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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4

CHAPTER 04: 옆집 여자는 지하철로 출근한다

도윤은 출근길 지하철에서 수상할 만큼 완벽하게 얼굴을 가린 신 씨와 동행하고, 그녀가 향하는 곳을 목격한다.

옆집 여자는 지하철로 출근한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눈을 뜨자마자 방 구석을 확인했다.

상자는 그대로 있었다.

길고, 크고, 불길하게.

테이프는 뜯지 않았다.

정말이다.

어젯밤의 나는 인류 문명과 내 사회적 생명을 지켰다.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대신 잠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눈은 감았다. 불도 껐다.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상자가 자꾸 잠을 쫓아냈다.

방 안에 사람이 하나 더 서 있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SHINHWI가 상자 안에서 조용히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났다.

출근 준비를 해야 했다.

씻고, 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맸다. 거울 속의 나는 이미 피곤해 보였다. 평소에도 직장인 얼굴이긴 했지만, 오늘은 직장인의 얼굴 중에서도 출근 전부터 퇴근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현관 앞에 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방 구석을 확인했다.

상자는 그대로.

테이프도 그대로.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오늘도 살아남자.”

무슨 전쟁터에 나가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제 나는 옆집 젊은 여성에게 SHINHWI 성인용 공식 다키마쿠라의 존재를 들켰다.

아직 내용물은 들키지 않았다.

그게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굳었다.

옆집 문도 열리고 있었다.

절대 마주칠 리 없는 시간이었다.

신 씨는 기본적으로 아침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녀의 하루는 오후 어딘가에서 대충 시작해 새벽 어딘가에서 흐려지는 구조였다. 밤새 작업하다가 아침에 자고, 점심을 잊고, 저녁쯤 초코우유와 라면으로 생존을 이어가는 타입.

그런 사람이 아침 8시 12분에 현관문을 열고 나왔다.

게다가.

정장 차림이었다.

나는 순간 말을 잃었다.

검은 재킷. 흰 셔츠. 깔끔하게 떨어지는 검은 슬랙스. 얇은 구두. 대충 정리했지만 어쨌든 평소보다는 훨씬 말끔하게 가라앉은 짧은 흑발.

거기에, 작은 얼굴의 절반을 가릴 것 같은 큰 검은 선글라스.

너무 컸다.

진심으로 컸다.

얼굴을 가리기 위한 물건이라기보다 얼굴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물건 같았다.

나는 한참 그녀를 보았다.

“신 씨.”

“응.”

“……면접 보러 가십니까?”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비슷한 거.”

“면접과 비슷한 건 뭡니까?”

“사람 만나.”

“그건 모든 사회생활의 기본입니다.”

“귀찮네.”

그 말투는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차림은 전혀 평소와 같지 않았다.

이질감이 심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후드티와 슬리퍼, 초코우유, 라면, 자기 키만 한 택배 상자 사이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말끔한 정장에 선글라스라니.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아니, 어제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제도 했다.

앞으로도 계속하게 될 것 같다.

신 씨는 내 얼굴을 보았다.

선글라스 때문에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잤어?”

“네?”

“어제.”

“잤죠.”

“그 큰 베개랑?”

나는 그대로 굳었다.

복도는 조용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안 잤습니다.”

“왜.”

“왜라니요.”

“샀잖아.”

“샀다고 바로 안고 자는 건 아닙니다.”

“다키마쿠라잖아.”

“그 단어를 아침 복도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하지 마세요.”

“Body Pillow.”

“영어로 말해도 안 됩니다.”

신 씨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선글라스가 빛을 반사했다.

“안으면 SHINHWI와 신혼 기분?”

나는 순간 숨이 막혔다.

“신 씨!”

“왜.”

“그런 표현을 복도에서 하지 마세요!”

“작게 했어.”

“내용이 큽니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나는 주변을 다시 확인했다.

아무도 없다.

살았다.

아침부터 사회적 생명이 급격히 흔들렸지만, 아직 완전히 죽지는 않았다.

“안 열었습니다.”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안 열었습니다.”

“왜.”

“신 씨가 봤으니까요. 더 이상은 보여줄 수 없는 마지노선입니다.”

“마지노선?”

“네.”

“내가 보는 것과 관계 있어?”

“이런 종류의 물건은 보통 이웃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어렵네.”

“어렵습니다.”

신 씨는 작게 웃었다.

짧고 낮은 웃음이었다.

웃기지 않았다.

아니, 신 씨 입장에서는 웃길 수 있다.

자기 키만 한 상자를 대신 받아왔더니, 옆집 남자가 세상 끝난 얼굴을 했다. 라벨에는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같은 단어가 적혀 있었다. 누구라도 놀리고 싶어질 상황이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나다.

나는 가방끈을 고쳐 멨다.

“그렇게 나왔으니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응.”

“어디로 가시는데요?”

“회사.”

나는 잠깐 멈췄다. 이 사람은 회사를 다니는 걸까? 아니면 면접을 보러 가는 회사를 이야기하는 걸까? 프리랜서라면 계약 회사와 미팅이 있는 걸까? 어느 쪽이든 상상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신 씨, 회사 다니십니까?”

“비슷한 거.”

“대체 왜 모든 게 비슷합니까?”

“설명 귀찮아.”

“회사 다니는지 아닌지는 꽤 중요한 차이입니다.”

“비슷하게 다녀.”

나는 더 묻기를 포기했다.

회사와 비슷하게 다니는 곳.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으니, 역시 어딘가 스튜디오에 가는 걸지도 모른다. 요즘은 작은 음악 작업실도 많고, 기획사도 많다. 출퇴근 개념이 애매한 사람이라면 회사와 비슷하게 다닌다는 표현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아마도.

아니, 나는 왜 이 사람의 말도 안 되는 표현을 계속 정상 범주 안으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지.

“그런데 선글라스는 왜 쓰셨습니까?”

“눈.”

“그건 선글라스의 사용 부위를 설명한 겁니다.”

“눈부셔.”

“오늘 흐립니다.”

“사람이 눈부셔.”

나는 잠깐 말을 잃었다.

무슨 뜻이지.

사람들이 보기 싫다는 뜻인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그냥 아침이라 눈 뜨기 싫다는 뜻인가.

신 씨는 그런 식이다.

짧게 말한다.

너무 짧게 말해서 듣는 사람이 남은 의미를 다 처리해야 한다.

그것도 꽤 귀찮은 일이다.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8시 16분.

늦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유롭지도 않았다.

“일단 내려가시죠.”

“응.”

우리는 나란히 계단을 내려갔다.

엘리베이터가 있긴 했지만, 이 시간에는 종종 아래층에서 오래 잡혀 있었다. 나는 평소처럼 계단을 택했다. 신 씨도 아무 말 없이 따라왔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따라온다.

말 그대로 따라온다.

“신 씨.”

“응.”

“어디로 가시는지 아시는 거죠?”

“응.”

“정말요?”

“응.”

너무 짧았다.

신뢰가 생기지 않았다.

“혹시 길 모르는데 그냥 저 따라오시는 건 아니죠?”

신 씨가 나를 보았다.

큰 선글라스 때문에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도윤 따라가면 돼?”

“안 됩니다.”

“왜.”

“저는 회사에 갑니다.”

“나도.”

“신 씨 회사가 제 회사랑 같은 방향입니까?”

“비슷한 거?”

“그 말이 오늘따라 특히 불안합니다.”

신 씨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초코우유였다.

나는 걸음을 멈췄다.

“언제 챙기셨습니까?”

“아까.”

“정장 주머니에 초코우유가 들어갑니까?”

“작은 거. 전용 사이즈.”

그녀는 빨대를 꽂았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말끔한 정장. 큰 선글라스. 그리고 주머니에서 나온 초코우유. 그것도 정장 주머니에 들어갈 수 있는 사이즈의 제품을 찾은 것.

이 조합은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초코우유를 마시면 좀…….”

“왜.”

“이미지가 이상합니다.”

“내 이미지?”

“네.”

“괜찮아. 가렸어.”

신 씨는 선글라스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실제로 그럴 수도 있다.

묘하게 눈에 띄는 얼굴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큰 선글라스가 덜 수상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더 수상하다.

우리는 아파트 밖으로 나왔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다. 골목에는 출근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누군가는 급히 전화를 받으며 걸었고, 누군가는 편의점에서 커피를 들고 나왔다.

신 씨는 선글라스와 초코우유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걸었다.

나는 평소처럼 역 쪽으로 향했다.

신 씨도 옆에서 걸었다.

처음엔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아파트에서 큰길까지는 방향이 하나뿐이다. 역 쪽으로 가는 사람은 대부분 이 길을 탄다. 그러니까 같이 걷는 건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큰길에 도착해도 신 씨는 같은 방향이었다.

“신 씨.”

“응.”

“역 가십니까?”

“응.”

“지하철 타세요?”

“응.”

나는 멈칫했다.

“지하철을요?”

“왜.”

“아니, 그냥…….”

의외였다.

뭔가 음악 관련 미팅이면 택시를 탈 줄 알았다. 아니, 그건 편견인가. 요즘 서울에서 택시보다 지하철이 빠를 때도 많다. 게다가 신 씨는 생활력은 없어도 돈을 아끼는 타입일 수도 있다.

아니, 돈을 아끼는 타입이라기엔 어제 내 라면을 너무 자연스럽게 먹었다.

그건 돈 문제가 아니라 귀찮음 문제다.

어쨌든 수도권에 살고 있는 인간이 지하철을 탄다는 건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이상하지.

역 입구에 도착했다.

신 씨는 개찰구 앞에서 잠깐 멈췄다.

나는 바로 불안해졌다.

“교통카드는 있으십니까?”

“아마.”

“아마?”

신 씨는 주머니를 뒤졌다.

초코우유. 휴대폰. 이어폰. 작은 립밤. 정체 모를 종이.

카드는 없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신 씨.”

“응.”

“교통카드 없으시죠.”

“휴대폰.”

“모바일 교통카드 등록하셨습니까?”

“비슷한 거?”

“그 말은 안 했다는 뜻 같습니다.”

“찍으면 되지 않을까?”

“안 될 가능성이 큽니다.”

신 씨는 휴대폰을 개찰구에 가져갔다.

삑.

됐다.

나는 조금 억울했다.

“되네요.”

“응.”

“왜 되죠?”

“아마 유경이가 해줬어.”

“유경이요?”

“응.”

나는 그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유경. 유경이가 모바일 교통카드를 등록해줬다.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지만 흔한 이름이다. 우리 회사에도 찾아보면 한두 명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람도 친구 정도는 있을 수 있다. 사실 보통 사람의 상식으로 따라가기 힘든 일들이 연달아 발생해서 그렇지, 나는 이 사람을 안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교우 관계를 알리 없다.

그보다는 이것조차 아마라니.

이 사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이 맞나.

아니, 이미 어제 오므라이스를 보고 답은 나왔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어쨌든 살고 있다.

그 점이 더 이상하다.

우리는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출근 시간 지하철은 언제나 지옥이다.

사람들은 계단을 내려오면서도 휴대폰을 보고, 열차가 들어오기도 전에 줄을 무너뜨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서로를 사람보다 장애물처럼 취급한다.

나는 익숙했다.

매일 겪는 일이니까.

하지만 신 씨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사람들을 보며 아주 미세하게 뒤로 물러났다.

선글라스가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몸이 살짝 굳은 건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응.”

“사람 많죠.”

“응.”

“혹시 지하철 자주 안 타십니까?”

“비슷한 거.”

“신 씨.”

“응.”

“이건 정말 안 탄다는 뜻 같아서 걱정됩니다.”

열차가 들어왔다.

바람이 밀려왔다.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다시 사람들이 밀려 들어갔다.

신 씨는 순간 발을 멈췄다.

나는 반사적으로 말했다.

“이 방향인 거죠? 들어가셔야 합니다.”

출근하는 직장인은 전쟁에 나가는 전사다. 잠시 멈칫하는 순간, 지하철은 내가 탈 공간이 사라지고 내 근태 또한 사라지는 법이다.

면접이든 미팅이든, 여기서 열차를 놓치면 지각이다.

“응.”

그녀가 움직이려는 순간, 뒤에서 밀려든 사람들 때문에 몸이 휘청했다.

나는 바로 손을 뻗어 그녀의 팔꿈치 쪽을 가볍게 잡았다.

“죄송합니다. 잠깐만요.”

신 씨는 나를 보았다.

선글라스 너머라 눈은 보이지 않았다.

“이쪽으로.”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 빈 공간을 찾아 그녀를 세웠다. 문 옆, 손잡이 근처였다. 완전히 안전한 곳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밀려나지는 않을 위치였다.

나와 신 씨가 지하철의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간 순간 문이 닫혔다. 우리는 작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각자의 근태와 미팅 시간도 지켜냈다.

신 씨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다른 손에는 여전히 초코우유가 있었다.

“그건 가방에 넣으세요.”

“왜.”

“쏟으면 큰일납니다.”

“아깝네.”

“옷도 망합니다.”

“정장?”

“네.”

“이거 회사에서 준 거.”

“더 넣으세요.”

신 씨는 순순히 초코우유를 가방에 넣었다.

회사에서 준 정장.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이 사람 진짜로 회사에 다니는 건가? 보통 회사에서 정장을 주나? 어쩌면 회사에서도 자신들과 일하는 프리랜서의 모습으로 인해 자신들의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다. 평소 신 씨의 행색을 생각하면, 회사 입구에서 경비원에게 막혀도 이상하지 않았다. 회사 쪽에서도 복장을 챙겨주고 싶었을 것이다.

아마도.

적어도 진짜 일을 하긴 하는구나.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더 밀려들었다.

나는 신 씨와 사람들 사이에 몸을 세웠다. 등을 떠미는 압력은 내 쪽으로 받되, 신 씨가 문과 사람 사이에 끼이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지나치게 가까운 자세가 됐다.

“불편하십니까?”

“아니. 편해.”

맞은편에는 누군가가 휴대폰을 얼굴 높이까지 들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 정도로 붐비는 출근길에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휴대폰을 보는 것도 어려웠다.

나라면 휴대폰 보는 것을 포기했겠지만. SHINHWI님의 노래는 화면 없이 귀로도 충분히 들을 수 있다.

붐비는 출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신 씨는 계속 얼굴을 가리려 했다.

선글라스는 이미 충분히 컸다. 그런데도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머리카락을 앞으로 내리고, 마스크까지 올렸다. 작은 얼굴은 거의 완전히 가려졌다.

이상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예쁘긴 하다.

화장기 없이 부스스한 모습이었어도 눈에 띄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연예인처럼 숨는 정도는 조금 과하다.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가 바로 지웠다.

연예인?

또 그 생각이다.

나는 왜 자꾸 신 씨를 그쪽으로 연결하려고 하는 걸까.

신 씨는 그냥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하는, 생활력 없고 이상하게 눈에 띄는 옆집 여자다. 엉망진창임에도 나름 열심히 일을 하며 생존하고 있는 기특한 여자.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그런데 그 기특하다는 결론은 역 하나가 지날 때마다 조금씩 흔들렸다.

신 씨는 내가 내릴 역에서도 같이 내렸다.

나는 개찰구를 지나며 물었다.

“신 씨.”

“응.”

“진짜 이 역 맞습니까?”

“응.”

“여기 우리 회사 근처인데요.”

“도윤 회사?”

“네.”

“그래?”

“그래가 아니라요.”

신 씨는 지나온 개찰구 뒤의 안내판을 가리켰다.

“화살표가 명령해. 나가라고.”

“진짜로 맞으신 거죠?”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익숙한 거리였다.

출근길에 매일 보는 횡단보도. 편의점. 카페. 건물 1층의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 그리고 멀리 보이는 큰 대로.

내 회사는 이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있었다.

반대쪽에는.

나는 생각을 멈췄다.

NOVA LINE MUSIC 사옥이 그쪽 방향에 있었다.

하지만 그 근처에는 작은 스튜디오나 기획사도 많다.

보컬 레슨실도 있고, 녹음실도 있고, 댄스 스튜디오도 있고, 이름도 처음 듣는 소규모 엔터 회사도 몇 개 있다.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그쪽에 갈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녀가 진짜 SHINHWI라면, 매일같이 NOVA LINE MUSIC으로 출근해 대책 회의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SHINHWI가 지하철을 탈 리 없다.

그리고 SHINHWI라면 지하철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초코우유를 꺼내 들고 걷지도 않는다.

신 씨가 SHINHWI일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하니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길 아시는 거 맞죠?”

내가 물었다.

신 씨는 나를 보았다.

“응.”

“정말로요?”

“도윤 걱정 많네.”

“신 씨가 걱정이 많아지게 합니다.”

“기특해.”

“칭찬으로 넘어가지 마세요.”

우리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신호는 빨간불이었다.

출근길 사람들은 횡단보도 앞에 줄지어 서 있었다. 다들 휴대폰을 보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거나, 커피를 들고 있었다.

신 씨는 그 사이에서 혼자 조금 비현실적이었다.

말끔한 정장. 작은 얼굴을 덮는 큰 선글라스. 끝까지 얼굴을 가리려는 자세. 그리고 설명을 회피하는 짧은 대답들. 손에 든 초코우유.

혹시 정말 길을 잃고 나를 따라온 걸까.

그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만약 그녀가 일반적인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지각이다. 계약 첫날일 수도 있다. 업무 미팅일 수도 있다. 길을 잃고 나를 무작정 따라왔다면,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잘못된 곳까지 데려온 셈이다.

내 잘못은 전혀 아니지만.

“신 씨.”

“응.”

“혹시 목적지 주소 찍어보셨습니까?”

“응.”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지도에 나와 있습니까?”

“응.”

“그럼 왜 계속 저랑 같은 방향으로 오셨습니까?”

“같으니까.”

“그건 결과 설명입니다.”

“도윤 말 어렵네.”

“신 씨 말이 너무 짧습니다.”

신호가 바뀌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신 씨는 반대쪽으로 향했다.

정확히는, 횡단보도를 건넌 뒤 갈림길에서 내 회사와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나는 멈췄다.

그쪽은.

NOVA LINE MUSIC이 있는 방향이었다.

물론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그 근처에는 작은 스튜디오도 많다.

신 씨는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상하지 않다.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신 씨.”

그녀가 돌아봤다.

선글라스가 아침 햇빛을 반사했다.

“네?”

“그쪽 맞으십니까?”

“응.”

“정말요?”

“응.”

“그쪽에…… NOVA LINE MUSIC도 있는데요.”

나는 말하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왜 그 이름을 꺼냈지.

신 씨는 아주 잠깐 멈췄다.

정말 잠깐.

그리고 말했다.

“근처.”

“근처요?”

“응.”

근처.

그 말은 너무 많은 것을 숨길 수 있는 단어였다.

NOVA LINE MUSIC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일 수도 있다. NOVA LINE MUSIC 근처의 기획사일 수도 있다. NOVA LINE MUSIC 자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는 근처라고 했다. 그러니까 NOVA LINE MUSIC 본사는 용의 선상에서 제외.

아니, 신 씨는 원래 그렇게 말한다.

정확히 말해야 할 때도 대충 말한다. 회사도 비슷한 거. 음악도 비슷한 거. 출근도 비슷한 거.

근처도 아마 그런 종류일 것이다.

“도윤.”

“네.”

“지각.”

나는 시계를 봤다.

8시 47분.

위험했다.

정말 위험했다.

“아.”

“가.”

신 씨가 손을 살짝 들었다.

손끝만 보이는 작은 인사였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그녀가 어느 건물로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정말 길을 아는지, 정말 목적지에 제대로 가는지, 정말 저 방향이 맞는지.

하지만 그 순간, 출근 시간이라는 현실이 나를 잡아끌었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출근해야 한다.

팀장님은 SHINHWI와 신 씨와 다키마쿠라와 NOVA LINE MUSIC 근처의 작은 스튜디오에 대한 내 의문을 이해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가세요.”

“응.”

“길 잃으면 연락하세요.”

“도윤.”

“네.”

“나 길 잃은 거 아니야.”

“알겠습니다.”

“얼굴 가린 거야.”

나는 멈칫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걸렸다.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얼굴을 가린 거다.

그렇다는 건, 길은 안다는 뜻이다.

그리고 얼굴을 가려야 할 이유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다시 묻고 싶었다.

왜요?

누가 보면 안 됩니까?

그렇게까지 가려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신 씨가 이상한 사람인 것과는 별개로 이상하게 생긴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 씨는 이미 돌아섰다.

큰 선글라스와 검은 정장 차림의 그녀는 사람들 사이로 조용히 걸어갔다. 작은 얼굴은 끝까지 가려져 있었고, 걸음은 생각보다 망설임이 없었다.

길을 잃은 사람의 걸음은 아니었다.

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멀리, 대로 건너편 건물 사이로 NOVA LINE MUSIC의 로고가 보였다.

검은 글자.

흰 벽.

깔끔한 유리 외벽.

거기까지는 아직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 주변에는 작은 녹음실도, 보컬 스튜디오도, 이름 모를 기획사도 많았다.

그러니까 괜찮다.

그럴 수 있다.

음악과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그쪽으로 갈 수는 있다.

진짜 SHINHWI였다면 매일같이 소속사로 출근해 대책 회의를 했겠지.

하지만 SHINHWI가 지하철을 탈 리 없다.

SHINHWI가 초코우유를 사이즈까지 맞춰 가며 정장 주머니에 넣고 다닐 리 없다.

SHINHWI가 옆집 남자에게 자기 키만 한 다키마쿠라 상자를 대신 받아와놓고 “기특해?”라고 물을 리 없다.

나는 왜 자꾸 저 사람을 SHINHWI인 것처럼 생각하는 거지.

“아니야.”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없지.”

시계를 다시 봤다.

8시 49분.

정말 늦겠다.

나는 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드라마나 만화처럼 이상한 일에 휘말려 지각을 해도 회사에서 아무 일이 없는 그런 주인공이 아니다.

게다가 옆집 여자가 같은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하는 건, 그런 종류의 이상한 사건조차 아니다.

그래서 앞만 보고 걸었다.

회사 쪽으로.

평범한 직장인의 방향으로.

그리고 그 반대편에서, 신 씨는 끝까지 얼굴을 가린 채 NOVA LINE MUSIC이 있는 거리 안쪽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