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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폐 아이돌님은 옆집에 살고 계셔 / Chapter 03

CHAPTER 03: 옆집 여자는 택배를 가지고 온다

위험한 SHINHWI 한정판 택배를 사수하려던 도윤은, 택배를 대신 받아온 신 씨와 상자를 사이에 둔 공방을 벌인다.

옆집 여자는 택배를 가지고 온다

그날 나는 회사에서 전쟁을 했다.

상대는 업무가 아니었다.

택배였다.

정확히는, 내 인생에서 가장 위험한 택배였다.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Full Set

배송 앱에 찍힌 상품명은 너무 길고, 너무 정직했고, 너무 끔찍했다.

Body Pillow.

그 두 단어가 이렇게 사람을 벼랑 끝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물론 불법적인 물건은 아니다.

공식 굿즈다.

그것도 NOVA LINE MUSIC 공식 스토어에서 판매한, 정식 라이선스 상품이다. 그러니 송장에도 아주 당당하게 상품명이 그대로 기입되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문제의 물건이다. 발매 당시 성인 인증이 필수였고, 소량 한정 생산이라 판매 시작 3분 만에 품절됐으며, 팬덤 안에서도 며칠 동안 논쟁이 이어졌던 바로 그 물건.

그러니까 문제는, 공식이라는 사실이 도덕적 면죄부는 될 수 있어도 사회적 생명의 방탄복은 되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판매 공지가 올라왔던 날, 팬 커뮤니티는 둘로 갈라졌다.

공식이 미쳤다. 이건 거의 야겜 특전 아니냐. 아니 SHINHWI니까 가능한 굿즈다. 성인 인증 걸었으면 된 거 아니냐. 그래도 공식에서 등신대 다키마쿠라는 선 넘은 거 아님? Velvet Inferno 콘셉트면 이 정도는 오히려 정석이다.

나는 그 모든 글을 읽었다.

그리고 고민했다.

정말 고민했다.

팬으로서 이런 물건을 사도 되는가. SHINHWI가 자기 이미지로 공식적으로 내놓은 굿즈라면, 그것 역시 그녀가 선택한 세계의 일부로 봐야 하지 않을까. Velvet Inferno는 원래 서큐버스 지옥 아이돌이 악마 관객을 역으로 포식하는 앨범이고, 그 안에서 SHINHWI의 몸과 표정과 의상은 단순한 노출이 아니라 이미지 통제의 장치였으니까.

그렇게 아주 길고, 복잡하고, 진지한 자기합리화를 거친 뒤 뇌에서 흐른 전기 신호에 따라 내 손가락이 움직였다.

즉, 나는 그 물건을 샀다.

성인 인증을 거쳐서.

정식으로.

원래 팬이란 생물은 최애의 굿즈라면 무엇이든 갖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나는 틀리지 않았다.

옳은 선택이다.

그리고 오늘, 그 물건이 배송 중이었다.

하필 오늘.

어제 신 씨가 내 방에 들어와 SHINHWI 앨범과 포스터와 굿즈를 한바탕 훑고 간 바로 다음 날.

그렇게 생각해 보면 오늘인 것이 다행이다. 어제 내 방에 이 물건이 없었다는 사실이 내 사회적 생명을 하루 연장해주었다.

이제 이것을 아무도 모르게 받아 방 안으로 들여놓으면 된다. 사람이 없는 때 천천히 처리하면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은 평화롭게 끝날 수 있다.

나는 배송 앱을 열었다.

배송 중

아직 배송 중이었다.

괜찮다.

사건은 발생하지 않았다.

나는 오전 9시 13분부터 같은 화면을 서른 번쯤 확인했다.

9시 28분.

배송 중.

9시 51분.

배송 중.

10시 07분.

배송 중.

10시 08분.

배송 중.

10시 09분.

배송 중.

사람은 불안하면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택배 조회를 1분마다 누른다고 물류 차량의 위치가 바뀌지는 않는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손가락이 멈추는 건 아니었다.

옆자리 박정민 대리가 내 쪽을 흘끗 보았다.

“서도윤 씨.”

“네.”

“주식 하세요?”

“아닙니다.”

“그럼 코인?”

“아닙니다.”

“그런데 왜 1분마다 휴대폰 보고 얼굴이 망해요?”

“택배입니다.”

“아.”

박 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택배군요.”

“네.”

“비싼 겁니까?”

“비쌉니다.”

“깨지면 안 되는 겁니까?”

“제 인생이 깨집니다.”

박 대리는 잠깐 나를 보았다.

그의 눈빛이 조금 이상해졌다.

“뭘 시켰길래요?”

“개인 물품입니다.”

“개인 물품이란 말이 제일 수상한 거 아세요?”

“수상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보여주세요.”

나는 휴대폰을 뒤집었다.

박 대리는 웃었다.

“아, 진짜 수상하네.”

“업무합시다.”

“서도윤 씨가 먼저 업무를 버렸습니다.”

맞는 말이라 더 아팠다.

나는 모니터를 봤다.

보고서가 열려 있었다.

분명히 오전 중으로 정리해야 하는 자료였다. 나는 커서를 움직였다. 문장을 썼다. 지웠다. 다시 썼다.

그리고 다시 배송 앱을 열었다.

배송 중

다행이다.

아직 배송 중.

제발.

제발 퇴근 뒤에 와라.

나는 속으로 기도했다.

내가 택배 기사님에게 이렇게 절실하게 시간 조절을 바란 건 처음이었다. 늦으면 안 된다. 그렇다고 너무 빨라도 안 된다. 정확히 내가 집에 도착한 뒤, 내가 직접 받을 수 있는 시간에 와야 한다.

왜냐하면 이 택배는 남에게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관리인 아저씨?

안 된다.

그분은 분명 상자 크기를 보고 물을 것이다.

“서 씨, 이거 뭐야? 사람 들어 있는 줄 알았네.”

아래층 아주머니?

절대 안 된다.

그분은 다음 날 아침 아파트 전체에 알릴 것이다.

“서 씨 집에 웬 키만 한 상자가 왔더라? 그 바디 뭐시기?”

그리고 최악.

옆집 신 씨.

젊은 여자.

아마 나보다 많이 어릴 것으로 보이는 여자.

생활력은 없지만 묘하게 통찰력 있던 여자.

내 방의 SHINHWI 포스터를 보고도 “많네”라고만 말했던 여자.

그런데 이건 포스터가 아니다.

앨범도 아니다. 아크릴 스탠드도 아니다. 엽서도 아니다.

이건 등신대 사이즈의 다키마쿠라다.

자기 키만 한 길쭉한 천 위에, Velvet Inferno 콘셉트의 SHINHWI가 인쇄된 물건이다.

포스터나 앨범 재킷의 SHINHWI는 그래도 무대였다.

카메라와 조명과 콘셉트 안에 있었다. 관객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가 있었다.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프레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 굿즈는 달랐다.

공식이면서도 거의 법망만 피한 듯한 물건.

법적으로 문제 될 부분은 당연히 가려져 있다. 하지만 그건 “건전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가릴 곳만 정확히 가리고, 나머지는 법 따위는 최소한의 선으로만 취급하겠다는 듯 과감했다. 노출도는 포스터보다 훨씬 높았고, 표정은 공연 사진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도발적이었다. 카메라를 향해 유혹하듯 웃는 얼굴, 몸을 비튼 포즈, 검은 레이스와 붉은 조명, 그리고 “이걸 공식 굿즈라고 불러도 되나” 싶은 선까지 밀어붙인 위험한 완성도.

팬덤에서 사실상 야겜 굿즈 취급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샀다.

공식이라서.

성인 인증을 했으니까.

한정판이라서.

팬심이니까.

그 모든 이유가 지금은 전부 변명처럼 느껴졌다.

“퇴근까지 배송 중이면 된다.”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박 대리가 바로 반응했다.

“서도윤 씨, 오늘 진짜 이상합니다.”

“저도 압니다.”

“알면 고쳐야죠.”

“고칠 수 없는 종류의 문제입니다.”

“택배가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문제는 설명하는 순간 더 큰 문제가 된다.


점심시간에도 나는 배송 앱을 확인했다.

배송 중

좋다.

아직 배송 중.

나는 제육덮밥을 먹으며 배송 앱을 봤다.

밥을 한 숟가락 먹고 확인.

배송 중.

물 한 모금 마시고 확인.

배송 중.

박 대리가 맞은편에서 나를 보았다.

“뭘 시켰는데 그렇게까지 해요?”

“굿즈입니다.”

“아, 그분 거?”

나는 숟가락을 멈췄다.

“그분이라니요.”

“서도윤 씨가 요즘 계속 영상 보는 그분.”

나는 조용히 주변을 확인했다.

다행히 근처에 회사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목소리 낮춰주세요.”

“진짜네.”

박 대리의 눈이 반짝였다.

“SHINHWI 굿즈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맞구나.”

“박 대리님.”

“네.”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아야 할 비밀이 있습니다.”

“그 정도예요?”

“네.”

“제가 원래 남의 취미 생활은 존중하는 사람인데 더 궁금해지는데요.”

“계속 존중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입니다.”

“문명인은 참을 줄 압니다.”

“저는 직장인입니다.”

“그럼 더 참으셔야죠.”

박 대리는 웃었다.

하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그 점은 고마웠다.

그는 사람을 놀릴 줄 알지만, 선을 완전히 넘지는 않는다. 1년 선배 박 대리와는 입사 때부터 5년 넘게 함께 굴렀다. 세월이 가져온 신뢰와 믿음이 있다.

아직까지는.

나는 다시 배송 앱을 확인했다.

배송 중

살았다.

아직 살았다.


오후는 길었다.

업무 시간이 이렇게 길 수 있다는 걸 나는 그날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오후 내내 상태는 같았다. 3시. 배송 중. 4시. 배송 중. 5시 37분. 여전히 배송 중.

그제야 나는 조금 안심했다.

이 정도면 퇴근 뒤에 도착할 가능성이 높다.

혹시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집에 가서 기다리면 된다. 문 앞에서 내가 받으면 된다. 아무도 모르게 방 안으로 들여놓고, 상자를 뜯고, 커버를 확인하고, 다시 깊숙이 숨기면 된다.

아니, 굳이 뜯을 필요도 없다.

지금은 스캔들 직후다. 마음이 복잡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굿즈를 펼치는 건 팬으로서도 여러 가지로 부담스럽다.

일단 받기만 하자.

받고 숨기자.

받은 뒤 존재를 잊자. 적어도 이 사건이 끝날 때까지는.

그 뒤, 아무런 마음의 거리낌 없이 경건한 마음으로 SHINHWI님의 자태를 영접하자.

그게 최선이다.

퇴근 시간이 됐다.

6시 3분.

나는 마지막으로 배송 앱을 열었다.

배송 중

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좋아.

오늘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 놓였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박 대리가 말했다.

“택배 받으러요?”

“퇴근입니다.”

“택배 받으러 퇴근하는 거죠?”

“퇴근입니다.”

“표정이 퇴근이 아니라 구출 작전인데요.”

나는 가방을 들었다.

“내일 뵙겠습니다.”

“후기 기대할게요.”

“후기 없습니다.”

“그 말은 후기가 있다는 뜻이죠.”

나는 대답하지 않고 사무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배송 앱을 다시 열었다.

배송 중

완벽하다.

택배 기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만큼은 늦어주셔도 됩니다.

조금 더 늦어주세요.

제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지하철을 탔다.


집에 도착할 무렵, 하늘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아파트 골목은 평소처럼 조용했다.

편의점 불빛이 멀리서 깜빡였고, 분리수거장 쪽에는 누군가 대충 버린 박스 하나가 바람에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그 박스를 보며 생각했다.

저건 종이. 저 테이프는 떼야 하고. 송장은 제거해야 하고.

망했다.

신 씨 때문에 내 분리수거 감각이 더 예민해지고 있다.

좋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나는 현관문을 열며 배송 앱을 다시 확인했다.

배송 중

성공했다. 나는 안도를 하며 하루의 피로를 씻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인간은 성공을 확신한 마지막 순간에 실수를 저지른다는 역사적 사실을 망각한 채.


씻고 나온 나는 물기에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내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리고 멈췄다.

배송 완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언제?

언제 완료됐지?

나는 급히 알림 시간을 확인했다.

방금 전.

거의 지금 막.

그 순간.

딩동.

초인종이 울렸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기사님이 방금 두고 간 게 아니라, 지금 문 앞에 계신 모양이다. 벨까지 눌러 직접 전달해 주시다니. 센스 있는 기사님이다. 내가 그린 성공 시나리오보다 완벽하다. 내 손으로 받을 수 있다. 아무도 모른다.

살았다.

나는 재빨리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대로 굳었다.

문 앞에는 택배 기사님이 없었다.

대신 신 씨가 서 있었다.

자기 키만 한 상자를 안고.

정확히 말하면, 안고 있다기보다 거의 끌어안고 버티고 있었다. 길고 큰 상자였다. 사람 하나 들어갈 것처럼 길쭉한, 성인 남자가 봐도 꽤 부담스러운 크기의 택배 상자.

그 상자 옆면에는 큼직한 배송 라벨이 붙어 있었다.

수령인: 서도윤. 상품명 일부: SHINHWI Velvet Inferno Limited Body Pillow—

나는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봤다.

신 씨는 상자 뒤에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짧은 흑발은 대충 눌려 있었고, 커다란 후드티 소매는 손등을 거의 덮고 있었다. 상자가 너무 커서 그녀의 몸 대부분은 가려져 있었다.

그런데 표정은.

뿌듯했다.

정말 뿌듯했다.

마치 사냥감을 물고 와 주인 앞에 내려놓은 고양이 같았다.

“도윤 거.”

신 씨가 말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있었어. 길 막아.”

그녀는 상자를 조금 더 들어 보이려 했다.

상자가 휘청거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조심하세요!”

“이거 커.”

“그걸 왜 들고 오셨습니까!”

“도윤 거잖아.”

“그냥 두시면 됐죠!”

“훔쳐가면?”

“누가 이걸 훔쳐갑니까!”

말하고 나서 깨달았다.

훔쳐갈 수 있다.

SHINHWI 한정판 굿즈다.

중고가가 말도 안 될 거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신 씨는 상자를 끌어안은 채 나를 올려다보았다.

“칭찬.”

“네?”

“엄청 큰 거 가지고 왔어. 이거 나만 해.”

“아니, 그러니까 그건…….”

“기특해?”

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상황에서 그 단어가 나오면 안 된다.

기특하다.

기사님이 엘리베이터 앞에 놓고 간 택배를 가져다줬다.

그것도 자기 키만 한 상자를.

그 안에는 내가 성인 인증을 하고 산 SHINHWI 공식 고수위 등신대 다키마쿠라가 들어 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있는 사람은 옆집의 젊은 여자다.

나는 지금 사회적 사망 직전이다.

다행히 반응을 보면 아직 내용물이 뭔지는 모르는 모양이다. 나는 빨리 이 상황을 수습해야 했다.

“일단 주세요.”

나는 상자를 받으려 했다.

신 씨는 상자를 살짝 뒤로 뺐다.

“라면.”

“네?”

“라면.”

“지금요?”

“응.”

“신 씨, 그 상자부터 주세요.”

“칭찬 먼저.”

“기특합니다.”

“라면.”

“기특과 라면이 세트입니까?”

“응.”

“그런 계약은 체결한 적 없습니다.”

“이거 커서 무거웠어.”

그건 맞았다.

상자는 정말 컸다.

신 씨가 저걸 엘리베이터 앞에서 내 집 앞까지 들고 온 건, 이웃으로서 감사 인사 정도는 할 만한 일이었다.

문제는 그 내용물이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이웃이 나를 생각해 택배를 가지고 와줬다. 고마운 일이다. 감사해야 한다. 라면 정도는 끓여줄 수 있다.

하지만 라면을 끓여주려면 신 씨를 집 안에 들여야 한다.

집 안에 들이면 상자와 같은 공간에 신 씨가 있게 된다.

커다란 택배 상자, 그것도 자신이 가지고 온. 신 씨는 반드시 궁금해한다.

그녀는 분리수거에는 관심이 없지만, 내 방의 물건들에는 관심이 많다.

이건 망했다.

이미 절반쯤 망했다.

“라면 끓여드릴 테니까 일단 상자 주세요.”

“들어가도 돼?”

“상자만입니다. 제가 들고 들어가겠습니다.”

“나도 들어가.”

“왜요?”

“라면.”

“라면은 제가 끓여서 가져다드릴 수도 있습니다.”

“싫어.”

“왜요?”

“급식소에서 먹어야지.”

“여기는 급식소가 아닙니다.”

“비슷한 거.”

“오늘만큼은 전혀 안 비슷합니다.”

신 씨는 상자를 안은 채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도윤 얼굴 빨개.”

“상자 앞이라서 그렇습니다.”

“상자가 뜨거워?”

“제 인생이 뜨겁습니다.”

“이상해.”

“상자 주세요.”

나는 다시 손을 뻗었다.

신 씨는 이번엔 순순히 상자를 내밀었다.

무거웠다.

상상보다 무거웠다.

단순히 베개 커버만 있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본체 쿠션까지 포함된 풀세트라 그런지, 크기와 부피가 사람을 압박했다.

나는 상자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신 씨는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 들어왔다.

나는 문을 닫으며 속으로 외쳤다.

끝났다.


상자는 거실 한가운데 놓였다.

정말 존재감이 컸다.

거실이 좁은 탓도 있었지만, 상자 자체가 너무 길었다. 세워두면 거의 신 씨 키와 비슷했고, 눕히면 식탁 아래를 반쯤 막았다.

신 씨는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바로 말했다.

“만지시면 안 됩니다.”

“아직 안 만졌어.”

“예방 차원입니다.”

“어제도 그랬어.”

“어제와 오늘은 위험도가 다릅니다.”

“뭐야?”

“개인 물품입니다.”

“굿즈?”

나는 굳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여기.”

신 씨가 배송 라벨 쪽을 가리켰다.

나는 급히 라벨을 손으로 가렸다.

늦었다.

이미 봤다.

“SHINHWI.”

신 씨가 읽었다.

“Velvet Inferno.”

“읽지 마세요.”

“Limited.”

“그만.”

“Body Pillow.”

“그만!”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갔다.

신 씨는 눈을 깜빡였다.

나는 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건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왜.”

“그냥…… 굳이 알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도윤 SHINHWI 좋아하잖아.”

“좋아합니다.”

“그럼 굿즈잖아.”

“그렇긴 한데요.”

“왜 숨겨?”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나는 SHINHWI를 예술적으로 좋아하지만, 이 굿즈는 공식이 선을 넘기 직전까지 간 성인 지향 한정판이고, 저는 성인 인증을 거쳐 정식 구매했지만, 옆집 젊은 여성에게 설명하기엔 너무 민망하며, 어제 제가 SHINHWI의 이미지 통제권에 대해 장황하게 말한 바로 다음 날 이걸 들키는 건 제 논리와 사회적 생명이 동시에 흔들리는 일입니다.

너무 길다.

그리고 설명할수록 죽는다.

“팬심에도 여러 층위가 있습니다.”

나는 최대한 점잖게 말했다.

신 씨는 나를 봤다.

“층위.”

“네.”

“이건 깊은 층위?”

“매우 깊습니다.”

“열어봐.”

“안 됩니다.”

“왜.”

“깊은 층위라서요.”

“그럼 더 봐야지.”

“논리가 이상합니다.”

신 씨는 상자 테이프를 손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나는 바로 상자를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안 됩니다.”

“궁금해.”

“궁금해하지 마세요.”

“도윤이 숨기니까.”

“숨기면 더 궁금해지는 거 압니다. 하지만 이번엔 참으세요.”

“왜.”

“이웃 간의 평화를 위해서요.”

“전쟁이야?”

“그 비슷한 겁니다.”

“비슷한 거.”

“그 말 제 입에서 나오게 하지 마세요.”

신 씨는 상자 옆에 앉아 초코우유를 꺼냈다.

언제 가져왔는지 모르겠다.

항상 그렇다.

이 사람은 초코우유가 없는 곳에서도 초코우유를 발생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라면.”

“네. 끓여드릴 테니까 상자에서 떨어지세요.”

“싫어.”

“왜요?”

“지키는 중.”

“뭘요?”

“도윤 거.”

“이제 제가 지킬 테니까 괜찮습니다.”

“내가 가져왔잖아.”

“그건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지분 있어.”

“택배 수령에 지분 개념을 도입하지 마세요.”

“조금.”

“없습니다.”

“치사해.”

“상식입니다.”

신 씨는 빨대를 물고 나를 보았다.

“상식이 치사함의 옷을 입었네.”

“상식은 옷을 입지 않습니다. 언제 생각한 말입니까?”

“방금.”

“제가 잘못했습니다.”

나는 부엌으로 갔다.

하지만 시선은 계속 거실에 있었다.

신 씨가 상자에 손을 대지 않는지 확인해야 했다.

라면 물을 올리고, 스프를 꺼내고, 계란을 찾는 동안에도 나는 계속 뒤를 돌아봤다.

신 씨는 얌전히 앉아 있었다.

너무 얌전했다.

그게 더 불안했다.

“신 씨.”

“응.”

“상자 뜯지 마세요.”

“안 뜯어.”

“정말요?”

“응.”

나는 다시 냄비를 봤다.

물이 끓기 시작했다.

그 순간.

찍.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번개처럼 돌아봤다.

신 씨가 상자 테이프 끝을 손톱으로 살짝 들어올리고 있었다.

“신 씨!”

다행히 내 외침에 그녀는 멈췄다.

나는 급히 거실로 가서 상자를 세웠다.

그리고 벽 쪽으로 밀었다.

신 씨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진짜 이상하네.”

“신 씨.”

“응.”

“세상에는 열지 않는 편이 좋은 상자도 있습니다.”

“판도라?”

“그 정도입니다.”

“그럼 안에 희망 있어?”

“아마 절망만 있을 겁니다.”

“궁금해.”

“왜 자꾸 인류의 금기를 깨려 하십니까?”

“도윤 반응 재밌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제 알았다.

신 씨는 내용물이 궁금한 것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내 반응이다.

내가 필사적으로 막으니까 더 재미있어진 것이다.

최악이다.

“재미없습니다.”

“거짓말.”

“진짜입니다.”

“얼굴 빨개.”

“라면 물 때문입니다.”

“부엌 저기인데.”

“집 전체가 뜨겁습니다.”

“에어컨 켜.”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신 씨는 아주 작게 웃었다.

정말 작게.

그런데 그 웃음이 묘하게 사람을 약 올렸다.

나는 냄비 앞으로 돌아갔다.

면을 넣었다.

계란도 넣었다.

치즈를 넣을까 고민하다가 넣었다.

오늘은 치즈가 필요하다.

인류 문명의 방어선이 치즈 한 장에라도 기대야 할 것 같았다.


라면을 먹는 동안에도 신 씨의 시선은 상자에 가 있었다.

정확히는, 라면 한 젓가락 먹고 상자.

국물 한 모금 마시고 상자.

초코우유 한 모금 마시려다 내 눈치를 보고 멈추고, 다시 상자.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신 씨.”

“응.”

“라면에 집중하세요.”

“집중하고 있어.”

“눈은 상자에 있습니다.”

“상자도 있어.”

“라면과 상자는 동시에 먹을 수 없습니다.”

“상자 안 먹어.”

“먹으란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 씨는 면을 후후 불었다.

그리고 말했다.

“진짜 뭐야?”

“굿즈입니다.”

“무슨 굿즈?”

“SHINHWI 굿즈요.”

“그건 알아.”

“그러면 됐습니다.”

“왜 못 봐?”

나는 잠깐 침묵했다.

이쯤 되면 설명을 아예 피하는 것도 더 수상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죽는다.

나는 중간 지대를 찾아야 했다.

“성인용 굿즈입니다.”

말하고 나서 후회했다.

왜 그렇게 말했지.

신 씨의 눈이 아주 조금 커졌다.

“성인용. 야한 거?”

나는 물을 마시다 사레가 들릴 뻔했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그럼?”

“수위가 높은 콘셉트 굿즈입니다.”

“야한 거네.”

“신 씨.”

“응.”

“단어 선택을 조금만 부드럽게 해주세요.”

“야한 공식 굿즈.”

“더 이상해졌습니다.”

신 씨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식이면 괜찮은 거 아냐?”

“공식이라고 모든 것이 괜찮아지는 건 아닙니다.”

“도윤이 샀잖아.”

“샀습니다만.”

“성인 인증?”

나는 침묵했다.

신 씨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했네.”

“법을 지켰습니다.”

“기특해.”

“그 상황에서 기특하다고 하지 마세요!”

신 씨는 라면을 먹었다.

표정은 여전히 무심했지만, 눈빛은 재미있다는 쪽에 가까웠다.

“비싸?”

“그 질문도 하지 말아주세요.”

“비싸구나.”

“추론하지 마세요.”

“한정판?”

“배송 라벨 읽으셨잖아요.”

“응.”

“그러면 왜 물으십니까?”

“도윤 입으로 들으면 재밌어.”

이 사람은 정말 위험하다.

분리수거를 못해서 위험한 게 아니다.

사람의 사회적 약점을 너무 빨리 찾아낸다.

나는 라면 그릇을 내려다봤다.

“아무튼, 이 상자는 열지 않습니다.”

“언제?”

“언제라뇨?”

“언젠가는 열잖아.”

“혼자 있을 때요.”

“왜 혼자?”

“그 질문이 가장 위험합니다.”

“같이 열면 안 돼?”

“절대 안 됩니다.”

“도윤, 이상해.”

“정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야한 SHINHWI 굿즈 샀는데?”

“공식입니다.”

“그래도 야하잖아.”

“공식이고 성인 인증을 거쳤습니다.”

“근데 숨기잖아.”

“공식과 민망함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신 씨는 잠깐 생각했다.

“어렵네.”

“네. 어렵습니다.”

“그래도 열어보고 싶어.”

“안 됩니다.”

“조금만.”

“안 됩니다.”

“포장만.”

“안 됩니다.”

“테이프만.”

“안 됩니다.”

“치사해.”

“개인정보 보호입니다.”

“배신.”

“사생활입니다.”

신 씨가 젓가락을 멈췄다.

“배신이 사생활의 옷을 입었네.”

“네. 아주 두껍게 입었습니다.”

그녀는 조금 불만스러운 얼굴로 라면을 먹었다.

나는 그제야 아주 조금 안심했다.

막았다.

일단 막았다.

오늘은 상자를 지켰다.

그런데 바로 그때, 신 씨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근데 도윤.”

“네.”

“SHINHWI는 이런 굿즈 파는 거 알아?”

나는 굳었다.

“……아마 알겠죠.”

“왜?”

“공식 굿즈니까요. 당연히 소속사와 아티스트 측 확인을 거쳤을 겁니다.”

“그럼 본인이 허락한 거네.”

“그렇겠죠.”

“그럼 왜 부끄러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정말 이상한 질문이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정확한 질문이었다.

SHINHWI가 허락한 이미지다.

SHINHWI가 자기 이름으로 공식 판매한 굿즈다.

그렇다면 팬이 정식으로 구매한 것이 왜 부끄러운가.

대답은 간단했다.

그 이미지를 만든 사람이 SHINHWI라는 것과, 그걸 산 사람이 나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걸 옆집 신 씨에게 들킨다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나는 천천히 말했다.

“무대 위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웃은 다르니까요.”

신 씨가 나를 보았다.

“다르다?”

“네.”

“SHINHWI랑 나?”

나는 심장이 잠깐 멈췄다.

“네?”

“아니.”

신 씨는 초코우유를 집었다.

“예를 들면.”

나는 그녀를 빤히 봤다.

신 씨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나는 숨을 내쉬었다.

예를 들면.

그래. 예를 들면이다.

“그렇죠. 예를 들면.”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포스터 속 SHINHWI님과 지금 여기서 라면 드시는 신 씨는 다르잖아요.”

“많이?”

“많이요.”

“어느 쪽이 굿즈를 보는 것이 더 나아?”

이 질문도 위험했다.

오늘은 왜 모든 질문이 위험한가.

나는 신중하게 대답했다.

“비교 대상이 아닙니다.”

신 씨가 눈을 가늘게 떴다.

“도망쳤어.”

“아닙니다. 철학적 대답입니다.”

“비겁하네.”

“안전입니다.”

“배신이 안전의 옷을 입었네.”

“지금은 제가 입겠습니다. 아니, 애초에 SHINHWI님에게나 신 씨에게나 저 굿즈를 보여준다는 선택지는 없습니다.”

신 씨는 작게 웃었다.

나는 그 웃음을 보고 다시 라면 국물을 마셨다.

입 안이 뜨거웠다.

그런데 그보다 얼굴이 더 뜨거웠다.


식사가 끝난 뒤, 나는 상자를 방 안쪽으로 옮기려 했다.

신 씨는 바로 따라왔다.

“어디 가?”

“보관합니다.”

“나도.”

“왜요?”

“어디에 두는지 궁금해.”

“안 됩니다.”

나는 상자를 질질 끌다시피 방으로 옮겼다.

상자가 너무 커서 문틀에 한 번 걸렸다.

쿵.

신 씨가 말했다.

“사람 같아.”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진짜 사람 들어 있는 거 아니야?”

“아닙니다.”

“SHINHWI 들어 있어?”

“비유적으로도 하지 마세요.”

“들어 있을 거잖아. 사진으로.”

나는 멈췄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상자 안에는 SHINHWI가 들어 있었다. 정확히는 공식이 만들고, 성인 인증을 거쳐 내가 산 법망에 조소를 보내는 듯한 SHINHWI의 이미지가.

나는 그걸 방 안에 들여놓고 있었다.

그리고 신 씨는 그걸 옆에서 보고 있었다.

이 상황은 여러 층위로 이상했다.

아주 깊은 층위까지.

나는 방 안의 공간을 잠시 살피고 상자를 책장 옆에 세웠다.

그 순간 상자가 내 방 중앙에서 존재감을 뿜어냈다.

포스터보다 컸다.

앨범장보다 컸다.

아크릴 스탠드와 엽서들은 거의 장난처럼 보였다.

상자 하나만으로 방의 공기가 바뀌었다.

어쩔 수 없다. 내 방은 이 거대한 물건을 숨기기에는 너무 작았다.

나는 상자 앞에 서서 신 씨를 막았다.

“여기까지입니다.”

“열면 안 돼?”

“안 됩니다.”

“내가 가지고 왔는데.”

“그 점은 감사드립니다.”

“라면 먹어줬어.”

“먹어준 것이 왜 협상 거리가 되는 겁니까?”

“그럼 구경할 권리?”

“없던 권리를 만들지 마세요.”

“치사해.”

신 씨는 상자를 빤히 보았다.

그 반응을 보며 나는 긴장했다.

그녀가 갑자기 돌진할 수도 있다.

이 사람은 귀찮음을 기본값으로 삼지만, 이상하게 호기심이 생기면 기민해진다. 어제 내 앨범장을 훑던 눈도 그랬고, 오늘 상자 테이프를 들추던 손끝도 그랬다.

“도윤.”

“네.”

“나중에 열면 보여줘.”

“절대 안 됩니다.”

“왜.”

“저는 이 동네에서 계속 살아야 합니다.”

“내가 말 안 하면 되잖아.”

“그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제 마음의 문제입니다.”

신 씨는 잠깐 나를 보았다.

그리고 갑자기 말했다.

“도윤은 SHINHWI 좋아하는데, SHINHWI 굿즈는 부끄러워하네.”

“정확히는 이 굿즈를 신 씨에게 들키는 것이 부끄러운 겁니다.”

“왜 나한테?”

“신 씨는 옆집 사람이니까요.”

“옆집 사람은 보면 안 돼?”

“이런 종류는 보통 안 봅니다.”

“그럼 SHINHWI 팬끼리는 봐?”

“그것도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복잡하네.”

“매우 복잡합니다.”

“인간 문명 귀찮네.”

“이건 문명이라기보다 제 사회적 생명입니다.”

신 씨는 그 말을 듣고 상자를 다시 보았다.

“약하네.”

“네?”

“도윤 사회적 생명.”

“지금 거의 심폐소생 중입니다.”

신 씨는 초코우유 빨대를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 웃었다.

짧게.

낮게.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나는 그 웃음을 보고 깨달았다.

신 씨는 아마 이 상자의 내용물을 정확히 모른다. 특히 도저히 옆집 젊은 여성 앞에서 보일 수 없는 수위라는 것까지는 모르는 반응이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이 있다.

이 상자가 나를 괴롭힐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기고 있다.

앞으로 큰일이다.

정말 큰일이다.


상자를 여는 걸 포기한 신 씨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려다 내게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왜요?”

“라면 호출.”

내가 이유를 이해하기도 전에 그녀는 내 휴대폰에 자기 번호를 입력하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옆집 어딘가에서 짧은 진동음이 울렸다.

“저장.”

신 씨는 초코우유를 쪽 빨고 현관을 나섰다.

그리고 나는 현관문을 닫았다.

찰칵.

잠금장치 소리가 평소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천천히 방으로 돌아갔다.

상자는 그대로 서 있었다.

거대하고, 길고, 조용하고, 위험하게.

나는 상자 앞에 서서 한참 고민했다.

열까.

확인만 할까.

아니.

오늘은 안 된다.

신 씨가 만진 상자다.

신 씨가 들고 왔다.

신 씨가 라벨을 읽었다.

신 씨가 열려고 했다.

그 모든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오늘 이걸 열면, 나는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는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애초에 사건이 조용해질 때까지 상자는 열지 않기로 했다.

결코 옆집 신 씨 때문은 아니다.

나는 상자를 방 구석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 위에 얇은 담요를 덮었다.

전혀 숨겨지지 않았다.

상자가 너무 컸다.

담요를 덮은 결과, 오히려 더 수상해졌다.

마치 범죄 드라마에서 시체를 숨긴 것 같았다.

“아니야.”

나는 혼잣말했다.

“공식 굿즈야.”

그 말이 더 위험하게 들렸다.

나는 다시 담요를 걷었다.

차라리 안 덮는 게 낫다.

방 안의 SHINHWI 포스터들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Velvet Inferno 포스터 속 SHINHWI는 붉은 조명 아래에서 웃고 있었다. 마치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나는 포스터를 향해 말했다.

“죄송합니다.”

누구에게 하는 사과인지 모르겠다.

SHINHWI에게? 신 씨에게? 아니면 성인 인증을 하던 과거의 나에게?

휴대폰이 울렸다.

신 씨였다.

정말 거리감이 이상한 사람이다.

나는 이 시간에 다시 라면을 찾는 것은 아니기를 바라며 메시지를 열었다.

신 씨: 도윤.

나는 바로 답장했다.

나: 네.

잠시 후.

신 씨: 상자 열었어?

나는 눈을 감았다.

나: 안 열었습니다.

답장이 왔다.

신 씨: 왜.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썼다.

나: 오늘은 제 사회적 생명이 많이 다쳤습니다.

잠시 뒤 답장.

신 씨: 약하네.

나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천장을 보았다.

망했다.

아주 망했다.

신 씨는 이제 내 약점을 안다.

분리수거를 못 하고, 오므라이스를 태우고, 라면을 급식소 메뉴처럼 요구하는 옆집 여자가.

내 방 어딘가에 절대 열면 안 되는 SHINHWI 상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나는 다시 상자를 보았다.

거대했다.

너무 거대했다.

그리고 저 안에는 아직 펼쳐지지 않은 SHINHWI가 있었다.

내가 숭배하던 타락한 여신.

공식이 성인 인증을 걸고, 팬덤이 야겜 굿즈 아니냐며 술렁였고, 내가 장고 끝에 구매 버튼을 눌렀던 위험한 이미지.

절대 옆집 여자에게 들키면 안 되는 물건.

그런데 이미 들켰다.

정확히 말하면, 상자는 들켰고 내용물은 아직 들키지 않았다.

아직.

나는 그 단어에 매달렸다.

아직.

인생은 가끔 그 단어 하나로 버틴다.

그때 다시 메시지가 왔다.

신 씨: 라면 맛있었어.

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답장했다.

나: 다행입니다.

바로 답장이 왔다.

신 씨: 기특해.

나는 이마를 짚었다.

정말 이상한 밤이었다.

사회적 생명은 거의 죽었고, 위험한 상자는 방 안에 서 있었고, 옆집 여자는 그것을 열고 싶어 했다.

그런데 라면이 맛있었다는 말과 기특하다는 말에 조금 안심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심각한 문제다.

나는 불을 끄기 전, 상자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테이프는 아직 붙어 있었다.

열리지 않았다.

오늘만큼은 지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위기가 있다.

하나는 지금 당장 터지는 위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방 구석에 세워둔 채 다음을 기다리는 위기.

내 방 구석의 그 상자는 명백히 후자였다.