”
“응.”
“다행입니다.”
“큰 거 사려고 했는데 유경이가 큰 건 안 된댔어.”
“유경이요?”
“응.”
또 유경이.
아침에 모바일 교통카드를 등록해줬다는 사람.
점심에는 초코우유 크기까지 관리하는 사람.
대체 누구지.
친구라기에는 너무 매니저 같다.
아니, 그냥 생활력이 없는 사람에게 친구가 이것저것 해줄 수도 있다.
내 친구들도 내가 프라이팬으로 운석을 연성한다면 도와주지 않을까?
아마도.
“유경 씨가 밥도 먹으라고 하셨습니까?”
“응. 지하 식당에서.”
“그럼 지하 식당으로 가시지 왜 편의점입니까?”
신 씨는 편의점 안쪽을 보았다.
“여기 라면도 있고, 초코우유도 있어. 거기는 없어.”
“일단 초코우유는 식사가 아닙니다.”
“맛있어.”
“그 말 하나로 모든 식생활을 방어하지 마세요.”
박 대리가 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도윤 씨.”
“네.”
“이런 대화가 왜 이렇게 익숙해요?”
“저도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
점심시간답게 사람이 많았다. 직장인들이 도시락 코너 앞에서 빠르게 물건을 집고 있었고, 계산대 앞에는 줄이 길었다. 냉장 진열대에는 샌드위치, 삼각김밥, 샐러드, 도시락, 컵과일, 요거트가 빽빽하게 놓여 있었다.
신 씨는 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많아.”
“선택지가요?”
“응.”
“그럼 제가 고르겠습니다.”
“라면.”
“지하 식당으로 가지 않으셨으면 적어도 밥을 드세요.”
신 씨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배신.”
“배신은 지금 신 씨가 유경 씨에게 저지르고 있는 겁니다.”
“배신이 유경의 옷을 입었네.”
배신이라는 존재는 이젠 정말 아무 옷이나 입고 있다.
“신 씨, 매운 거 드십니까?”
“가끔.”
“김치는요?”
“맛이 시끄러워.”
박 대리가 이번엔 정말 웃음을 참지 못했다.
“맛이 시끄럽다니.”
“대리님.”
“아니, 표현이 좋아서요.”
신 씨는 박 대리를 보았다.
“시끄럽잖아.”
박 대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네요.”
“동의하지 마세요.”
나는 도시락 하나와 샐러드 하나를 집었다. 그리고 고민하다가 삶은 계란 두 개짜리도 골랐다.
신 씨가 물었다.
“많아.”
“많은 게 아니라 균형을 고려한 결정입니다.”
“초코우유 있는데.”
“초코우유는 음료입니다.”
“강한 음료.”
“음료가 강해봤자 음료입니다.”
“라면은?”
“그러니까 라면은 정말 유경 씨에 대한 배신입니다.”
“치사해.”
“영양입니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배신이 영양의 옷을 입었네.”
박 대리가 다시 기침했다.
나는 그를 보지 않았다.
보면 질 것 같았다.
계산대 앞에서 신 씨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검은 카드였다.
정말 검은 카드.
나는 잠깐 그 카드를 봤다.
편의점 도시락과 샐러드를 사기 위해 나올 만한 카드가 아닌 것 같았다.
요즘 카드들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주기 위해 대중적인 카드도 고급 카드처럼 보일 때가 있다.
평생 구경해볼 것 같지 않은 그런 카드를 내 옆집 여자가 꺼낼 리가 없다.
그리고 어쨌든 아무리 봐도 카드는 카드다.
쓸 수 있으면 되는 거다.
계산은 아무 문제없이 됐다.
점원은 신 씨를 한 번 봤다가, 다시 봤다가, 카드와 선글라스와 마스크와 초코우유를 보고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프로였다.
현대 편의점 점원은 많은 것을 보아온 사람들이다.
우리는 편의점 안쪽의 작은 취식 공간으로 갔다.
자리는 두 개밖에 없었다.
박 대리는 자연스럽게 샌드위치와 커피를 들고 한 걸음 물러났다.
“저는 사무실에서 먹을게요.”
“대리님?”
“아니요. 아무래도 저는 빠지는 게 맞는 흐름 같아서요.”
“그런 흐름 아닙니다.”
“도윤 씨는 모르겠지만, 옆에서 보면 꽤 그런 흐름입니다.”
그는 신 씨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신 씨는 도시락 뚜껑을 보며 대답했다.
“응.”
박 대리는 나를 보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나중에 설명.
그리고 사라졌다.
배신자.
아니, 이건 안전거리 확보에 가까웠다.
그래도 배신자다.
신 씨는 도시락 뚜껑을 여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정확히는, 스티커를 어느 쪽에서 떼야 하는지 몰라서 잠깐 멈췄다.
나는 말없이 뜯어주었다.
“기특해.”
“그 칭찬 기준을 조정하셔야 합니다.”
“왜.”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고 기특하면, 인간의 성공 기준이 너무 낮아집니다.”
“낮으면 좋아.”
“좋지 않습니다.”
“힘 덜 들잖아.”
그건 또 묘하게 맞는 말이었다.
신 씨는 도시락을 한 입 먹었다.
잠깐 멈췄다.
“어때요?”
“괜찮아.”
“편의점 도시락입니다.”
“맛 조용해.”
“그건 다행입니다.”
그녀는 마스크를 턱 아래까지 내린 채 먹었다.
선글라스는 벗지 않았다.
실내에서도.
나는 참다 못해 물었다.
“선글라스는 안 벗으십니까?”
신 씨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왜요?”
“얼굴.”
“가리시는 이유가 있습니까?”
“응.”
“사람들이 알아봅니까?”
묻고 나서 스스로 놀랐다.
질문이 너무 직접적이었다.
신 씨는 젓가락을 멈췄다.
편의점의 냉장고 소리, 계산대 바코드 소리, 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이 잠깐 커진 것 같았다.
그녀는 선글라스 너머로 나를 봤다.
“가끔.”
나는 숨을 삼켰다.
가끔.
어떤 의미로?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뜻인가. 일 때문에 얼굴이 알려져 있다는 뜻인가. 동네에서 예쁜 사람이라 눈에 띈다는 뜻인가. 아니면.
아니면?
“음악 쪽 일을 하시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서둘러 말했다.
그럴 수 있다. 특히 요즘은 처음 들어본 인플루언서가 구독자 100만이 넘는다고 하는 시대다.
신 씨를 알아보고 음악을 듣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신 씨는 잠깐 나를 보더니 말했다.
“비슷한 거.”
그 말이 오늘은 조금 다르게 들렸다.
평소처럼 귀찮아서 뭉갠 대답일 수도 있다. 신 씨의 비슷한 거는 비슷하지 않고 늘 의미가 다르다.
나는 선글라스는 포기한 채 도시락을 뜯었다.
“오늘도 그쪽에 가신 겁니까?”
“그쪽?”
“아침에 가신 방향이요.”
“응.”
“NOVA LINE MUSIC 근처라고 하셨죠.”
“응.”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거기서 일하십니까?”
신 씨는 계란을 집었다.
“비슷한 거.”
또다.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싶어졌다.
“그럼 오늘은 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진짜 라면이 없어서요?”
“라면 있어도 나왔어.”
“왜요?”
“사람 많아.”
“거기도요?”
“응.”
“회의 같은 거였습니까?”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샐러드 뚜껑을 열려고 했다.
열리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열어주었다.
그녀는 샐러드를 보며 말했다.
“사람들이 말해.”
“뭘요?”
“나.”
짧은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무겁게 떨어졌다.
신 씨는 샐러드 포크를 손에 든 채 잠깐 멈춰 있었다.
“내가 있는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해야 하는지. 뭘 말하면 안 되는지. 어디까지 보여줘도 되는지. 뭘 숨겨야 하는지.”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이상했다.
“계속 말해.”
나는 도시락을 내려다보았다.
이야기의 맥락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감정은 조금 알 것 같았다.
누군가가 자기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 자리에서 자기 자신이 아니라 안건처럼 취급된다.
그게 얼마나 답답할지, 나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어떤 느낌일지 짐작은 간다.
“싫겠네요.”
나는 말했다.
신 씨가 나를 봤다.
“뭐가?”
“그런 거요. 내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하는 거.”
나는 잠깐 말을 고르다가 덧붙였다.
“그건…… 꽤 기분 나쁠 것 같습니다.”
신 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편의점 냉장고가 웅웅거렸다.
바깥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지나갔다.
신 씨는 아주 잠깐, 선글라스를 벗을 듯 손을 올렸다.
그러다 다시 내렸다.
“도윤은 가끔 맞는 말 해.”
나는 조금 당황했다.
“가끔입니까?”
“응.”
“자주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부담.”
“신 씨의 칭찬은 기준이 낮은 대신 한도가 있군요.”
“응.”
신 씨는 다시 도시락을 먹었다.
그 말이 끝이었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고 싶었다.
신 씨,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왜 다른 사람들은 당신 앞에서 당신을 정하고, 당신은 그 말을 피해 여기까지 나온 겁니까.
하지만 묻지 않았다.
지금 신 씨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점심을 먹게 두는 사람일지도 몰랐다.
나는 무언가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대신, 옆집 신 씨에게 말했다.
“그래도 점심은 드세요.”
“응.”
“회의가 길어도 밥은 드셔야 합니다.”
“도윤 잔소리.”
“건강입니다.”
“배신이 건강의 옷을 입었네.”
“건강은 배신이 아닙니다.”
“가끔은.”
“그건 철학적으로 들어가면 길어집니다.”
“귀찮아.”
“그럼 드세요.”
신 씨는 순순히 도시락을 먹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안심했다.
이 사람의 정체는 모르겠다.
하지만 눈앞의 신 씨는 밥을 먹었다.
편의점 도시락을 조금 느리게, 하지만 제대로.
그것만으로도 오늘의 점심은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식사를 마친 뒤, 신 씨는 빈 도시락 용기를 들고 멈췄다.
나는 직감했다.
“버리는 법 모르시죠.”
“플라스틱?”
“기름 묻었으니까 여기서는 일반쓰레기입니다.”
“어제랑 달라.”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문명 어렵네.”
“맞습니다.”
그녀는 빈 용기를 일반쓰레기통에 넣었다.
나는 작게 박수를 칠 뻔했다.
참았다.
그랬다가는 정말 보호자처럼 보일 것 같았다.
신 씨는 초코우유 팩을 들고 나를 봤다.
“이건?”
“다 안 드셨잖아요. 사무실에서 드신 뒤 씻고 재활용으로 버리세요. 탕비실은 있죠?”
“귀찮아.”
“문명을 포기하지 마세요.”
“출장점은 엄격하네.”
“여기는 출장점이 아닙니다.”
“비슷한 거.”
나는 이제 반박할 힘이 줄어들고 있었다.
편의점 밖으로 나왔을 때, 점심시간 거리는 더 붐볐다.
신 씨는 다시 마스크를 올리고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눈에 띄었다.
가리는 방식이 너무 필사적이라, 오히려 더 보였다.
“돌아가실 수 있습니까?”
내가 물었다.
“응.”
“정말 길 잃은 거 아니죠?”
“아니야.”
“아침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일에 대한 미팅을 하다가 밥을 먹으러 나온 것을 보면 길은 제대로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이건 기특한가?
“얼굴 가린 거야.”
“네. 그건 기억합니다.”
신 씨는 나를 가만히 보았다.
“도윤.”
“네.”
“오늘 여기에서 본 것은 비밀.”
나는 잠깐 굳었다.
“누구에게요?”
“누구든.”
짧은 말이었다.
의미는 모르겠지만, 신 씨는 지금 시간에 편의점에 있었던 것이 알려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 합니다.”
“응.”
“다만, 식사는 하세요.”
“또?”
“또입니다.”
“도윤 잔소리 많아.”
“신 씨 생활력이 너무 없어서 균형을 맞추는 겁니다.”
“상처네.”
“맞는 말이라 더 상처입니까?”
신 씨는 잠깐 나를 보더니 아주 작게 웃었다.
“응.”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그녀는 돌아섰다.
NOVA LINE MUSIC이 있는 방향으로.
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역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걸음은 조용했지만 망설임이 없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얼굴을 가리고, 시선을 피하고, 최대한 작은 움직임으로 걸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 익숙했다.
나는 그 생각을 하자마자 고개를 저었다.
또 시작이다.
그만하자.
나는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점심시간은 길지 않다.
평범한 직장인은 궁금증보다 근태가 우선이다.
나는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그리고 그때, 길 건너편에서 휴대폰 카메라가 아주 짧게 빛났다.
찰칵.
정말 작은 소리였다.
도시 소음에 묻힐 정도로.
하지만 이상하게 귀에 걸렸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길 건너편에는 모자를 쓴 사람이 서 있었다.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그는 곧바로 시선을 피하고 걸음을 옮겼다.
사진?
설마.
나는 잠깐 멈췄다.
하지만 곧 스스로를 설득했다.
점심시간 거리에서 누군가 휴대폰을 들고 있는 건 흔한 일이다. 사진을 찍었다고 해도 풍경일 수도 있고, 음식점 간판일 수도 있고, 친구에게 보낼 길 안내 사진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신 씨는 얼굴을 거의 다 가렸다.
알아볼 수 있을 리 없다.
아니, 신 씨를 찍을 리가 없다. 생각해보면 신기해서 찍었을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허락 없이 다른 사람을 찍다니. 매너가 없는 짓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회사로 돌아왔다.
오후 업무는 이상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다.
편의점에서 들은 신 씨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사람들이 말해. 나. 내가 있는데.
그 말은 너무 짧았다.
짧아서 오히려 오래 남았다.
나는 모니터를 보며 엑셀 셀을 클릭했다. 숫자를 입력했다. 지웠다. 다시 입력했다.
박 대리가 내 쪽을 보았다.
“점심은 잘 드셨어요?”
“네.”
“옆집 분도요?”
나는 그를 봤다.
“대리님.”
“아니, 상당히 독특한 분이던데.”
“그건 맞습니다.”
“도윤 씨랑 친해요?”
“친하다기보다…….”
나는 잠깐 생각했다.
뭐라고 해야 하지.
이웃. 라면을 끓여준 사이. 분리수거를 알려준 사이. 자기 키만 한 SHINHWI 다키마쿠라 상자를 대신 받아온 사이.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골라준 사이.
이 중 어느 것도 회사 동료에게 정상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옆집입니다.”
나는 가장 안전한 답을 골랐다.
박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집인데 급식소 출장점까지 운영하는 사이.”
“들으셨습니까?”
“너무 잘 들렸습니다.”
“잊어주세요.”
“노력해볼게요.”
그는 잠깐 웃다가 말했다.
“그래도 조심해요.”
“뭘요?”
“그분, 눈에 띄어요. 분위기가 닮았잖아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박 대리도 그걸 느꼈다.
얼굴을 거의 다 가리고 있어도 눈에 띈다.
그건 예쁘다거나 수상하다거나 하는 차원을 조금 넘어선 감각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있어도 공간의 시선을 끌어당긴다.
신 씨가 그랬다.
무대 위 SHINHWI도 그랬다.
닮았다, 분위기가.
나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만.
정말 그만.
“네. 조심하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때, 박 대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는 무심코 화면을 봤다.
그리고 표정이 조금 굳었다.
“서도윤 씨.”
“네?”
그는 휴대폰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설마…… 본인 맞아요?”
화면에는 인터넷 게시글 하나가 떠 있었다.
제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목격] SHINHWI 맞죠? 점심시간에 일반인 남자랑 편의점 데이트 목격
내 손끝이 차가워졌다.
게시글에는 사진이 있었다.
화질은 좋지 않았다.
점심시간 거리. 편의점 앞. 큰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검은 정장 차림의 여자. 그리고 그 옆에 선 남자.
나였다.
사진 속 나는 신 씨 쪽으로 몸을 살짝 기울이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 걱정하듯, 혹은 그녀를 가려주려는 듯.
신 씨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댓글은 이미 달리고 있었다.
뭐야 진짜 SHINHWI 아님? 키랑 분위기 비슷한데 활동 중단 중에 남자랑 편의점? 저 남자 누구임? NOVA 근처잖아 여기 선글라스 너무 티 나는데ㅋㅋ
나는 숨을 멈췄다.
박 대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서도윤 씨.”
나는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거…… 아까 그 옆집 분 맞죠?”
맞다.
그건 신 씨였다.
그리고 사진 속의 나는, 도망칠 수 없을 만큼 나였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네.”
“그분이 SHINHWI예요? 닮은 것이 아니라.”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라고 해야 했다.
그럴 리 없다고.
옆집에 사는 생활력 제로의 여자라고.
라면을 먹고, 분리수거를 모르고, 초코우유를 식사로 취급하고, 내 택배 상자를 들고 와 칭찬을 요구하는 사람이라고.
SHINHWI일 리 없다고.
하지만 화면 속 댓글은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신 씨의 얼굴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알아보려 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알아봤다고 믿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신 씨가 얼굴을 가리는 이유.
그녀가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린 거라고 말한 이유.
사람들이 말해. 나. 내가 있는데.
내가 모르는 무언가를, 세상은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모릅니다.”
겨우 그렇게 말했다.
박 대리는 나를 보았다.
“모른다고요?”
“저도…… 모릅니다.”
정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몰랐다.
아니, 몰라야 했다.
그런데 화면 속 사진은 내가 모른다는 말을 비웃듯 떠 있었다.
SHINHWI 맞죠?
나는 그 제목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내 의심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세상이 신 씨를 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